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형 칼럼] 세 번 고개 숙인 이재용…대한민국은 왜 아직도 삼성을 필요로 하는가

이덕형 기자 / 기사승인 : 2026-05-16 23: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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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피하지 않은 총수의 귀환…‘JY의 사과 리더십’이 던진 메시지
▲이덕형 편집국장

대한민국 경제는 지금도 반도체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는 여전히 삼성전자가 있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시대다. 그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자 국민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해외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한 사람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다.

이 회장은 공항에서 준비해온 사과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세 번 고개를 숙였다. “사과드립니다”, “사죄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단순한 형식적 멘트가 아니었다. 그는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고 말했다. 기업 총수에게 가장 어려운 말은 변명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러나 이날 이재용 회장의 메시지에는 변명이 없었다. 오직 책임만 있었다.

많은 기업 총수들이 위기 앞에서 법률 검토 뒤에 숨고, 실무진 뒤에 숨어버린다. 그러나 이재용 회장은 달랐다. 문제가 커질수록 스스로 전면에 섰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그랬고, 2020년 무노조 경영 논란 당시에도 직접 국민 앞에 섰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도체 생산 차질이 국가경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총수가 직접 책임을 짊어지는 선택을 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사과했다”는 데 있지 않다. 한국 재계 문화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재벌 총수들의 위기 대응은 침묵과 회피, 혹은 법적 논리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은 감정과 책임, 국민적 공감이라는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체면보다 책임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삼성 내부의 노사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성과급 문제도, 반도체 경쟁력 논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화의 출발점이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면 협상은 무너진다. 반면 책임지는 리더가 먼저 손을 내밀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노조 역시 “교섭을 재개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회장의 사과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을 다시 움직인 셈이다.

지금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이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패권을 놓고 충돌하고 있고, AI 산업 확산 속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경제의 마지막 전략 자산으로 불린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혼란은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산업 경쟁력의 문제다.

그래서 이번 이재용 회장의 세 번의 고개 숙임은 단순한 사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삼성을 지키겠다”는 메시지이자, 동시에 “대한민국 경제를 흔들리게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기업은 결국 사람의 조직이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보다 리더의 태도다. 이번 이재용 회장의 모습은 적어도 한 가지를 보여줬다. 책임지는 리더십은 아직 삼성 안에 살아 있다는 점이다. 

 

[토요경제 = 이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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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 기자
이덕형 기자 1995년 방송사 기자로 입사한 뒤 사회부,정치부,경제부 등 주요부서를 두루 거쳤습니다. 앵커와 취재기자,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현장을 누볐고,올해로 기자 생활 31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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