[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1)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1-03 20: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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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3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북한산은 곧 서울이다. 서울의 상징이자 얼굴이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다.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1394년이다. 이성계는 북한산의 장엄함에 매료돼 천도를 결정했다. 북한산에는 3개의 큰 봉우리가 있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다. 북한산은 삼각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세 봉우리가 북한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북한산과 삼각산의 명칭에 대한 이견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성계가 사랑한 '백운대'

▲백운대 전경 사진:김기환
이성계는 천도 전에 백운대에 올랐다. 백운대는 완전한 바위덩어리이다. 의문이 든다. 어찌 올라갔을까. 귀하신 임금의 몸으로. 의문은 접자. 역사는 그리 기록하고 있다. 이성계가 백운대에 올랐을 때 하얀 구름이 깔렸다. 이 모습을 상스러운 징조로 받아 들였다. 이성계는 무릎을 탁 쳤다. 감탄사와 함께 시 한 수를 읊었다. “발아래 백운이 깔려 있으니 이 아니 좋을 소냐.”이성계는 한껏 들떠있었다. 머리 좋은 신하들이 거들었다. “전하! 이 봉우리를 백운대라 지으심이.” 이성계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백운대의 흰 구름이 한양 천도의 일등공신이 됐다.

백운대의 가슴은 넉넉하다. 삶에 찌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준다. 모든 산이 그러하듯이. 백운대는 서울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높은 만큼 오르기도 힘들다. 숨이 목에 차야 오를 수 있다. 땀이 비 오듯 흘러야 정상에 설 수 있다. 인간에게 삶의 길을 알려주는 듯하다. 인생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거라고.

성스러운 백운대도 아픔이 있다. 잔혹한 일제의 악행에 상처를 입었다. 정수리에 쇠말뚝이 박혔다. 한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분통했을까. 얼마나 치욕감을 느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멍해진다.

슬기로운 후손들이 힘을 모았다. 뜻있는 산악인들이 쇠말뚝 뽑기에 나섰다. 쇠말뚝이 뽑히는 순간 모두 숨을 죽였다. 백운대의 거센 바람마저 멈춰 섰다. 1m나 되는 쇠말뚝이 죄스러운 듯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600년의 지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탄식의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나쁜 놈들. 어떻게 이런 짓을. 목 놓아 우는 사람도 있었다. 조상님께 죄송하다고. 일제는 백운대 외에도 전국 여러 곳에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게 돼있다. 반성하지 않는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 백운대에 흐르는 물방울은 아픔이 있을게다. 그때의 울분을 토해내는 통한의 눈물일 것이다. 백운대는 이런 아픔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다. 나는 괜찮으니 어서 오라고 미소 짓는다. 내 정수리에 올라와 마음껏 소리치라고 여유를 보인다.

백운대 정상에 올라서 봐라. 서울이 넓은가. 아닐 것이다. 한 눈에 들어온다. 북녘을 보고 싶은가. 고개를 돌려봐라. 경기도 고양시가 발아래 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가 없다. 흰 구름이 깔릴 때를 상상해 봐라. 모두가 태조 이성계일 것이다. 건국의 큰 뜻을 품을 수 있을게다. 정상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며.

모든 산악인의 고향 '인수봉'
▲북한산의 상징 인수봉 사진 : 김기환
인수봉은 천혜의 산악훈련지이다. 암벽등반의 성지이다. 모든 바위가 화강암으로 이루어 졌다. 아시아에서 으뜸이다. 일본 산악인들이 가장 부러워한다. 일본인이 많이 온다. 새벽 암벽등반을 하는 묘미에 빠져서다. 일본 산악인의 바람이 있다. 인수봉을 도쿄로 옮기는 것이다. 얼마나 부러우면 그럴까. 인수봉의 절대가치를 말해 준다.

인수봉에 오를 때는 겸손해야 한다. 모든 자만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인수봉의 바람은 매우 거세고 변덕스럽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는다. 산악인은 말한다. 서울과 경기도의 바람은 모두 인수봉을 통과한다고. 바람에 의한 사고가 많다. 눈비가 몰아치는것 보다 더 무섭다.

인수봉 백운대와 함께 한 산악인이 있다. 고(故) 이영구 씨다. 백운산장 주인이다. 북한산이 좋아 산사람이 됐다. 수많은 산악인의 말 벗이 되고 길잡이가 돼 주었다. 영구. 이름이 친근했다. 이름처럼 90살까지 살겠다고 했다. 아깝게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88살에 북한산과 이별했다. 산악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90살을 채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백운산장의 전화번호도 904-0909이다. 90살에 대한 꿈이 있었나 보다. 백운산장의 전화번호는 산악인들의 도움으로 받아냈다. 백운산장은 2019년 12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95년의 애환을 북한산에 묻고 떠났다. 영원한 산악인 이영구 씨의 발자취와 함께.

조용히 기다리는 모습 '만경대'
▲만경대 사진 : 도선사

 만경대는 릿지(ridge) 등반의 명소이다. 부담 없이 등반할 수 있다. 산행코스가 쉬워 보이지만 작은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산을 가볍게 보는 자만심 때문이다. 산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위대할 수 없다.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만경대는 1597년(선조 30년) 우레와 같은 소리로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으로 산하가 짓밟힐 때였다. 비통함 때문에 울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 이런 호국의 정신 때문일까. 만경대 밑에는 큰 사찰이 있다. 호국의 정신을 담고 있다. 도선사이다. 신라 말기인 862년에 승려 도선이 창건했다.


도선사는 고(故)육영수 여사가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육영수 여사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신앙심이 돈독했다. 거의 매일 도선사에 기도하러 다녔다. 도선사로 가는 길이 험난했다. 울퉁불퉁. 구불구불. 다니기가 힘들었다. 육 여사의 부탁으로 길이 놓였다. 신도도 많이 늘었다. 점심 공양을 무료로 배급했다.

허기진 산악인의 배를 채워 줬다. 공양간이 분주해졌다. 도선사의 공양간은 규모가 매우 크다. 2000여 명의 스님과 신도가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만경대와 도선사. 공통점이 있다. 호국의 정신이다. 국가와중생이 잘 되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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