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 25억 유영국이 최고가…한국미술 전면 등장

마리아김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9-06 13:29:15
  • -
  • +
  • 인쇄
국내 갤러리 31곳→57곳…초고가 경쟁보다 거래 폭·기관 네트워크가 성패 갈라
▲ 국제갤러리가 ‘프리즈 서울 2026’에서 선보인 유영국의 ‘Work’(1971). 작품은 페어 기간 22억~25억원에 판매되며 공개된 거래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국제갤러리]

 

2022년 세계적 갤러리와 고가 해외 작품을 앞세워 서울에 상륙한 프리즈 서울의 풍경이 5년 만에 달라졌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공개된 최고가 거래의 주인공은 해외 블루칩 작가가 아니라 한국 추상미술 거장 유영국이었다. 한국 갤러리 참가도 크게 늘었다. 프리즈 서울은 이제 “얼마나 비싼 해외 작품이 팔렸나”보다 “한국 미술이 국제 시장 안에서 어느 자리까지 올라섰는지”를 보여주는 무대가 되고 있다.

‘프리즈 서울 2026’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나흘간의 일정을 마쳤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프리즈 서울은 공식 자료 기준 전 세계 30개국 125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한 행사다. 국내 현장 보도에서는 참가 규모가 30개 국가·지역 133개 갤러리로 집계됐다. 프리즈 공식 자료도 올해 참가 갤러리의 70%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고, 50개 이상의 갤러리가 서울에서 상설 공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올해 가장 상징적인 거래는 국제갤러리 부스에서 나왔다. 유영국의 1971년작 ‘Work’가 22억~25억원에 판매됐다. 공개된 프리즈 서울 2026 판매작 가운데 최고가다. 구매자는 한국을 방문한 북미 지역 미술관 이사회(Board of Trustees) 멤버로 알려졌다. 해외 미술전문지도 이 거래를 올해 프리즈 서울의 최고가 공개 판매이자 2022년 프리즈 서울 출범 이후 한국 작가 작품으로는 최고가 거래라고 평가했다.

이 거래가 더 눈길을 끄는 이유는 시점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유영국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열고 있다. 전시는 5월 19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어지며 회화, 부조, 사진, 드로잉, 아카이브 등 17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미술관의 제도적 조명과 아트페어의 시장 반응이 같은 시기에 겹친 셈이다. 다만 회고전이 이번 판매를 직접 견인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해외 미술계 관계자가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를 고가에 구매했다는 사실 자체다.

한국 작가의 거래는 유영국에 그치지 않았다. 갤러리현대는 김창열 작품을 110만달러, 약 15억원에 판매했고, 화이트큐브는 박서보의 ‘묘법’ 연작을 30만달러, 약 4억1000만원에 팔았다. 조현화랑은 이배의 청동조각 7점을 각각 약 5000만원에서 2억원에 판매했다. 글래드스톤에서는 키스 해링 종이작품 10점이 총 250만달러에 팔렸지만, 올해 프리즈 서울의 핵심 장면은 해외 유명 작가의 고가 거래만이 아니었다. 한국 작가들이 여러 가격대에서 실제 거래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한국 갤러리의 존재감도 커졌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국내 갤러리는 57곳으로, 지난해 31곳보다 크게 늘었다. 2022년 첫 행사 당시 12곳과 비교하면 약 5년 사이 네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올해 전체 참가 갤러리를 133곳으로 보면 국내 갤러리 비중은 40%를 넘는다. 프리즈에 참가한 국내 갤러리 7곳이 공개한 첫날 판매액만 최소 51억원을 웃돈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판매액이 공개되지 않는 아트페어 특성상 이를 프리즈 서울 전체 성과로 볼 수는 없지만, 한국 갤러리가 국제 갤러리와 같은 무대에서 거래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확인된다.

올해 시장의 특징은 ‘초고가 한 방’보다 거래의 폭이었다. 지난해처럼 60억원을 넘는 한 작품이 시장 분위기를 압도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수천만원대부터 수억원대, 10억원대까지 여러 가격대에서 거래가 이어졌다. 해외 미술전문지는 올해 서울 아트위크 개막 현장을 두고 고가 작품 수요는 더 선택적이었지만, 상위 가격대 판매는 이어졌고 갤러리들이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고려해 신중한 가격 책정과 새로운 작가 소개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의 진단도 같은 방향이다. 폭스 CEO는 올해 서울 미술시장이 더 건강해졌다고 평가하면서, 시장의 성패를 100억원대 초고가 거래 한두 건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130개가 넘는 갤러리 전체의 거래와 반응이 중요하며, 올해 약 140~150곳의 미술관·기관 관계자가 참여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시장이 단순한 화제성보다 전문 컬렉터와 기관 네트워크를 넓히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프리즈의 내용도 넓어졌다. 올해 프리즈 서울은 포커스(Focus)의 범위를 아시아를 넘어 유럽·미주 지역의 젊은 갤러리까지 확장했고, 머티리얼 프랙티스(Material Practice)와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새로 도입했다. 머티리얼 프랙티스는 공예와 현대미술, 디자인의 경계를 다루고, 스포트라이트는 20세기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작가를 다시 불러낸다. 이미 검증된 블루칩 작가만 모으는 장터에서 신진 갤러리, 공예, 20세기 작가 재평가까지 포괄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프리즈의 영향은 코엑스 밖으로도 번졌다. 프리즈는 을지로, 한남, 청담, 삼청을 잇는 네이버후드 나잇(Neighbourhood Nights)을 운영했고, 프리즈 라이브(Frieze LIVE), 프리즈 필름(Frieze Film), 토크와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 전역으로 페어의 동선을 넓혔다. 프리즈 측은 올해 프로그램이 페어장 벽 안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전역에서 느껴져야 한다는 방향성을 밝혔다.

내년은 또 다른 시험대다. 프리즈 서울은 코엑스 리뉴얼 공사에 따라 2027년 제6회 행사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연다. 키아프 서울(Kiaf SEOUL)은 코엑스에 남는다. 두 페어는 물리적으로 분리되지만 공동 프로그램과 통합 티켓 등 협력 관계는 이어간다. 프리즈 측은 DDP 이전을 계기로 더 집약적인 공간 구성과 서울 전역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프리즈 서울은 첫해의 열기를 반복한 행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열기가 빠진 뒤 무엇이 남았는지를 보여준 행사에 가까웠다. 해외 초고가 작품의 기록 경쟁은 줄었지만, 한국 작가와 갤러리가 전면으로 올라왔고 거래 가격대와 구매층도 넓어졌다. 해외 기관 관계자들의 방문은 한국 작가가 단기 판매를 넘어 국제 미술계의 전시와 연구, 소장 체계 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을 보여줬다.

프리즈가 서울에 세계 미술시장을 데려온 첫 5년을 마쳤다면, 이제 서울은 그 시장 안에서 한국 미술의 자리를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다음 5년의 성적표는 나흘간의 관람객 수나 최고가 한두 건이 아니다. 한국 작가가 해외 미술관의 전시와 소장으로 이어지는지, 국내 갤러리가 국제 컬렉터와 지속적인 거래를 만드는지, 프리즈가 떠난 뒤에도 서울의 미술시장이 그 관계를 이어가는지가 기준이 될 것이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칼럼니스트 kimjjyy10@gmail.com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HEADLINE

연중캠페인

토요경제 [로드인 포토로그]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