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수능을 마친 젊은이들을 위하여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11-16 10: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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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살아라. 세상 이치는 성인 성현들의 말씀에서 크게 벗어날 게 없다. 모든 일은 사필귀정이라, 콩을 심은 사람은 콩을 거둘 것이고 팥을 심은 사람은 팥을 거두게 될 것이다.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거든 오로지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여라. 악을 심는 사람은 악한 결과를 얻고 정성으로 공을 들인 사람은 그 정당한 대가를 얻게 된다.



정직하여라. 세상은 거짓이 판치는 세상 같아도 결국은 정직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어 있다. 한번 거짓으로 일을 만들면 다시 그 거짓을 위하여 새로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이 거짓을 부르고, 거짓이 쌓이면 마침내는 자기 꾀로 감당할 수 없게 되어 파멸에 이르고 만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성인들의 지혜로부터 배워라.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설사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내하기를 바란다. 길게 보면 올바름을 위하여 감내하는 손해는 결코 손해로 끝나지 않는다. 주역에 이르기를 모든 손실은 새로운 얻음을 위한 투자와 같다 하였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불의나 거짓을 불사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대학 입시를 위한 수험생들의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아이들은 새로운 기대와 설렘을 안고 결과를 기다린다. 물론 불안도 있을 것이다. 어떤 대학을 가게 되든, 혹은 대학을 가든 못가든, 청소년이라는 보호의 틀 안에 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사회로 나가게 된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사는 게 최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입시철만 되면, 까마득한 졸업반 시절에 입시가 끝난 교실을 회상하게 된다. 고등학교까지의 모든 수업과정은 끝이 났고, 선생님들도 이제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업일수가 남아있으므로 아이들은 교실에 모여서 무언가를 하게 된다.



입시 때문에 인간적 대화를 나눌 여유라고는 느낄 수 없었던 고교 교실,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 학생과 학생들 사이에, 이제야말로 무언가 인간적 대화가 가능한 시간이다.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그 짧은 시간이나마 의미 있는 대화와 토론의 시간을 가질만한 시간이다. 70년대인 나의 졸업반 교실은 어땠냐 하면, 각자 알아서 책을 보든 본고사 준비(요즘 같으면 면접이나 특기적성, 논술 등의 준비가 될 것이다)를 하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가만히 앉아서 무언의 자유를 허용해주거나, 나름 세상살이에 대한 견해 같은 것을 말씀해주기도 하셨다.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이 시기가 개인 의견이 자유로울 수 없는 전제정치의(유신) 시대였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선생님들은 앞으로 제자들이 나가 살게 될 사회의 이모저모에 대한 언급을 극히 자제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속성에 대하여 거의 아는 게 없는 철부지 젊은이들은 앞으로의 세상살이에 대해 아무런 귀뜸도 얻지 못한 채 험난한 사회에 첫발을 디뎌야 했던 것이다.



두 분 선생님이 그들의 마지막 수업에서, 사회에 대해 아주 짧게 언급하셨던 기억이 난다. 한 분 선생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은 여러분이 배운 것과 아주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아갈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말씀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는 것이었다. 그 때 내 어리석고 건방진 소견에는 이 선생님이 교과서는 줄줄 잘 가르쳐 주시면서도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 분은 좀 더 과감했다. “세상일이 교과서와는 다르다”라는 전제는 마찬가지였는데 그 다음 말씀은 상당히 솔직했다. “우리 뒷방에 세들어 사는 신혼부부 남편은 교통경찰관입니다. 우리 집에는 아직 비디오가 없는데 이 집에는 비디오가 있습니다. 세탁기도 샀고, 냉장고도 있습니다. 세상은 원리원칙대로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살면서 요령도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야 냉장고 세탁기가 우스운 얘기지만 당시는 그런 가전제품들이 부의 상징일 때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저게 선생이 할 소리냐’ 막말 비슷한 불평도 나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시절, 법과 원칙보다는 요령과 술수가 판치던 세상에서 제자들에게 그나마 한 가닥 애정이라도 있는 선생님이기에 그런 귀뜸을 해주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럼에도 진실과 정의에 대한 신념을 지켜라”고 말씀할 수 있는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더욱 훌륭했을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대와 불안을 안고 학교를 떠나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성인으로서 우리는 무슨 말을 그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 시대는, 많이 좋아졌고 원리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되려면, 세상은 상식이 우선한다는 믿음과 그것을 구현할 지혜를 가진 젊은이들이 더욱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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