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
가족처럼 친근한 서울의 '골목문화'
서울은 골목이 많다. 외국 도시도 마찬가지다. 파리는 골목이 많기로 유명하다. 파리의 골목은 관광 상품이다. 미로다. 아주 좁은 길이다. 유럽은 전쟁의 역사다. 모든 나라가 전쟁을 했다. 숨을 장소가 필요했다. 차량통행을 막아야 했다. 골목이 만들어 졌다. 시드니도 골목이 많다.
역사가 짧은데도 불구하고. 도시에는 골목이 생기게 마련이다. 인간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의 골목은 내용이 다르다. 서울만이 아니다. 한국의 골목이 똑같다. 골목철학이 있다. 한 가족 개념이다. 이웃사촌이다. 먼 곳 형제보다 이웃사촌이 가깝다.
![]() |
| ▲ 옛 골목의 모습 <사진=김병윤 대기자> |
서울의 골목은 삶의 모습이다 '골목의 풍속도'
이웃과 터놓고 지냈다.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널리 보면 대가족이었다. 담도 낮았다. 담은 형식적 건축물이었다. 사유재산 구분용이었다. 골목에는 비밀이 없었다. 옆 집 사정을 훤히 알다.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였다. 쌀도 꿔주고 했다. 쌀이 떨어지면 옆집에서 빌렸다. 스스럼이 없었다.
골목에서 정치가 이뤄졌다. 아낙네들의 수다에 표가 갈라졌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말 타기, 고무줄놀이, 술래잡기,제기차기, 딱지치기, 땅 따먹기. 모든 놀이를 골목에서 했다. 추억의 놀이들이다. 어렵던 시절 얘기다. 당시에는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골목이 놀 장소를 제공했다. 골목에는 인정이 넘쳐났다.
경조사도 골목에서 치러졌다. 동네 사람이 골목에 모였다. 차일을 치고 힘 모아 일을 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눴다.
문제점도 생겼다. 사생활 보호가 안 됐다. 종종 싸움도 있었다. 남의 흉을 보면 그대로 전달됐다. 본래보다 부풀려 전해졌다. 오해는 점점 커져갔다. 동네가 한 바탕 시끄러워 졌다. 싸우는 사람. 말리는 사람. 목소리가 뒤엉켰다. 시끄러움의 극치였다. 삶의 목소리는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좁은 골목을 통해.
골목에도 종류가 있다. 직선골목. 고불골목. 가지가 쳐있는 골목. 막다른 골목이다. 특성이 있다. 차가 못 들어갔다. 인력거 통행도 어려웠다. 자생적으로 발생했다. 직선골목은 곧 바랐다. 일자로 쭉 뻗은 형태이다. 차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이용했다. 골목어귀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고불골목은 말 그대로다. 고불고불 휘어졌다.
가지가 있는 골목도 있었다. 일종의 가지치기식 골목이다.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생겼다. 막다른 골목이 특이하다. 일부러 만들었다. 동네에 1~2개는 있었다. 용도가 재미있다. 도둑을 잡기위해 만들어졌다. 예전엔 도둑이 많았다. 좀도둑이었다.
신발, 양말, 옷가지 등을 훔쳤다. 쌀도 훔쳐갔다. 먹고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사람에게는 손을 안 댔다.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지금의 세태와 너무 다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다. 도둑도 양심이 있다는 말이 생긴 거다. 도둑질하다 들키면 동네가 시끄러웠다. 도둑이야 소리에 모두가 뛰어나왔다. 손에는 연장이 들려있었다. 몽둥이, 연탄집게, 빗자루. 각종 생활용품까지 동원됐다. 모두 도둑을 뒤쫓았다. 놀란 도둑은 부리나케 도망갔다. 도망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붙잡혔다. 도둑은 무릎을 꿇었다. 두 손모아 싹싹 빌었다. 사람들은 경찰에 넘겨줬다. 넘기기 전에 인정도 베풀었다. 사정을 듣고 용서도 해줬다. 훈방해서 보내기도 했다. 잔돈을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다시는 나쁜 짓 하지 말라고. 열심히 살라고 격려도 해줬다. 정이 있던 사회였다. 낭만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돌아가고 싶다. 그때 그 시절로.
골목에는 소리도 있었다. 책 읽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제일 좋았던 소리였다. 아름답게 들렸다. 학교에서 교육을 시켰다. 책은 큰 소리로 읽으라고. 학생은 따라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다. 착한 학생들이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도 정겨웠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두들겼다. 그때만은 고부 간의 갈등도 없었다. 호흡이 척척 맞았다. 정겨운 친정엄마와 딸의 모습이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한 집이 두들기면 옆집이 따라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연쇄작용을 했다. 동네집집마다 방망이 소리가 났다. 골목을 통해 퍼져 나갔다. 오케스트라의 화음보다 듣
기 좋았다.
삶의 목소리도 있었다. 고학생의 고달픈 삶을 전해줬다. “메밀묵 사려. 찹쌀떡”. 학비를 벌기 위한 간절함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처절함이었다. 애처로웠다. 듣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었다. 애달픈 목소리는 희망이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였다. 골목을 헤매던 그들은 어찌 됐을까. 궁금하다. 늦은 밤 배고픔을 달래준 소리였다. 간식이 귀하던 시절. 고학생의 외침에 배를 불렸다. 오손도손 식구들과 둘러앉아.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