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15)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2-22 23: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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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즐겨 찾던 스테이크집 '서울역그릴', 함박스테이크가 유명했던 '호수그릴', 돈가스를 먹으려 찾았던 '미장그릴'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이승만 대통령이 즐겨 찾던 스테이크집 '서울역그릴' 

▲서울역그릴 사진 : 김병윤 대기자
해방 후 한국에도 양식당이 들어왔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었다. 가볼 기회가 없었다. 사용하는 방법도 몰랐다. 양식당에 갈 돈도 없었다. 극소수의 사람만 애용했다. 선택된 사람의 장소였다. 사교의 장소로 이용됐다. 일반인과는 동떨어진 세계였다. 국정을 논의했고 외교무대의 장으로 사용됐다. 문화의 산실이 됐다. 없던 시절 얘기다. 그 시절에 유명했던 양식당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한 곳이 '서울역그릴'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방문했다. 스테이크를 먹으려고. 이승만 대통령은 해외생활을 오래해 양식을 좋아했다. 스테이크 생각이 나면 서울역그릴로 갔다. 계단을 통해 올라갔다. 불편함을 감수했다. 걸어서 가야만 했다. 계단이 밖에 있었다. 추락의 위험도 있었는데 아무런 불평도 안 했다. 대통령과 일반인이 같이 출입했다. 당시에는 그랬다. 서울역그릴에서 만큼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일반 손님과 똑같았다. 권위의식도 없었고 시골 할아버지 같았다. 평민의 몸가짐이었다. 음식탓을 전혀 안 했다. 나오는 대로 맛있게 먹었다. 먹고 나면 꼭 고마움을 표시했다. 직원들한테 수고비를 조금씩 줬다. 이승만 대통령방이 있었다. 아주 초라했다. 소박했다. 못 살았던 현실을 증명해줬다. 지금은 흔적도 없다. 너무도 아쉽다.

일본 긴자에 오뎅집이 있다. 오뎅은 한국말이 아니다. 일본말이다. 한국말은 어묵이다. 일본음식의 본 명칭을 사용하려 한다. 400년 된 가게다. 일본 왕이 방문했다. 오뎅을 맛있게 먹고 갔다. 가게 구석에 금색 테두리가 쳐져있다. 왕이 앉았던 의자다. 역사물로 보존하고 있다. 일본인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무조건적인 반일은 안 좋다.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배우고 알아야 이긴다. TV를 봐라. 일본에서 배웠다. 고개를 숙여가며 기술을 익혔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최고다. 일본의 TV산업은 문을 닫았다. TV만이 아니다. 다른 가전제품도 그렇다. 한국제품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일본제품을 오래전에 눌렀다. 일본 가전산업은 존재감이 없어졌다. 반도체도 입장은 마찬가지다. 일본에 구걸 하다시피했다. 우리 좀 도와 달라 부탁했다. 하나하나 깨우쳐가며 노력하다 보니 입장이 바뀌었다.

전세가 역전됐다.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자. 반도체 최강국이 어디인가. 대한민국이다. 세계제일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자랑스럽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기술을 배웠다. 지금은 어떠한가. 한국산 배가 오대양을 누비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각국의 선주가 한국산 배를 원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한국의 상대가 아니다. 기술력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딱 어울리는 말이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일본에게 한국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한 수 아래의 국가가 아니다. 경쟁의 국가로 성장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배워서 이뤄냈다. 자존심을 버리며 배운 결과다.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자존심을 버렸을 때 배가 불러진다. 후손에게 희망을 준다. 세계제일이 된다. 정상에 설 수 있다. 그때까지는 머리를 조아려도 된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했다. 어려움이 따른다. 당장은 힘들지만 오히려 잘됐다. 이번이 기회다. 국민의 의식이 바뀌었다. 자립의 발판을 마련할 수있다. 한국인은 해낼 수 있다. 긴자의 오뎅집을 소개했다. 이유가 있다.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어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돈다. 자그마한 소품도 귀히 여기자. 그것이 역사고 유물이다. 선조의 유산이다. 혼을 잃어버린 민족에게 희망은 없다.

서울역그릴은 한국 최초의 경양식 식당이다. 아직도 있다. 서울역 신청사에 있다. 장소도 바뀌었고 모습도 변했다.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옛 모습은 다 없어졌다. 이름만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함박스테이크가 유명했던 '호수그릴'
무교동에 있었다. 함박스테이크를 잘했다. 화려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이는 사람들이 그랬다. 권력과는 거리가 먼 문화인들이 모였다. 낭만으로 가득 찼다. 문화행사가 자주 열렸다. 문화행사는 호수그릴로 인식됐다. 시낭송이 열릴 때면 숨소리마저 죽였다. 시인의 낭송만이 적막을 깨뜨렸다. 진지한 토론이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정중동의 분위기였다. 차분하면서 역동적이었다.

호수그릴은 또 다른 모임으로 인기가 높았다. 공무원과 민간인의 만남장소였다. 공무원은 민간인 만나길 꺼린다. 아무래도 부담이 간다. 공개된 장소가 필요했다. 간단히 식사하기에 적합했다. 편안한 분위기도 제격이었다. 친근감을 줄 수 있었다. 격의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자연히 민원도 해결됐다. 호수그릴은 만찬장소로도 인기였다. 가족이 많이 왔다. 집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양식을 즐기기에 최적이었다.

돈가스를 먹으려 찾았던 '미장그릴'
일제강점기 말엽에 문을 열었다. 충무로에 있었다. 진고개 시작 지점이었다. 지금의 세종호텔 부근이다. 일본인이 많이 살았다. 자연히 일본 손님이 많았다. 돈가스가 유명했다. 돈가스는 일본음식이 아니다. 일본식으로 발전됐다. 원래는 미국음식이다. Pork Cutlet이다. 일본인은 발음이 잘 안 된다. 일본식으로 편히 불렀다. 돼지 돈(豚)자를 붙여 돈가스라 했다. 미장그릴은 음식 값이 쌌다. 부담이 없었고 손님도 다양했다. 고위직 공무원이 자주 찾았다. 기업가의 발길도 잦았다. 특색 있는 손님들이 있었다. 기생이 많이 이용했다. 기생은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 손님의 신분이 높았다. 자연히 신문물에 눈을 뜨게 됐다. 서양식 분위기. 서양음식을 찾아 나섰다. 적합한 양식당이 있었다. 미장그릴이었다. 개화기의 양식당은 서울역그릴만 남아있다. 그마저도 옛 모습은 아니다. 완전히 바뀌었다. 나머지 3곳은 없어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 버렸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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