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주인공은 아니지만, 화면을 지켜온 20년”…45세 무명모델 손예린의 버티는 삶

최성호 기자 / 기사승인 : 2026-04-25 21:22:55
  • -
  • +
  • 인쇄
화려한 화면 뒤 '보이지 않는 노동’조명…병간호와 생계 사이에서도 카메라 앞 지킨 45세 모델

 

▲“피아제(PIAGET) 엠버서더 공효진 과 손예린(오른쪽)이 함께한 장면. / 유튜브 갈무리”

 

[토요경제 = 최성호 기자] 스포트라이트는 늘 주연에게 쏠렸지만, 그 빛을 받쳐온 얼굴도 있었다. 20년 넘게 이름 없이 카메라 앞에 서온 45세 광고모델 손예린의 이야기다.


“20대 초반, 고향을 떠나 상경한 그는 친구와 함께 우연히 마주한 광고 에이전시에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곳에서 처음 모델 제안을 받으며 광고계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화려해 보이는 모델의 세계는 치열했고, 생활비를 감당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특히 “예쁘지 않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던 그는 일반적인 모델의 기준에서는 비켜서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점이 그의 생존 방식이 됐다. 제품보다 튀지 않는 외모, 주인공을 방해하지 않는 존재감. 광고계에서는 오히려 그 균형이 필요했고, 그는 그 자리에 남았다.

주연도, 조연도 아닌 ‘배경 속 인물’. 그러나 그 역할은 단순하지 않았다. 화면을 채우고, 주인공을 살리고, 제품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자리였다. 에이전시는 그의 이러한 특징을 살려 드라마 단역과 공익광고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후에는 피아제(PIAGET), 아시아나항공 CF 등 수많은 브랜드 광고에서 그는 언제나 중심이 아닌 자리에서 화면을 지탱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반복해서 대중의 시야를 스쳐갔다.

전환점은 2017년 찾아왔다. 어머니의 암 진단이었다. 그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병간호와 생계를 동시에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촬영과 병원을 오가는 일상이 이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버거움은 커졌다.

 

▲  브랜드 이미지를 촬영하고 있는 손예린 모델./ 사진=손예린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쳤다. 광고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출연 기회는 줄어들었고, 결국 생계를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해야 했다. 모델이라는 직업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시기가 이어졌다.


4년의 시간 동안 그는 병실과 현장을 오가며 버텼다. 잠시 호전되는 듯했던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됐다. 슬픔을 온전히 감당할 틈도 없이, 생계를 위해 또다시 현장으로 나가야 했다. 지금도 그는 광고 촬영이 없는 날이면 일용직 일을 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손예린은 여전히 무명이다. 이름이 크게 알려진 적도 없고, 대표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도 없다. 하지만 그는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화면의 중심이 아닌 곳에서, 다양한 상품을 돋보이게 하고 장면을 완성하는 주연인 아닌 조연의 역할을 묵묵히 이어왔다. 화려하지 않은 자리에서 버티는 힘, 그 시간이 쌓여 그의 경력이 됐다.

오늘도 그는 카메라 앞에 선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있는 장면 속에서, 그러나 분명히 필요한 얼굴로. 주연이 아닌 자리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그가 선택한 방식이고, 지금까지 버텨온 이유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