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금지, 주주보호인가 성장판 잠금인가

임종호 기자 / 기사승인 : 2026-07-06 16: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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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거래소 6일 세부기준 공개…해외도 상장 자체보다 ‘기존 주주 가치 이전’ 통제
▲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자본시장 개편 관련 벤처업계 정책 제안 기자간담회에서 정책 제안서를 발표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코스닥 승강제 도입을 유예하고, 중복상장 금지 조항에 벤처기업을 위한 예외 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의 중복상장 금지 가이드라인은 자회사 상장을 막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모회사 일반주주의 동의와 보상 없이 핵심 사업의 성장가치를 새 주주와 지배주주에게 넘기는 구조를 막겠다는 제도다. 재계가 “성장 전략 위축”을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 바이오, 로봇,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은 자회사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가 중요한 자금조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쟁점은 상장 허용 여부가 아니라, 자회사 상장이 ‘새로운 가치 창출’인지 ‘기존 가치 이전’인지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6일 중복상장 원칙금지·예외허용을 위한 거래소 규정과 가이드라인 세부기준을 공개했다. 당국은 “모회사 일반주주 권익을 고려하지 않는 비대칭적 중복상장”을 엄격히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제시한 2025년 말 기준 전체 시가총액 대비 상장사 간 지분보유 시가총액 비율은 한국 11.2%, 미국 0.05%, 일본 4.0%, 중국 2.4%, 대만 2.7%다. 한국의 중복상장이 해외보다 관행적으로 많다는 것이 당국 판단이다.

새 기준의 중심에는 모회사 이사회가 있다. 앞으로 모회사 이사회는 자회사 상장이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주주보호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주주와 소통하거나 주주동의 여부를 확인하고, 이사회 찬반 결의를 거쳐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는 이를 모회사 이사회의 5대 의무로 제시했다. 자회사를 해외 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경우에도 같은 의무가 적용된다.

물적분할 자회사는 더 엄격하다. 모회사 주주동의가 필수다. 동의 기준에는 이른바 3%룰이 적용된다. 3%를 초과하는 의결권은 제한되고, 참석 지분의 과반과 전체 의결권의 4분의 1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당국은 주주동의를 받은 경우 주주보호 노력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추정하되, 그렇지 않으면 거래소가 영업·경영 독립성과 모회사 투자자 보호를 따져 심사하도록 했다.

당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은 한국 증시의 오래된 불신 요인이다. 모회사 주주는 핵심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주식을 산다. 그런데 그 사업부가 자회사로 떨어져 나간 뒤 다시 상장되면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 주식을 직접 받지 못한 채 지주사 할인과 지분 희석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지배주주는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자회사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일반주주는 성장 과실에서 멀어지는 구조가 된다. 이것이 금융당국이 말하는 ‘비대칭적 중복상장’이다.

재계의 반론도 가볍지 않다. 신사업은 돈이 많이 든다. 첨단산업은 초기 투자 규모가 크고 회수 기간도 길다. 차입만으로 감당하면 재무구조가 나빠진다. 자회사 상장은 부채를 늘리지 않고 성장자금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특히 해외 투자자에게 특정 사업의 가치를 독립적으로 평가받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넓히려면 별도 상장이 필요할 수 있다. 기업들이 “일률적 동의와 심사 강화가 성장 전략과 자본시장 활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보면 중복상장을 아무 조건 없이 허용하는 시장은 드물다. 미국은 자회사 분리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일반적인 분사 방식은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을 비례 배분하는 스핀오프(Spin-off)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등록 면제 스핀오프의 조건으로 모회사 주주가 대가를 내지 않고, 주식이 비례 배분되며,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유효한 사업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해왔다. 핵심은 기존 주주의 경제적 지분을 보존하는 것이다.

홍콩은 더 직접적이다. 홍콩거래소는 상장사가 자회사를 별도 상장하려면 기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을 현물배당하거나 공모주 우선청약 기회를 주는 ‘어슈어드 엔타이틀먼트(Assured entitlement)’를 요구한다. 기존 주주가 자회사 가치 이전으로 입는 간접 손실을 보전하라는 취지다. 법적 제약 등으로 이를 제공하지 못할 때도 이사회가 공정성과 합리성을 확인하고 그 사유를 공시해야 한다.

싱가포르도 별도 상장을 쉽게 보지 않는다. 싱가포르거래소(SGX·Singapore Exchange)는 기존 상장사의 자회사나 모회사가 상장을 신청할 때 자산과 영업이 기존 상장사와 실질적으로 같으면 통상 상장 적격성이 낮다고 본다. 다만 별도 상장의 사업상·상업상 이유는 심사한다. 이는 상장을 무조건 막는 방식이 아니다. 왜 독립 상장이 필요한지, 기존 상장사와 사업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투자자에게 어떤 새 가치가 생기는지를 따지는 방식이다.

일본은 한국과 가장 닮았다. 상장 자회사가 많았고, 모자회사 동시상장이 소수주주 보호와 기업가치 제고를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도쿄증권거래소(TSE·Tokyo Stock Exchange)는 2025년 2월 모자회사 상장에 관한 투자자 관점을 발표하며, 모자회사 관계에 있는 상장사에 그룹 경영과 소수주주 보호 조치, 관련 공시를 요구했다. 투자자들이 현재 기업들의 조치와 공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 점도 공개했다.

해외 사례를 종합하면 결론은 명확하다. 선진 시장도 중복상장을 법으로 일괄 금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존 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구조는 강하게 통제한다. 미국은 비례배분과 정보제공을 중시한다. 홍콩은 기존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 취득 기회를 보장한다. 싱가포르는 사업 독립성과 상업적 필요성을 본다. 일본은 상장자회사 체제에서 소수주주 보호와 독립이사의 역할을 압박한다. 한국의 새 가이드라인도 이 흐름에 있다.

따라서 이번 규제는 ‘기업 옥죄기’로만 볼 수 없다. 자회사 상장이 진짜 성장자금 조달이라면 허용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성장의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다. 조달 자금이 신사업 투자에 쓰이고, 자회사가 독립적 사업성을 갖추며, 모회사 일반주주에게도 합리적 보상이나 이익이 돌아간다면 중복상장은 자본시장에 도움이 된다. 반대로 알짜 사업부를 떼어내 새 주주에게 팔고, 모회사 주주는 지분 희석과 할인만 떠안는다면 이는 성장 전략이 아니라 가치 이전이다.

기업들도 상장 전략을 바꿔야 한다. 앞으로는 “신사업 투자자금이 필요하다”는 설명만으로 부족하다. 왜 자회사 상장이 필요한지, 차입·전략적 투자·합작법인보다 IPO가 더 적절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회사 주주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 숫자로 설명해야 한다. 자회사 주식 현물배당, 공모주 우선배정, 모회사 자사주 소각, 특별배당, 배당 확대, 신사업 수익 공유 구조 같은 구체적 주주보호 방안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당국도 균형이 필요하다. 기준이 느슨하면 쪼개기 상장 관행을 막지 못한다. 기준이 경직되면 첨단산업의 성장자금 조달을 막을 수 있다. 특히 바이오, 로봇, 인공지능, 반도체처럼 모회사와 사업 성격이 다르고 외부 자본 유치 필요성이 큰 경우에는 실질 심사가 중요하다. 상장의 목적, 자금 사용처, 독립성, 기존 주주 보호 수준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결국 중복상장 금지 논란의 본질은 규제냐 성장전략이냐의 대립이 아니다. 자본시장이 누구의 이익을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배주주와 기업만의 시장이면 상장은 자금조달 수단에 그친다. 일반주주의 권리가 살아 있는 시장이면 상장은 기업 성장과 투자자 신뢰를 함께 키우는 제도가 된다. 금융당국의 이번 가이드라인은 그 경계를 다시 긋는 첫 시험대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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