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에 대한 신뢰성이 바닥을 치고 있다. 지난달 은행 지점장이 개인적으로 금전을 유용하는 사건에 이어 증권사 부지점장이 고객 돈 수십억원을 옵션에 투자했다가 몽땅 날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몇몇 투자자들과 금융회사 직원들이 결탁해,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투자자의 자세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런 불법 행위의 경우 피해 보상을 받기도 어려워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한투자증권 명동지점 부지점장 최 모(46)씨는 20여명의 고객으로부터 60여억원을 일임받아 옵션에 투자했다가 대부분 날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최씨는 고객들에게 "고급 옵션투자기법을 이용해 원금 손실없이 최소 연 8∼10%의 수익을 올려주겠다"며 돈을 끌어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상은 주로 60대 이상 노인이나 가정 주부로, 최씨는 고객명의의 계좌로 옵션 일임매매를 하면서 매달 운용보고서, 잔고증명서 등을 보내주며 고객들을 관리해 왔다.
대한투자증권 홍보팀 임상수 차장은 "최씨가 개인적인 사익보다 고객의 돈을 더 불려주고자 무리를 한 것 같다" 면서 "아직 그가 행한 일임매매가 불법적인 부분인지, 합법적인 부분인지 가려내지 못했지만 정확한 경위 파악을 위해 내부 감사실에서 최씨와 고객들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언론에서 피해 고객이 주부, 노인이 많다고 우려하는데, 이는 명동의 주 투자자 층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면서 "이들은 주식 재테크에 관심이 많고, 정보를 축적한 큰 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증권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위임매매(위법 일임매매)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피해 고객은 보상을 받기 힘들다. 매매 주문을 본인이 직접 해야하는 원칙에서 벗어나,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투자 전문성을 가진 증권사 직원에 위탁해 매매가 이뤄진 불법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주장하는 합법적 일임매매는 '증권회사의 영업행위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된 매매행위를 말한다. 반드시 증권사와 서면계약을 해야하고, 계좌 관리자(증권사 직원) 지정, 매매 종목 10종목 제한, 약정 기간 1년 제한 등 범위가 크게 한정돼 있다.
그리고 해당 증권사가 매달 일임매매 내역을 증권업협회에 보고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사실상 합법적 일임 매매를 하는 증권사는 단 한곳도 없다. 지난 2002년말 증권노조가 2,997명의 증권사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5.9%가 위임매매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증권거래소 분쟁조정실 박승배 과장은 "최씨가 한 옵션투자라는 특수성상 고객을 속였을 가능성이 엿보인다"며 "원칙적으로 위임매매는 불법이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증권사 측은 "고객의 금전보상 부분을 명확히 하고 있고, 최근 판례상 증권사의 책임이 크게 증가해 증권사의 손실 부담이 65-70% 정도에 이르고 있다"며 "최씨의 고의성, 과실이 감사에서 드러날 경우, 정신적 피해 보상에 관해서도 관련 법안의 규정에 따라 지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증권업협회는 실제 판례 추세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증권업협회 증권홍보실 최갑수 과장은 "최근 판례를 보면 증권사의 손실 부담은 거의 없는 편"이라며 "투자자들이 실질적 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증권사 직원에게 고객 돈을 물어줄 의무가 없어 피해를 구제 받기는 어렵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 직원들이 문책, 인사 상의 불이익을 두려워해 손실분을 자기 돈으로 물어주고 소송을 취하하는 경우가 간혹 있으나 법적 보상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피해 투자자들은 금감원에 분쟁조종을 요청해, 금감원 감사실에서 감사후 손실금 부담에 대한 조정에 들어간다. 조정이 실패하면 법원 소송으로 가게된다. 이때 해당 증권사 직원은 징계를 받거나 거래규모와 책임 정도에 따라 견책에서 징계면직을 받게 된다. 거래액 100억원 이상이면 해고될 수 있다.
대투증권 관계자는 "이미 금융감독원에 사고 사실을 신고했고, 해당 지점에 본사 직원을 파견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며 "최씨의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면직처리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위임매매는 수익이 나는 경우에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다가, 반대의 경우에만 분쟁으로 번진다.
때문에 증권업 관계자는 이런 투자자들의 관행에도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과장은 "투자자들이 (투자가)잘 되면 한 턱 내고, 못 되면 증권사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요즘은 투자자들도 분석가 못지 않게 증권 상식이 풍부하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투자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됐는데도, 거액을 맡겨놓고 스스로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식투자 초보자라는 이유로 전직 증권사 직원이나 종목 전문가 등을 주문대리인으로 지정하고 투자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매매체결 내역 등 계좌 운용사항을 꼼꼼하게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지난달 우리은행에서도 강남지역 지점장이 '개인적으로' 특정 고객에게 회사 자금을 유용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금전대차 행위는 각 은행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고, 특히 황영기 우리은행장이 취임 후 전 부점장에게 내려보낸 첫 번째 지시 사항도 '사적 금전대차 엄금'이었다.
그러나 금전대차는 은행 일선 지점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온 것으로, 영업을 위해 고객과 가까워 지다보니 사적으로 돈을 빌려주거나 빌려쓰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전했다.
그냥 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사적 금전대차의 유형은 △거래처의 신용카드 결제자금을 대신 막아준다거나 △거래처의 교환자금이나 이자를 대납해 주는 경우 △대출을 받는데 편의를 제공하고 일부자금을 직원이 빌리거나 △거래처와 밀착해 자금을 차입 △타인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직원이 사용하는 경우 △회수된 대출금을 직원이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 대개 돈을 빌려준 고객에게 대가를 바라거나 은행 규정을 위반하면서 편의를 봐주는 문제를 초래한다. 게다가 이 같은 잘못된 관행은 자칫 대형 금융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은행 홍보팀 정희경 차장은 "내부 조사에서 발각된 사례로, 자체적으로 이미 문제가 마무리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이어 "보통 통합과정에서 많이 발생하는 일들로 직원들의 신분이 확실치 않을 때 일어난다" 면서 "내부단속 기관의 활동으로 거의 없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나 은행 모두 수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기업이다. 때문에 각 기업마다 내부 윤리강령을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윤리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금융 종사자에게 접근해, 불법도 서슴지 않고 이익 올리기에만 매달리는 투자자들이 있는 한 향후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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