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투자자’는 없다

정동진 / 기사승인 : 2018-04-11 09: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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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pixabay>

[토요경제=정동진 기자] 삼성증권의 ‘우리사주 배당 사고’ 이후 ‘개미’라는 말이 자주 들리고 있다. 언론도 이구동성으로 ‘개미’ 또는 ‘개미 투자자’의 피해를 보도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투자자 피해구제 전담반’을 설치,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증시 주변에서는 소액투자자를 개미라고 부르고 있다. 아주 부드러운 표현이다. 그 개미 중에서 좀 많은 투자를 하는 투자자를 ‘황제개미’, ‘슈퍼개미’라고 올려서 부르기도 한다. ‘스마트개미’ 개미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어떤 때는 ‘남의 나라’의 소액투자자에게까지 개미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미국의 주가가 폭락했을 때도 개미들이 큰 손해를 봤다는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개미는 잘못된 이름이다. 이솝이야기를 들추지 않더라도, 개미는 땀 흘려 일해서 벌어야 개미다. 증권시장의 개미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 최소한 은행 정기예금 이자보다는 한참 높은 차익을 얻으려고 투자하는 개미이기 때문이다. 그런 투자자에게 개미라는 ‘애칭’은 어울릴 수 없다.

더구나 주식투자자들은 개미처럼 꾸준하지도 못하다. 주가가 추락하면 손을 털고 빠져나가기도 한다. 작년 가을 집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거래량 가운데 95.6%가 ‘초단타매매’, ‘데이트레이딩’이라고 했다. 한 종목을 느긋하게 투자하지도 않는 것이다.

개미라고 부를 수 있는 투자자는 제한적이다. 꾸준하게 주식저축을 하거나, ‘펀드’에 만기 때까지 돈을 잠겨두는 투자자들이 ‘진짜 개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투자자는 아무래도 드물다.

개미라는 용어는 1980년대 중반, 이른바 ‘3저의 호기’에 힘입어 증권시장의 주가가 치솟을 때 생겼다. 당시 월급쟁이들은 직장 동료끼리 서로 보증을 서주며 보험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을 샀다. 농민은 소 팔고, 논까지 팔아 투자했다. 서민들은 땅 팔고, 집 잡혀 투자하기도 했다. 어떤 중소기업은 아예 기업을 처분한 돈으로 주식놀이를 했다.

이때를 전후해서 생긴 용어가 ‘개미군단’이었다. 증권시장으로 몰려오는 투자자들이 마치 개미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당시는 군사정권 때였으니까, ‘군단’이었다. 그 개미라는 점잖은 용어에 빠져서 증권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돈만 날리는 개미가 적지 않았다. 이 말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군단을 빼고, ‘개미’라고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그런 증시 주변의 용어를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그런 표현에 현혹될 수 있다. 특히 주식에 처음 손대는 초보 투자자들은 더욱 그럴 수 있다. 개미처럼 열심히 투자할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식 투자는 ‘제로섬 싸움’이다. 승자가 독식하는 게임이다. 대박은 극소수, 쪽박만 불특정다수인 곳이 증권시장이다. 그런 증권시장이 애매한 표현으로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미라는 표현은 지금이라도 버려야 좋을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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