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한화오션의 바다는 아직 넓다

조봉환 기자 / 기사승인 : 2026-07-10 0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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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봉환 토요경제신문 발행인 겸 대표이사

한화오션은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기술력의 패배로 읽는 것은 성급하다. 캐나다 정부의 설명을 보면 오히려 다른 결론이 나온다. 한화오션은 충분한 자격을 갖춘 최종 경쟁자였고, 마지막 선택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안보·정치적 판단에 더 가까웠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번 결정을 “어렵고 근소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그는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Thyssenkrupp Marine Systems)와 한화오션을 모두 “고도로 자격을 갖춘 공급자”라고 평가했다. 두 회사의 플랫폼 모두 캐나다 해군이 요구한 능력을 충족했다고도 했다. 이 말은 가볍지 않다. 한화오션이 실격당한 것이 아니라, 캐나다가 안보 동맹의 익숙한 길을 택했다는 뜻에 가깝다.

캐나다의 선택은 냉정했다. 북극 안보, 나토 상호운용성, 유럽 방산협력, 독일·노르웨이와의 전략적 연결이 함께 작동했다. 방산 수주는 성능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기는 동맹의 언어로 거래된다. 잠수함은 더 그렇다. 한 번 도입하면 수십 년을 운용해야 한다. 훈련, 정비, 무장, 정보 공유, 작전 교리까지 함께 움직인다. 캐나다가 독일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한 배경에는 이런 구조가 있었다.

그렇다고 한화오션의 의미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커졌다. 한국 조선·방산 기업이 캐나다 역사상 최대 방산 조달 사업에서 독일·노르웨이 축과 마지막까지 겨뤘다. 과거 같으면 후보군 진입도 쉽지 않았던 판이다. 이제는 다르다. 한화오션은 북미 안보 시장의 최종 경쟁자가 됐다.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세계 시장에서 자격은 확인받았다.

중요한 것은 한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 벽을 넘으려 했느냐다. 독일 TKMS도 잠수함 한 척을 파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독일·노르웨이와 이어진 기존 212CD 프로그램, 나토 상호운용성, 정부 간 협력, 캐나다 내 정비·운용 기반 구축을 함께 제시했다. 캐나다가 독일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작동 중인 나토형 생태계에 캐나다를 편입시키는 구도였기 때문이다.

한화의 의미는 그 틀 밖에서 마지막까지 경쟁했다는 데 있다. 한화오션은 비나토 국가 기업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도 캐나다 철강, 인공지능, 우주, 정비·수리·개조(MRO·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현지 산업협력까지 묶어 해양 안보 파트너 모델을 제시했다. 독일이 기존 동맹 생태계의 강점을 앞세웠다면, 한화는 새 동맹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번 수주전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미국 필리조선소는 이 전략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화는 2024년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이후 50억 달러 투자 계획을 통해 생산능력을 연간 2척 미만에서 최대 20척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단순한 해외 조선소 인수가 아니다. 미국 조선업 재건과 해양 안보 공급망 안으로 들어가는 교두보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한화는 필리조선소를 통해 미국 상선과 해군 보조함, 장기적으로는 해군 함정 사업까지 겨냥하고 있다. 미국은 조선업 기반 회복이 절실하다. 중국의 조선 능력은 압도적으로 커졌고, 미국은 상선과 군수지원함, 정비 인프라에서 공백을 느끼고 있다. 한화가 필리조선소를 키우는 것은 미국 시장에 공장을 하나 둔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동맹국의 부족한 산업기반을 채우는 일이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과 미국 필리조선소 전략은 따로 볼 일이 아니다. 한쪽은 나토 중심의 정치가 작동한 결과이고, 다른 한쪽은 미국 산업기반 재건이라는 새 기회다. 캐나다가 독일을 선택한 이유가 동맹의 언어였다면, 한화가 다음에 써야 할 언어도 분명하다. 좋은 배를 만든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동맹의 조선·방산 기반을 함께 세울 수 있다는 증명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읽힌다. 김 회장은 한화오션을 단순한 조선 계열사로 보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후 한화는 조선, 방산, 항공우주, 에너지를 하나의 축으로 묶고 있다. 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바다 위 안보와 에너지 물류를 함께 다루는 회사로 바꾸고 있다. 남들이 부실과 부담을 먼저 본 산업에서 그는 장기 산업지도를 봤다.

상징적인 장면도 있다. 김 회장은 2024년 11월 한화오션 시흥 R&D캠퍼스를 찾았다. 이곳은 조선·해양·방산 기술을 연구하는 거점이다. 그는 한화오션이 수출형으로 개발한 2000톤급 잠수함 모형에 “K잠수함 수출로 글로벌 No.1 도약을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 임직원들에게는 조선·해양 부문이 한화의 미래에 가장 앞에 설 것이라고 했다.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초격차 기술도 주문했다.

이 장면은 이번 캐나다 수주전과 바로 이어진다. 한화오션은 그때 이미 K잠수함의 수출을 말하고 있었다. 글로벌 해양 방산 시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캐나다 수주전은 그 연장선에 있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세계 최대 안보 시장으로 들어가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동맹국의 산업기반, 현지 생산, 정비 능력, 장기 운용 신뢰까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 한화는 지금 그 숙제를 풀고 있다.

경영은 숫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큰 산업은 숫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조선과 방산은 더 그렇다. 설비와 인력, 연구개발과 국가 안보, 동맹 공급망이 함께 얽혀 있다. 당장 이익이 나지 않아도 버텨야 할 때가 있다. 한 번의 수주 실패를 다음 시장의 경험으로 바꿔야 할 때도 있다. 김승연 회장이 한화오션을 그룹의 미래 축으로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화오션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유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캐나다 수주전에서 기술 자격은 확인받았다. 북미 시장에서 이름도 각인시켰다. 미국에는 필리조선소라는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조선과 방산, 에너지와 안보를 묶는 그룹 전략도 선명해지고 있다. 이번 고배가 오히려 다음 수주전의 설계도가 될 수 있다.

방산의 세계는 한 번의 입찰로 끝나지 않는다. 동맹은 움직이고, 공급망은 다시 짜이며, 조선업의 가치는 다시 올라가고 있다. 그런 시대에는 오래 보고 버티는 기업이 결국 기회를 잡는다. 한화오션은 이번 수주전에서 물러섰지만 바다에서 밀려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바다로 나갈 이유를 얻었다.

 

한화오션의 바다는 아직 넓다.

 

토요경제 / 조봉환 기자 ce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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