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일본 출장을 갔었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일본의 공항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시간은 대충 오후 6시쯤이었다. 계절은 봄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하늘이 너무 캄캄했다. 화창한 봄날의 오후 6시쯤 하늘이 그렇게 어두울 수는 없었다. 공항이 너무 밝아서 그런 것 아닐까 했다. 그랬다가 입국수속을 하는 사이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귀국한 후, 일본 공항을 떠올렸다. 그 시간에 서울에 있었더라면 하늘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해가 빨리 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일본과 같은 ‘표준시’를 쓰고 있다. 동경(東經) 135도다.
그러나 일본의 도쿄는 동경 139.75도이고, 서울은 127도다. 경도 1도가 시간으로는 4분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를 계산하면, 서울과 도쿄의 실제 시간 차이는 약 51분이다.
그런데도 시간대가 같다. 일본이 오후 6시면 우리도 오후 6시다. ‘일의대수(一衣帶水)’라면서도 도쿄가 서울보다 해가 일찍 뜨고 빨리 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경술국치’ 이후 빼앗겼던 표준시를 광복 후인 1954년에 되찾았다.
“일제의 침략 이래 사용되어온 표준시간을 춘분인 3월 21일 0시 30분을 기하여 구 한국시간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동일(同日) 0시 30분이 새로운 한국시간으로 0시 정각이 된다.”
그렇지만 표준시의 ‘광복’은 불과 7년에 그쳤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이 다시 일본 표준시에 맞춰버리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사주팔자’까지 틀어지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표준시에 맞춘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생년월일시사주(生年月日時四柱) 가운데 시(時)가 32분씩 틀리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사주를 보려면 32분을 빼줘야 한다고 했다. 32분의 차이가 나야 정상인 시간을 일본과 맞추다보니, 우리는 사실상 일 년 내내 ‘서머타임’을 하는 셈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 때문인지, 표준시 변경에 대한 논의가 적지 않았다. 국회에서 ‘표준시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랬던 표준시를 북한이 먼저 바꾸고 있었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 15일을 기해 표준시를 30분 늦춰서 새로운 표준시, ‘평양시’를 만든 것이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일제에 의해 말살됐던 조선의 표준시간을 되찾은 것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일제 잔재를 완전히 숙청하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민족사적 장거”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우리 정부는 “일제 잔재가 아니라, 국제적인 관례와 실용적인 측면에서 기준을 생각해 13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남북 통합, 표준 통합, 남북 동질성 회복 등에 지장을 초래하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그런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나라가 해방된 때로부터 70년이 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표준시간이 아니라 일제가 강요한 시간을 쓴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민족적 수치이며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사업”이라며 “일제 식민지통치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나라의 표준시간을 되찾는 것은 정정당당한 자주권 행사로서 그 누구도 시야비야할 수 없다”고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남조선 괴뢰패당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특등 친일 매국노의 무리, 더러운 역적집단이라는 것을 다시금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 표준시를 북한이 표준시를 다시 ‘원위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과 평양의 시간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평화의집 대기실에 시계가 두 개가 걸려 있었는데, 하나는 서울시간, 다른 하나는 평양시간을 가리키고 있어 이를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며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했다는 발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 표준시로 돌아가겠다는 셈이 된다. ‘시간의 통일’은 바람직하지만, 일본 표준시를 다시 채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유감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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