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서구식 경마가 도입된 지 백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왔다. 한국경마는 근현대사속에서 우리민족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으나 아직도 부정적 시선이 남아있다. 경마의 날을 맞아 지난 100년간의 한국경마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조명해보자.
산고와 긴 기다림의 여정
우리나라 경마는 1914년 4월 조선공론사가 주최한 조선경마대회가 용산 구연병장에서 열렸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경마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922년 4월 5일 사단법인 조선경마구락부가 설립되면서 대한민국 최초로 공식적인 경마시행 법인이 탄생하였고, 같은 해 5월 20일 첫 공식 경마대회를 개최하여, 이 날을 ‘경마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1933년 1월 1일 조선경마령이 시행되면서 모든 경마는 법규에 따라 시행되었으며, 법인 경마협회가 발족하면서 전국의 경마를 통제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공인경마시대’라고 한다.
새 출발, 진통의 시기와 도약을 위한 준비
광복 후 조선마사회의 일본 경영진은 평소 안면이 있던 한국 승마인들에게 마사회 인수를 부탁하였고, 이들은 조선마사회 인수단을 구성하여 미군정 당국의 승인을 얻게 되었다.
광복 직후 국내 주요인사였던 이승만, 김구 등은 신설동경마장을 자주 찾았고, 특히 백범 김구 선생은 주말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경마장을 찾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미군정이 폐지되면서 정부는 마사회의 명칭을 한국마사회로 공식 인가하고, 경마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였다.
광복 후 꾸준한 성장세에 있던 한국 경마는 1950년 6·25전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고, 1953년까지 약 4년간 긴 휴면기에 접어들게 되었으나 다시금 인기가 부활하게 된다.
1966년 한·일친선경마를 기점으로 하여 처음으로 해외문을 두드렸다. 1969년 아시아경마회의에 가입신청을 하였고 이듬해 9월에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이 후 국력의 성장과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경마도 급성장해 우리나라 경마는 비로소 성장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제는 말 산업이다.
1989년 경기도 과천에 서울경마공원을 개장하면서 36년간 이어진 뚝섬경마장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다. 이후 1993년에는 경마계의 숙원사업이었던 개인마주제를 도입하여 원활한 경마시행과 공정성을 강화하였다.
개인마주제 도입이후 한국경마는 계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2010년에는 매출액 7조 5000억원, 입장인원 2100만명으로 세계 7위 수준으로 도약하였다.
그러나 사행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면서 경마의 사행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경마를 포함한 말산업 전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말산업육성법이 2009년 12월 국회에 제출되어 2011년 2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말산업육성법 통과는 국민들이 쉽게 말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는데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말산업육성법을 디딤돌로 하여 앞으로의 한국 경마가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국민 스포츠로 거듭나기를 기원해본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