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화가 된지 15년째지만 실업농구 시절보다 선수층과 저변이 엷어졌고, 성인무대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수준도 예년만 못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특정 팀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농구 전체의 문제다. 그러다보니 국가대표팀의 전력 약화라는 문제로 비화된다.
그래도 WKBL에서는 지난 시즌 박혜진(24‧우리은행)이 괄목할만한 기량 향상과 함께 정규리그 MVP를 차지하며 희망을 보여줬다. 이미 2012-13 시즌을 마친 후 존스컵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 연이어 선발됐던 박혜진은 ‘제25회 FIBA 아시아 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거쳐 한층 더 기량이 성숙된 모습을 보여줬다.
소속팀 우리은행의 감독이자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위성우 감독의 훈련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해 “우리 감독님만 피하면 살 것 같다”고 너스레를 놓았던 박혜진은 지난 17일에도 어김없이 이어진 강도 높은 훈련이 끝난 후 “많이 힘드냐”는 질문에 “보셨잖아요?”라고 반문하더니 “죽을 것 같다”며 고된 훈련의 소회를 밝혔다.
언니들, 눈빛 달라지면 180도 변해
박혜진은 현재 대표팀이 진행하고 있는 훈련의 강도가 소속팀에서 진행되던 것과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소집된 선수들이 국내 최고의 선수들인 만큼 같은 훈련을 해도 오히려 어려움이 더 있다고 말했다.
“3대3 같은 걸 하더라도 언니들 자체가 워낙 잘하니까 수준이 높다보니 쉽게 뚫기도 힘들고, 뭐 하나를 해도 뻑뻑하고 그래요. 그러다보니까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훈련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후배를 이 잡듯이 힘들게 하는 ‘독한 언니’들은 과연 누굴까? 박혜진은 이미선, 변연하, 신정자 등 대표팀의 맏언니 들을 꼽았다.
“언니들이 나이도 있고 몸이 좋지 않은데도 있거든요. (이)미선 언니도 훈련때마다 앓는 소리도 많이하고 그러는데, 정말 뭐 하나 내기라도 하게 되면 그 순간 눈빛이 달라져요.”
박혜진은 이러한 선배들을 보면서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자신만의 장점이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게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현재 대표팀에서 막내인만큼 자신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체력인 것 같다고 말한 박혜진은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서게 되면 공을 잡았을 때 빨리 치고 넘어가서 상대 수비가 쉽게 정돈되지 않도록 휘젓고 다니고,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플레이를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위성우 감독은 박혜진에게 소속팀에서와는 달리 플레이타임이 많지 않은 만큼 대표팀에서는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데미지를 줄 수 있는 플레이를 하라”고 주문을 했다고 한다.

박혜진은 지난 해 ‘제25회 FIBA 아시아 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마치고 위성우 감독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친 적이 있다.
“감독님이 미선 언니 대신 저를 투입하는데 벌써 표정부터 불안해 하시는게 눈에 보이는 거에요. 사실 제가 미선 언니만큼 잘 하지 못하니까 그러시는 건 알겠는 데 속은 상했죠. 특히 다른 감독님도 아니고 우리팀 감독님이신데... ”
이 때문에 박혜진은 소속팀에 복귀한 후 시즌 초반, 일부러 보란 듯이 경기에 임해 플레이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위 ‘무력시위’를 펼친 것이다. 지난 시즌 초 이러한 박혜진의 플레이는 우리은행 초반 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결국 정규리그 우승의 초석이 됐다.
위성우 감독 역시 이러한 박혜진의 의견이 솔직히 대답했다.
“혜진이도 그걸 알았대요?”라며 호탕하게 웃은 위성우 감독은 “혜진이도 좋은 선수고 잘 할 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국제대회에서는 경험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고, 미선이가 해왔던 플레이를 생각하면 감독으로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런 생각을 해도 선수한테 티가 나면 안되는데, 처음 대표팀 감독을 맡다보니 정신이 없고 경황이 없어 그런 부분까지 챙기지 못한 것 같다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박혜진이 시즌 초반 엄청난 화력과 함께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고, 팀이 통합 2연패를 달성했다는 걸 상기하고는 “결과적으로 잘 된거네요”라며 만족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리그 MVP에 오른 박혜진의 위상이 이번에는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요. 이번에도 불안해 하실 거에요.”
박혜진은 잘라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오기 아닌 오기가 생겼다고 말한다. 위성우 감독의 불신(?)의 벽을 오기 삼아서 정말 제대로 해보겠다는 것이다. 박혜진은 지난해와는 달리 ‘아, 내가 못 하는구나’라기 보다는 ‘뭐라도 보여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하며 아시안게임에서의 활약을 다짐했다.
준비 철처하면 상대가 누구든 자신
박혜진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상대로 중국을 뽑았다. 아무리 대표 1진이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선다고 해도 ‘중국은 중국’이라는 것이 박혜진의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신장이 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라고 말한 박혜진은 오히려 중국과 일본이 대표 1진이 아닌 만큼 복병으로 떠오른 대만에 대해서는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작년에 대만한테 졌을 때는 우리가 의욕을 보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마음먹고 경기에 나서면 아직 대만한테 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일단, 언니들 눈빛이 내기할 때 눈빛만 나오면(웃음)... 대만한테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위성우 감독 역시 대만도 좋은 팀이지만, 대표 2진이 나온다 해도 선수층이 두터운 중국이나 일본이 더욱 상대하기 껄끄러울 것 같다며 경계를 나타낸 바 있다. 다른 대표팀 선수들도 대표 2진이라고 해도 중국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이 '2진'이 나선다는 것으로 인해 오히려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인만큼 금메달 획득에 대한 압박이 이미 상당한 상황에서 상대가 최상의 전력으로 나서지 않으니 '당연히 금메달을 따야한다'는 중압감이 엄청나다는 것.
“솔직히 누가 나오는 것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작년 대회 때 중국은 세대교체를 하는 데 준비가 아직 다 안됐다는 느낌이었고, 일본은 연습에 의해 조직력이 상당히 좋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이번에는 우리가 일찍부터 모여서 연습을 시작했으니까 기간이 충분한 만큼 조직력을 극대화하면 어떤 수준의 상대가 나오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위성우 감독은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 중의 하나로 박혜진과 김단비 등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꼽았다. 여자농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세대교체를 위해 어린 선수들의 성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지난시즌 WKBL MVP를 수상하며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등장한 박혜진도 이러한 부분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박혜진은 “다른 나라에서도 언니들이 은퇴하면 우리나라가 별 볼일 없다고들 하는 것 같다”면서 “이번에 (김)정은 언니나 (김)단비 언니, 그리고 내가 좀 치고 나가서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조금씩 이름이 불리고 하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계속 경계하고 두려워 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플레이를 펼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당연히 언니들이랑 수준차이가 나지만, 경기에 나서면 그런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려고요. 단순히 언니들 체력 안배가 아니라, 서로 비슷한 수준이 되서 선수들 모두가 돌아가면서 게임을 뛸 수 있도록 기량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시즌 WKBL을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를 굳힌 박혜진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한국 여자 농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발돋움하기 위한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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