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6년, 현대차그룹 '추격자의 문법' 바꿔…공장, AI·로봇 키워

임종호 기자 / 기사승인 : 2026-10-14 02: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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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제조 경쟁력 기반으로 피지컬 AI 사업화 추진
조지아 공장서 아틀라스 훈련…부품·물류 계열사와 로봇 생태계 구축
한국은 기술·미국은 산업화·인도는 성장거점…다음 과제는 수익화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취임 6년의 핵심 변화는 자동차 제조기반의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는 데 있다. 기존 공장과 공급망을 인공지능(AI)·로봇 기술의 실증 및 사업화 기반으로 활용하면서 자동차 중심의 산업구조를 확장하고 있다.

14일 취임 6주년을 맞은 정의선 회장은 2020년 10월 14일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그룹 경영을 이어받았다. 정몽구 체제가 품질 개선과 글로벌 생산기반 확충으로 현대차·기아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면 정의선 체제는 이 제조 역량을 미래산업의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마다 경쟁력의 기반은 다르다.

토요타는 토요타생산방식(TPS)을 통해 제조 효율과 품질관리의 기준을 구축했고, 최근에는 차량 소프트웨어 플랫폼 아린(Arene)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BYD는 배터리와 핵심부품 내재화를 바탕으로 원가와 공급망 경쟁력을 확보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에서 축적한 자산을 피지컬 AI와 로봇의 사업화에 활용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완성차 생산을 위해 구축한 철강과 부품, 물류, 소프트웨어 역량을 새로운 산업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특정 기술의 우위만으로 경쟁하기보다 기술개발부터 생산, 검증, 공급까지 이어지는 사업체계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변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지난 9월 21일 HMGMA 부지에 로보틱스 메타플랜트 애플리케이션 센터(RMAC)를 열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실제 자동차 제조환경에 적용하기 위한 훈련·검증 시설이다.

아틀라스는 이곳에서 자동차 부품을 옮기고 조립 순서에 맞춰 배치하는 작업 등을 학습하고 있다. 실제 작업에 필요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로봇의 성능을 개선한다.

피지컬 AI는 현실세계의 물체와 공간을 인식하고 판단해 움직이는 기술이다. 산업용 로봇이 다양한 형태와 무게의 부품을 다루고 작업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면 실제 현장에서 얻은 행동 데이터가 필요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로봇기업들이 이러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로봇 체육관(robot gyms)'을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봇의 학습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실제 작업에 적용할 수 있느냐가 기술 경쟁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 생산시설을 활용해 이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RMAC에서 훈련한 로봇을 공장에 투입하고, 현장에서 확보한 작업 데이터를 다시 학습에 활용하는 구조다. 자동차 생산시설이 완성차를 만드는 공간이자 로봇 기술을 고도화하는 실증기지 역할을 맡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HMGMA의 부품 서열 작업에 아틀라스를 투입하고 2030년에는 부품 조립 공정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는 실제 양산공정 투입에 앞서 기술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단계다.

정 회장이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현대차그룹을 '피지컬 AI 솔루션 기업(Physical AI solution company)'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사업 방향과 맞닿아 있다.

자동차와 로봇의 지능화를 시작으로 AI가 생산공정과 물류를 연결하고 장기적으로 도시 인프라까지 기술 적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이 전략에서 현대차그룹이 확보한 경쟁자산은 로봇 기술만이 아니다. 자동차산업에서 축적한 생산기술과 제조 데이터, 글로벌 공급망을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열사 간 역할 분담도 구체화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로봇 개발을 담당하면 현대차·기아는 생산시설과 공정 운영 경험, 제조 데이터를 제공한다. 현대모비스는 로봇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 개발과 공급에 참여하고, 현대글로비스는 물류와 공급망 운영을 맡는다.

여기에 엔비디아의 AI 인프라와 구글 딥마인드의 로봇 AI 기술을 결합해 기술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2028년까지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능력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는 자동차산업의 기존 공급망을 로봇산업으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로봇을 개발한 뒤 생산과 부품조달, 물류체계를 새로 구축하는 대신 그룹이 보유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사업화 과정에서도 이점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내부 공장에서 검증하고 개선할 수 있으며 초기 적용처도 확보할 수 있다. 기술개발과 실증, 생산 준비를 병행해 상용화에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구조다.

다만 내부 수요가 곧 외부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제조현장에서 생산성과 안전성을 검증하고 다른 기업에도 판매할 수 있어야 독립적인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을 직접 판매하는 방식뿐 아니라 구독료나 사용료를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형 로봇(RaaS)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로봇의 유지보수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운영관리까지 새로운 수익원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산업구조 재편은 글로벌 투자 전략에서도 확인된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총 125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AI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전동화, 로봇, 수소 등 미래 신사업에 50조5000억원, 연구개발(R&D)에 38조5000억원, 경상투자에 36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국내 투자는 차세대 기술개발과 생산방식 혁신, 전기차 생산기반 확충에 초점을 맞췄다. AI와 로봇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기존 완성차 제조 경쟁력도 강화하는 방향이다.

미국에는 2025년부터 2028년까지 260억달러를 투자한다.

완성차 생산능력 확대와 함께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 자동차강판 생산시설, 부품·물류 공급망, 로봇 생산시설 구축 등을 추진한다. 자동차와 철강, 첨단 제조기술을 현지에서 연결하는 산업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 투자는 시장 접근성과 공급망 현지화를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로봇 기술을 실제 제조현장에 적용하는 데 의미가 있다.

여기에 인도가 세 번째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3일 인도에 2026년부터 2032년까지 15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 회장은 이날 뉴델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장기 투자방향과 현지 자동차산업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투자 대상은 생산능력 확대와 R&D 인프라, 부품 현지화, 미래차 기술 등이다. 특히 연구개발센터와 시험시설을 확충해 인도를 현지 수요에 대응하는 생산기지이자 신흥시장 전략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현대캐피탈도 지난 8월 인도 금융법인을 공식 출범시켰다. 초기에는 딜러금융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향후 소비자금융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차량 생산뿐 아니라 연구개발과 부품조달, 판매금융까지 현지에서 연결하는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은 한국과 미국, 인도에 동일한 생산시설을 확대하기보다 지역별 산업 여건에 맞춰 투자 기능을 나누고 있다.

한국은 미래기술 개발과 생산혁신의 중심, 미국은 자동차·철강·로봇을 연결하는 산업화 거점, 인도는 생산·R&D·부품·금융을 결합한 성장거점으로 역할이 분화되고 있다.

해외 언론이 현대차그룹을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FT는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의 로봇과 자율주행 전략을 분석하며 "'후발주자' 현대차, 로봇과 자율주행에서 테슬라와 경쟁('Latecomer' Hyundai races Tesla on robots and self-driving cars)"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로봇 기술과 제조 역량, 글로벌 AI 기업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미래기술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블룸버그(Bloomberg)도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을 다루면서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를 테슬라 옵티머스와 비교했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이 자동차 판매량과 품질뿐 아니라 AI와 로봇 기술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현대차그룹이 모든 기술에서 글로벌 경쟁업체보다 앞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토요타는 제조 효율과 하이브리드 기술, 테슬라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BYD는 배터리와 원가구조에서 각각 강점을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차별점은 자동차 제조에서 확보한 자산을 새로운 기술의 사업화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데 있다. 생산현장과 부품·물류 계열사를 로봇산업의 개발·검증·생산체계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 메시지에서 5대 전략적 우선순위 가운데 하나로 '새로운 산업표준 선도(leading new industry standards)'를 제시했다.

기존 자동차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제품의 기준을 만드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방향이다.

남은 과제는 수익성 검증이다.

아틀라스가 실제 공장에서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는지, AI 도입이 제조원가와 불량률을 얼마나 낮추는지, 로봇사업이 외부 고객을 확보해 독자적인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는지가 앞으로 확인해야 할 지표다.

국내와 미국, 인도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투자도 실제 사업 성과로 연결돼야 한다. 제조시설과 AI 인프라에 투입한 자금이 생산성과 시장점유율, 현금흐름 개선으로 이어지는 속도에 따라 투자 효율성이 달라질 수 있다.

정의선 체제의 첫 6년은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 구축한 자동차 제조 경쟁력을 새로운 산업에 활용하는 기반을 마련한 시기였다.

자동차공장은 로봇 기술의 실증공간으로 확장됐고, 계열사의 생산·부품·물류 역량은 새로운 사업의 공급망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 인도에도 기술개발과 산업화, 시장 확대라는 서로 다른 역할이 주어졌다.

추격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의 경쟁기준을 만들기 위한 사업체계가 구체화된 셈이다.

이제는 그 체계가 성과를 내야 할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향후 자동차 제조에서 축적한 자산이 AI와 로봇의 생산성 향상, 신규 매출과 지속적인 수익으로 이어지는지가 향후 정의선 체제의 다음 성장단계를 평가할 핵심 잣대가 될 전망이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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