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16)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2-25 23: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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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경제의 은밀한 만남 '서울의 요정', 정치인의 사랑방 '청운장', 숨바꼭질을 하게 한 '오진암', 사찰에서 요정으로 변모한 '선운각'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정치와 경제의 은밀한 만남 '서울의 요정'
서울은 모든 문화의 중심지다. 특히 정치와 경제의 요충지다. 정치와 경제에는 은밀한 모임이 필수적이다. 그런 필요성을 채워준 장소가 요정이다. 요정은 정치인과 함께 성장했다. 정치와 요정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현대 정치사의 길목에는 요정이 함께 했다. 주요 정책이 요정서 논의되고 해결책이 나오기도 했다. 경제인도 마찬가지다. 기업을 하려면 정치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기업인은 정치인을 만났다. 그들만의 은밀한 대화를 위해. 요정은 그 장소를 제공했다. 

 

▲신윤복의<풍속도> 

요정에는 아리따운 여인들이 있었다. 속칭 기생이라 불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았다. 고관대작의 수발을 들었다. 경제인의 푸념도 함께 들어줬다. 기생은 사연도 많았다. 국가경제에도 이바지 했다.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나라가 가난했다. 그들도 생활인 이었다. 집에는 먹을거리가 부족했다. 병든 부모님의 약값이 없었다. 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했다. 일본인에게 웃음을 팔았다.

일본인은 한국을 자주 찾았다. 기생관광을 즐겼다. 예쁜 한국여인을 탐하려 했다. 온갖 수모를 참아냈다.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국제적 망신도 당했다.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점차 기생의 설자리가 없어졌다. 나라가 잘 살게 되고 사회도 깨끗해 졌다. 밀실에서 의논할 일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기생도 사라졌다. 아직도 기생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있다. 의식을 바꿔야 한다. 그녀들도 어려운 시대의 희생양이었다고. 물론 일탈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 정도야 어느 사회에도 다 존재한다. 중요한 것이 있다. 논개를 욕하는 한국인은 없다. 그녀들도 논개의 후손이었다.

정치인의 사랑방 '청운장'
유명해진 이유가 있었다. 모든 정치인이 거쳐 갔다. 정치인의 단골 장소였다. 기사에 꼭 나왔다. 기사를 쓰게 되면 꼭 청운장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간접광고를 막기 위해 기사에 상호를 안 쓰지만 그때는 그대로 밝혔다.

정치인이 청운장에 모인 이유가 있다. 경무대와 가까웠다. 경무대가 현재의 청와대다. 지금의 청운동에 있었다. 정치인들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최고 권력자와 가까이 있고 싶어서일까. 속내는 모를 일이다. 관공서도 몰려 있었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만날 일이 많았다. 업무협의를 많이 했다. 주요현안도 해결됐다.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예쁜 기생이 많았다. 남자의 발길이 잦아졌다. 아직도 의문이 있다. 음식 값이 엄청 비쌌다. 공무원은 박봉이었다. 정치인도 돈이 없었다. 어떻게 술값을 냈을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숨바꼭질을 하게 한 '오진암'

일화가 많은 요정이었다. 웃지 못 할 일이 많이 벌어졌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자주 만났다. 오진암에는 비밀 문이 있었다. 피신용 뒷문이다. 모든 요정은 비상문을 설치했다. 우연한 만남을 방지하기 위해. 직접눈으로 봤던 일화다. 기자 시절 얘기다. 어느 모임에 초대를 받아 갔다. 우연히 고위 공무원을 봤다. 우리와는 다른 모임이었다.

당황한 모습이었다. 분주히 움직이더니 부리나케 사라졌다. 뛰는 모습이 육상선수 같았다. 나중에 알았다. 종업원이 귀 뜸을 해줬다. 더 높은분이 오신다고. 계급사회의 모습을 실감나게 목격했다. 사라진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방 안에 남아있을 상대방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고.

사찰에서 요정으로 변모한 '선운각'
선운각은 원래 절이었다. 절이 요정으로 바뀌었다. 우이동에 있었다. 도선사 입구였다. 다른 요정은 시내에 있었다. 우이동은 1960년대엔 시골이었다. 장소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접근성이 나빴다. 그래도 손님이 줄을 섰다. 비밀이 보장되기에 최고였다. 당시에는 차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시골길을 달려야 했다. 차 없이는 가기도 힘들었다. 60년대 말에 흥행했다. 7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시내의 요정들을 제쳤다. 한국에서 제일 큰 규모였다. 요정 가운데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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