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작가의 단편소설] 시인의 귀향 ⑤

토요경제 이정 작가 / 기사승인 : 2021-06-24 13: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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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귀향 - 5


차창 밖으로 얼마 전까지 비무장지대였던 곳에서 지뢰 제거작업을 하는 군인들이 보이네요. 파란 완장을 팔에 찬 군인들은 북쪽 군인이고, 빨간 완장을 찬 군인들은 남쪽 군인이군요. 분단시대의 상징색을 희석시키기 위해 당분간 상징색을 서로 바꿔서 사용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여어, 친구들아. 나 도명철이 왔다. 다들 우리 집으로 어서 오라. 술 한잔 하자."

나는 옆자리의 도 선생에게 눈길을 돌립니다. 통로 건너편에 앉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 둘도 도 선생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도 선생이 졸다가 잠꼬대를 한 것입니다.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일까요?

"어제 한잠 못 잤더니……. 고향에 갈 생각을 하니 영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어요."

자기 목소리에 자기도 놀라 깨어난 도 선생이 멋쩍게 눈웃음을 머금네요.

"선생님께서도 90년대 말 고난의 행군시기에 고향을 떠나오신 건가요?"

"그보다 한 15년쯤 후……."

"먹고 살기 힘들어 떠나온 게 아니란 말씀이지요?"

"북한이 언제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하지 않는 날 있었어요?"

"하긴……."

"제겐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곤란한 일이 있었지요. 전 시인이었어요. 삶이 하도 팍팍해서 끄적거려본 습작시가 반동반역 작품으로 고발되었어요. 3년간 감옥에 갇혔다가 출옥하자마자 도망친 거예요. 한국에 가서 북한 인권운동을 해야겠다, 맘먹었더랬지요."

"아, 그럼 선생님이 그 유명한 도명철 시인이십니까?"

"좀 알려지긴 한 편이지요."

작은 얼굴에 약간 벗겨진 이마, 단단한 입 모양……. 탈북작가로 TV에 자주 모습을 비추던 도명철 시인이 맞습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간 계기가 되었다는 시가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걸려 있네요. 화성에서 돌아온 뒤부터 갖게 된 북한에 대한 유별난 관심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겠지요.



국경의 마지막 역


벌레둥지 같은 열차는 멎고

장사 짐에 짓눌려 두 눈 부릅뜬,

차라리 네발걸음이 어울릴, 허리 굽은 인생들이

플랫폼에 쏟아진다……

차라리 등을 펴길 포기한 사람들

차라리 곱사등이 흉내가 편한 나라……

오늘은 어떻게 살까 묻는,

물음표(?) 모양의 곱사등이들이 쏟아져 내리는

아, 공화국의 종착역!


(도명학 시인의 시 ‘곱사등이의 나라’ 일부)


"혼자서만 남으로 오셨지요?"

그가 대화 때문에 밖의 풍경을 놓치는 게 아쉬운지 밖을 곁눈질합니다.

"홀로 아이 키우며 살았을 아내에게는 면목이 없네요. 아내에게 남쪽으로 도망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왔거든요. 도망친 사실을 아내가 알면 내 행방을 모르는 척하기가 어려울 테니 보위부에 당할 게 뻔했거든요. 평양 이모집에 가서 몸보신이나 하고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을 떠났는데, 그게 12년의 생이별이 되었어요."

"그러셨군요."

"당시 아내가 평양에 가려면 평양 사람처럼 차려 입고 가야 한다고 새 인민복 한 벌을 사다 주더라구요. 우리 식구가 세 달쯤 먹을 식량 값을 한꺼번에 털어서 산 것이었어요. 두만강을 건너면 바로 벗어서 버려야 할 옷인데, 그런 거금을 쓴 게 어찌나 아깝던지……."

"진작 찾아보시지 그랬어요."

"왜 그러려고 하지 않았겠어요. 도망칠 때부터 한국에 데려와 함께 살 계획이었어요. 그러나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추방당했더라고요. 통일이 되고서야 얼마 전 이산가족면회소를 통해 사는 곳을 겨우 알아냈습니다."




이 정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010년 <계간문예>로 등단했다. 경향신문에서 민족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현재 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 사단법인 공정세상연구소 소장,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국경>(문체부 우수도서), <압록강블루>(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작), <기억>이 있고, 단편소설집 <그 여름의 두만강>이 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북한과 북한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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