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17)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3-02 23: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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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량으로 바뀐 '대원각', 청정도량으로 바뀐 '대원각', 1960-70년대 권력자들이 다녔던 ‘카페’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청정도량으로 바뀐 '대원각' 

▲길상사 사진 : 김병윤 대기자
성북동에 있었다. 고급요정이었다. 수많은 정객이 드나들었다. 지금은 청정도량으로바뀌었다. 길상사다. 도심 속의 사찰이 돼 평안함을 주고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사상을 펼치고 있다.

여장부 김영한이 운영했다. 법명은 길상화다. 법정 스님에게 법명을 받았다. 기생 출신이다. 기명은 자야였다. 시인 백석의 애인이었다. 중앙대 영문과 출신의 엘리트다.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마음속의 연인 백석을 가슴에 안고. 김영한은 한 권의 책을 읽고 인생관을 바꿨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동받았다. 참회의 눈물이 쏟아졌다. 대원각에 퍼져있는 업보를 씻고 싶었다. 기생의 아픔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간드러진 웃음소리. 가슴을 부여잡고 흘리던 눈물. 참지 못해 내뱉었던 한탄의 숨소리.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녀들에게 맑은 영혼을 주고 싶었다. 법정 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찰을 세워달라고. 대원각에 청정의 법음을 내려달라고. 맑은 종소리를 펼쳐달라고. 대원각을 내던졌다. 1995년 송광사에 시주했다.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았다. 현재 시가로 천억이 넘는 돈이다,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렸다. 인생무상. 육신의 탈을 벗었다. 영혼의 안식을 찾았다. 백석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외로운 길이었을까. 무서웠을까. 아닐 게다. 아주 평안했을 것이다. 환희에 찬 영생의 길이었을 게다. 그리운 백석을 보러가는 길이라. 김영한은 평소 천억의 돈도 백성의 시 한 줄보다 못
하다고 했다.

요정 대원각은 없어졌다. 말 못할 아픔도 사라졌다. 길상화 보살의 뜻이 법력을 발휘했다.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가득 차있다. 길상사

비밀스런 모임이 이뤄진 ‘비밀요정’
비밀요정이 무엇일까. 말 그대로다. 비밀스럽게 운영됐다. 요정과 똑같았다. 오히려 시설은 더 좋았다. 기생도 나왔다. 일반 요정과 다른게 있다. 은밀하게 운영돼 예약제로 손님을 받았다. 철저하게 지켜졌다. 신분노출을 꺼리는 사람이 고객이었다. 가정집처럼 꾸며 놓았다. 들어가면 구조가 복잡했다. 통로가 미로였다. 길 찾기가 어려웠다.

이태원 유엔빌리지 안에 있었다. 한남동 골목에도 많았다. 회현동, 숭인동, 동숭동, 돈암동에도 존재했다. 특징이 있었다. 주차장이 멀었다. 요정 앞에 차를 세우지 않았다. 먼 곳에다 차를 세워 놓았다. 손님이 걸어서 들어가기도 했다. 요즘의 발렛파킹 식이었다. 비밀요정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다.

불문율도 있었다. 여러 손님을 받지 않았다. 하루에 한 팀만 받았다.먼저 가격을 정해놓고 예약했다. 술값이 매우 비쌌다. 비싸도 문전성시였다. 인기절정이었다.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기를 끄는 이유가 있었다. 최상의 서비스를 받았다. 남에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자신만의 공간을 즐겼다. 비밀스런 만남이 필요했다. 재력가가 주로 이용했다. 이제는 사라진 풍속도다.

1960-70년대 권력자들이 다녔던 ‘카페’
카페는 생소한 단어였다. 1960~70년대에는. 그 당시 카페에는 권력자들이 다녔다. 재계 총수들이 출입했다. 고급 사교장이었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만나는 장소였다. 지금의 카페와 개념이 다르다. 술값도 비쌌다. 술 종류도 양주만 제공했다. 그 시절에는 구하기 힘든 술이었다. 아가씨도 있었다.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었다.

서울에는 카페 양대 산맥이 있었다. 카페 발렌타인과 라 칸티나였다. 여주인의 성격도 대조적이었다. 발렌타인의 주인은 김봉숙이었다. 별명이 KBS이었다. 이름의 영문 첫 자를 따서 불렀다. 남자 같았다. 호탕했다. 거침이 없었고 술이 두주불사였다. 손님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손님이 먼저 취했다. 술을 마셔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손님의 편안한 말상대였다. 지금은 없어졌다.

라 칸티나 주인은 김미자 이었다. 김봉숙과 달랐다. 술을 한 잔도 못했다. 성격도 차분했다. 조용히 웃으며 손님을 대접했다. 외유내강이었다. 제주도 출신이다. 대표적 제주여인상이다. 생활력이 정말 강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상상을 초월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있으면 매우 바빴다. 미스 제주 출신을 극진히 보살피며 용돈도줬다. 제주 출신들에게 최상의 요리를 먹였다. 기름진 음식을 제공했다. 결국 탈이 나서 설사들을 했다. 평소 못 먹던 음식을 먹은 후유증이었다. 라 칸티나는 지금도 영업을 한다. 업종이 바뀌었다. 이태리 식당으로 전환했다.

김미자는 라 칸티나를 접은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안과의사와 결혼했다. 남편은 모 대통령의 눈 수술을 했을 정도로 실력파다. 김봉숙과 김미자. 공통점이 있다. 입이 무거웠다. 정객들은 두 여인 앞에서 정국을 논의 했다. 기업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두 여인은 수많은 비사를 알고 있었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었다. 유명인의 사생활도 깊이 알고 있었다. 절대 발설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카페가 그립다. 양(兩)김 여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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