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는 많은데 가입은 저조… ‘풍요속의 빈곤’

유상석 / 기사승인 : 2013-03-08 13: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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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형저축’ 부활 첫 날, 시중은행의 모습은…

▲ 재형저축이 18년 만에 부활한 지난 6일, 시중은행엔 가입 문의가 빗발쳤지만, 실제 가입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 모양새를 보였다.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80년대 슈퍼스타’, 재형저축(근로자재산형성저축)이 돌아왔다. 재형저축이 ‘18년 만의 부활’을 알린 지난 6일 시중은행 창구에는 재형저축 가입 문의가 빗발쳤다.


한시판매 상품이 아님에도, 가입 대상자들은 이날 오전부터 영업점을 찾아 상담하거나 문의전화를 하며 얼마나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하지만 시중은행에서는 ‘관심만 높은’ 모습이 연출됐다. 문의가 많긴 했지만, 실제 계좌 개설로 이어지는 경우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 소비자 이목, 재형저축에 ‘집중’
금융권에서 재형저축이 일제히 출시된 이날, 서울 명동의 한 우리은행 영업점에는 아침부터 상품에 대해 문의하는 고객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업점 직원은 “재형저축에 대한 문의전화는 이미 어제부터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다”며 고객들의 높은 관심을 전했다.


같은 지역 농협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아직 홍보 전단지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가입자격이나 필요한 서류에 대해 물어보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아파트와 사무실 등이 밀집한 목동의 우리은행 영업점에도 문의전화가 쏟아졌다. 은행 측은 “아침부터 1시간 동안 재형저축 문의전화만 10통이 넘었다”고 귀띔했다.


◇ 관심 높지만 실제 가입율 ‘저조’
재형저축에 대해 소비자들이 보이고 있는 높은 관심과는 달리, 실제 가입 계좌 수는 많지 않은 양상을 보였다. 그나마 가입된 계좌들도 대부분 사전예약 판매된 것이다.


우리은행 을지로지점을 찾은 김 모(64)씨는 “4% 넘는 금리를 준다기에 아들에게 부탁해 증명서까지 준비해 왔는데, 막상 상담해보니 나한테는 맞지 않은 상품인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 날 오전 10시15분 기준, 하나은행 본점 별관 영업2부를 통해 재형저축에 가입한 고객도 단 2명에 불과했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문의전화에 비하면 너무나도 저조한 수치였다. 창구 직원은 “가입보다는 문의가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4.6%의 최고 금리를 제시했던 IBK기업은행의 서소문지점은 오전 9시40분 기준 내방고객 수가 3명에 그쳤다. 이 중 재형저축 가입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연 4.5%를 주기로 한 신한은행의 남대문로 본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시 직전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던 재형저축이 정작 출시 당일 가입 실적은 저조한 셈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재형저축 가입시 제출해야 하는 소득금액증명원을 아직 발급받은 사람이 적었고, 직장인들이 아침부터 은행으로 몰려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막판 눈치경쟁으로 전날에야 금리를 확정하는 바람에 고객들을 끌어 모을 가장 큰 ‘당근’인 금리 홍보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원인으로 꼽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홍보 전단지 500여장을 만들어 뿌렸지만 제일 중요한 금리를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다”며 “문의전화는 많이 오고 관심은 높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금리가 과거처럼 파격적이지는 않아서 판매 추이는 좀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가입계좌 이미 수만 좌… ‘불완전판매’ 논란 예상
그러나 이 날 정오 기준 재형저축 가입계좌 수는 수만 좌에 달한다는 게 은행권의 전언이다. 약관과 금리가 확정되기도 전에 재형저축 상품을 무차별적으로 팔았다는 증거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소비자 민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A 은행 관계자는 “고객들한테 미리 거래신청서를 받아놓곤 출시 첫 날 실적으로 올린 것”이라고 귀띔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도 “오전에만 수만 계좌가 판매된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대부분이 사전예약으로 팔린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재형저축 영업행위에 대한 사후검사를 예고한 상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관계영업에 치중한 은행권의 행태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라면서 “상품 구조를 비교하지 못한 채 가입한 고객들의 불만이 커질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첫 날 가입자 수가 저조한 틈을 타 금리 조정에 나선 은행도 있다. 광주은행은 이 날 KJB재형저축 기본금리를 3.8%에서 4.2%로 0.4%포인트 높였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은행연합회 금리비교 사이트에 고시한 기본적용이율을 3.4%에서 4.1%로 수정했다.


판매 초기에 다수의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조치지만, 은행권의 출혈 경쟁이 한층 더 가열된 데 따른 ‘역마진’ 우려도 커지고 있다.


광주은행 관계자는 “타 은행과의 금리 차가 크면 영업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이 날 오전 내부 협의를 거쳐 금리를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 은행권 이벤트 경쟁… 관련 서류 대리발급까지
은행들은 재형저축이 7년 이상 거래할 장기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만큼 조금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가장 큰 홍보 수단인 금리는 이미 결정됐지만 상품 출시와 동시에 적극적인 홍보활동과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고객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일부 은행 영업점에서는 국세청 소득금액증명을 신청하기 번거로워하는 고객들을 위해 대신 세무서를 방문해 서류를 발급받는 ‘서비스’도 해주고 있다.


가입 고객을 위한 이벤트도 적지 않다. 우리은행은 이날 재형저축에 가입하고 자동이체를 신청하는 고객에게 이체 금액에 따라 3천원 또는 5천원짜리 기프티콘을 증정한다. 연 4.6%로 은행권 최고 금리를 제시한 기업은행도 이달 중 가입 고객 3만명에게 추첨을 통해 5천원 상당의 기프티콘을 제공한다. 외환은행은 재형저축 가입 고객(월 10만원 이상 자동이체)에게 가입후 1년간 일부 수수료를 감면해주는 ‘프라임 서비스’를 해주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3ㆍ4월 가입 고객에게 추첨을 통해 아이패드 미니와 삼성카메라, 신세계 상품권 등을 준다.


◇ 재형저축 가입 전, 따져야 할 점은
하지만 고객들은 가입에 앞서 따져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상품 출시 초기이고 은행권의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한 만큼 불완전판매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국세청에서는 2012년 소득 자료를 발급받을 수 없어 2011년 귀속 소득금액증명서를 떼어 상품에 가입해야 하고, 추후 2012년 소득 자료가 나오면 연소득이 5천만원 이상인 근로자는 상품을 해지해야 한다.


한 국책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6월까지 가입하면 2011년 소득 자료만으로 예금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2012년 소득은 상관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재형저축 가입 적격 여부는 국세청이 내년 2월 말까지 금융사에 확인ㆍ통보한다”며 “2012년 소득이 5천만원을 넘는다면 상품을 해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대이율 항목도 꼼꼼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일부 은행은 결제계좌가 해당 은행으로 돼 있는 신용카드를 갖고만 있어도 우대이율을 주지만 다른 은행은 특정 카드의 월평균 사용 금액이 30만원 이상이어야 하는 등 우대이율 적용 여부가 은행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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