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쓴 소리와 참된 친구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8-03 14: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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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 안으로는 걱정거리가 많고, 밖으로부터는 재난이 닥친다.


요즘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밖으로부터 닥친 재난은 지난해 이 무렵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시작됐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미국의 경제가 흔들리자 유럽과 아시아가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그 소동은 아직 진정되지 않은 채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오래된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구제를 기다리고 있고, 세계 각국은 비상경제 체제로 전환하여 연쇄 부실의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10년 전 국가 부도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어 온 국민이 재빠르게 힘을 합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40~50대의 비교적 젊은(?) 퇴직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20~30대의 취업률이 떨어진 것이 찜찜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애써 낙관하는 대로 경기가 곧 바닥을 치고 회생한다면 복구 불능의 참혹까지 겪는 것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밖으로부터의 또 다른 외환 조짐은 바로 북한의 태도변화다.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시절 북방외교가 시작된 이래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화해의 방향을 따라왔고, 김영삼 대통령 때 김일성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무산된(1994년) 남북정상회담은 이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면서 현실이 되었다. 남쪽에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북한은 그동안 지속해온 대외 개방과 대화의지를 선뜻 바꾸지는 않았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6월27일 미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까지 초청해 핵무기 개발의 상징인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순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일부 언론들이 말하는 소위 ‘좌파 정권’이 들어선 10년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시작하여 지난해까지 만 20년을 남북관계의 화해는 얼마 전까지도 순조롭게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긴장상태로 돌아서고 있다. 북한은 대륙 사이를 건널 수 있는 미사일을 시험하고,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말로만 듣던 핵폭탄의 실체를 실험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남북합의로 개설한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서해상 NLL에선 긴박한 대치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세계적 경제 위기에다, 휴전중인 북한과의 긴장 재발. 한 마디로 外患이 아닐 수 없다.


한편 內憂의 실상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정치적 해석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객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정치 사회의 여러 현상들은, 당장 눈에 띄는 것만 짚어보더라도 이미 정상적이지 않다. 우선 이 나라에서 몇 대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검찰청과 국세청의 책임자가 모두 자리를 비우고 있다. 그 원인은 단 하나의 이슈와 연관돼 있고, 그 이슈의 핵심 타겟이던 전직 대통령은 자살했다. 그리고 그 자살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격앙되었거나 위축돼 있다. 배경을 놓고도 국민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게 대립하니, 이러한 민심의 분열 자체도 근심거리다.


지금 상황을 내우외환으로 판단하는 데는 여야의 생각이 같고 좌우의 생각이 같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해소하여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국민들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라 할 것이다. 생각이 서로 다르다면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양해할 것은 양해하면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급기야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내 종교계 각 종파의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치해 조언을 구했다. 내우외환적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구하고 민심의 소재를 파악하겠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로들은 국민을 대신하여 청와대가 듣지 못하는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고, 필요하다면 쓴 소리도 아끼지 않는 성의를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쉽게도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개신교의 진보적 대표단체(기독교교회협의회)는 아예 초청도 받지 못했고, 쓴 소리를 기대할만한 불교 조계종의 원로는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참석한 원로들은 대체로 쓴 소리보다는 대통령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만 쏟아놓고 돌아간 것 같다. 내우외환이 닥친 배경에 정부가 잘 못해서, 혹은 잘 몰라서 어려움을 자초한 면은 없는지 가려주고, 그런 게 있다면 깨우쳐주는 일도 이런 자리에서 ‘원로’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도 있지만 과연 청와대가 조언을 구하는 이벤트를 가지면서 정작 ‘쓴 소리’ 해줄 만한 대표자들을 지레 배제한 것인지, 아니면 종교계 원로들조차 ‘단 소리’에 길들어 ‘쓴 소리’할 재주가 없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내우외환에 닥친 나라의 권력이 쓴 소리 듣기를 회피하는가, 즐겨하는가에 따라 국운이 좌우된 사례는 역사 속에 무수히 전해온다. 만일 권력이 ‘쓴 소리’ 듣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불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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