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 최성호 기자] 미국이 한국시간 13일 오후 11시부터 이란 항구를 오가는 모든 선박에 대한 해상 봉쇄에 들어가기로 하면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호르무즈 해협 정세가 다시 일촉즉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이란 항구와 무관한 선박의 항행 자유는 막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란은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공개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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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해 있는 선박 ./사진=연합뉴스 |
12일(현지시간) 미 중부사령부는 성명을 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 동부시간 13일 오전 10시부터 이란 항구와 연안 지역을 드나드는 모든 해상 교통에 대해 봉쇄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적용 대상은 국적과 무관하다.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에 접한 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이면 모두 단속 대상이라는 뜻이다. 다만 중부사령부는 “비(非)이란 항구를 출발지나 목적지로 하는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막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이란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1시간 넘게 벌인 종전·휴전 후속 협상이 합의 없이 끝난 직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결렬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봉쇄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부사령부가 구체적 시행 방침을 내놨다. 미국으로선 이란이 해협 통제와 통행료, 원유 수출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 온 흐름을 끊고, 반대로 이란의 수출 동맥을 조여 협상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으로 해석된다.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국영 매체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은 자국 군 통제 아래 있다며, 미군 등 외국 군함의 접근은 휴전 위반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 한 차례의 오판도 강한 대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겉으로는 민간 선박 통항 여지를 남겼지만, 군사적 충돌 문턱을 한층 낮춘 셈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란 관련 선박만 겨냥한다”고 해도 시장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길목으로, 최근 보도들에 따르면 전 세계 석유 공급의 약 20%가 이 해협을 지난다.
협상 결렬과 봉쇄 발표가 전해지자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다시 배럴당 100달러 선을 웃돌았다.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조금만 더 고조돼도 원유·가스·해상운임 시장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실제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단순한 ‘통제 강화’가 아니라 해상 물류 심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신호로 본다. 앞서 로이터는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항량이 평시의 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전했다.
허드슨연구소의 브라이언 클라크는 로이터 분석 기사에서 기뢰 제거와 군 호송, 공중 감시를 병행하더라도 위협을 낮추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봤다. “봉쇄는 시작보다 유지가 더 어려운 싸움”이라는 해운·안보 업계의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동 산유국도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술탄 알 자베르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최고경영자는 12일 “호르무즈는 어느 한 나라만의 것이 아니며, 항행을 막거나 제한하려는 시도는 세계 에너지·식량·보건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유국 최고경영자가 공개적으로 이런 메시지를 낸 것은 이번 사태가 단지 미·이란 양자 충돌에 그치지 않고, 국제 에너지 질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으로 읽힌다.
결국 이번 조치는 휴전 연장과 종전협상 재개의 디딤돌이 아니라, 오히려 새 충돌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미국은 “이란 외 선박의 항행 자유는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이란이 이를 실질적 도발로 받아들이면 해협 현장에서 우발 충돌이 벌어질 여지는 충분하다.
이번 조치로 짧게는 국제 유가, 길게는 글로벌 공급망과 물가까지 흔들 수 있는 고비가 다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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