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떠나도 몸에 남는다…서도호가 다시 펼치는 기억의 방

마리아김 / 기사승인 : 2026-06-18 04: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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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 8월 27일부터 대규모 개인전…〈Nest/s〉·브릿지프로젝트·드로잉으로 이주와 소속의 문제를 묻다
▲ 서도호, 〈Nest/s〉, 2024. 폴리에스터와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한 대형 설치 작품. 리만머핀·빅토리아 미로 제공. 사진 전택수. ⓒ 서도호

 

올 하반기 한국 미술계가 기다릴 이름은 서도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 서울에서 서도호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전시명은 작가의 이름을 그대로 내건 ‘서도호’다. 초기작부터 주요 작품,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한 작가의 긴 걸음을 넓게 펼쳐 보이는 자리다. 전시의 중심에는 이주와 거주, 개인과 공동체, 공간의 기억과 정체성이라는 오래된 질문이 놓인다.

서도호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했고, 미국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에서 회화, 예일대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지금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그는 드로잉, 영상, 조각, 설치를 넘나들지만 세계 미술계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천으로 지은 집’이다. 서울, 로드아일랜드, 뉴욕, 베를린, 런던 등 그가 지나온 공간들은 그의 손에서 얇고 투명한 천의 건축이 됐다.

집은 대개 무거운 말이다. 등기부등본과 주소, 가족사진과 오래된 가구, 저녁 냄새와 문간의 먼지가 한데 엉킨 말이다. 그러나 서도호의 집은 조금 다르다. 벽돌도 시멘트도 아니고, 접히고 옮겨지는 천이다. 그는 집을 붙박인 건물로 보지 않는다. 몸에 묻은 기억, 낯선 도시에서의 불안, 떠나온 뒤에야 또렷해지는 감각으로 본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공식 소개 이미지로 공개된 2024년작 〈Nest/s〉다. 폴리에스터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이 대형 설치는 말 그대로 둥지들의 통로처럼 보인다. 서도호가 살아온 방과 복도, 문과 경계가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관람자는 그 앞에 서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걷게 된다. 남의 기억 속을 걷는 일 같지만, 이상하게도 자기 집의 문턱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온다.

서도호의 작품은 늘 그런 식이다. 처음에는 아름답고 투명하다. 조금 더 다가가면 사소한 것들이 보인다. 스위치의 자리, 손잡이의 높이, 문틀의 두께, 계단의 간격. 우리가 살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사람은 실은 그런 것들로 자기 삶을 기억한다. 어느 집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는 잊어도, 어느 방의 빛이 유난히 낮았는지는 오래 남는다.

서도호가 1999년 선보인 〈서울집/L.A.집〉은 이 작업 세계의 출발을 분명히 보여준다. 서울 성북동의 전통 한옥은 옥색 한복천으로 다시 만들어져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 놓였다. 집은 고향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을 건너갔다. 그때부터 그의 집은 더 이상 한 장소에 고정된 집이 아니었다. 접어 들고 다닐 수 있는 집, 떠난 사람의 몸을 따라다니는 집이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당시 선보인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도 다시 소환해야 한다. 작가는 미국 유학 시절 처음 머문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의 3층 주택을 실물 크기로 세우고, 그 안에 서울 성북동 한옥의 기억을 매달았다. 한옥을 품은 양옥, 양옥을 품은 서울박스, 서울박스를 품은 서울관, 서울관을 품은 서울이라는 구조였다. 그것은 한 작가의 이력서이면서 한국 현대사의 이동 경로이기도 했다.

그보다 앞선 〈공인들〉과 〈Floor〉에서는 또 다른 서도호가 보인다. 작은 인물들이 거대한 좌대나 유리 바닥을 떠받친다. 영웅의 동상은 사라지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무게를 견딘다. 그의 작업이 단지 집과 향수의 미학에 머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도호에게 개인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방 안에도 집단의 역사, 사회의 압력, 시대의 공기가 스며 있다.

이번 전시에는 브릿지프로젝트와 미공개 작품, 다량의 드로잉도 소개될 예정이다. 브릿지프로젝트는 서울과 뉴욕, 런던처럼 작가의 삶을 만든 도시들을 하나의 상상적 구조로 잇는 작업이다. 집을 재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떨어진 장소들이 어떻게 하나의 마음속 주소가 되는지를 묻는다. 드로잉은 그 질문의 밑그림이다. 완성된 설치의 장관보다 더 조용하지만, 작가가 오래 붙들어온 생각의 결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전이라기보다 한 작가가 평생 반복해온 질문의 중간 보고서에 가깝다. 그는 계속 집을 만들었지만, 사실은 집을 만든 것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공간에 기대어 살고, 그 공간을 떠난 뒤에도 어떻게 그 안에 남아 있는지를 보여줬다. 집은 사라져도 방의 감각은 남는다. 고향은 멀어져도 문턱의 높이는 몸 어딘가에 남는다.

올해 서울 미술계는 해외 미술관 브랜드와 아트페어, 글로벌 갤러리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그 속에서 서도호 전시는 다른 무게를 갖는다. 바깥의 권위를 들여오는 전시가 아니라, 한국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세계 미술의 언어를 만든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한국적이지만 한국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적이지만 사사롭지 않다. 조용하지만 오래 울린다.

좋은 전시는 작품 앞에서 관람자를 멈춰 세운다. 더 좋은 전시는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그 사람의 하루를 따라간다. 서도호의 집은 아마 그런 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관객은 천으로 된 집을 보고 나와 자기 집의 현관을 다시 볼 것이다. 닳은 손잡이와 오래된 스위치, 늘 무심히 지나치던 복도에서 문득 어떤 기억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주소에 사는가, 기억에 사는가. 집을 떠난 사람은 정말 집을 떠난 것인가. 서도호가 서울에 다시 세우는 집은 이 질문을 조용히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전시장보다 조금 더 넓은 곳, 각자의 삶 속에서 오래 머물 것이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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