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전시는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아이 손을 잡고 박물관 계단을 오르는 일, 오래 만난 사람과 그림 앞에서 잠시 말이 없어지는 일, 혼자 전시장 조명을 따라 천천히 걷는 일. 6월 셋째 주말 국내 전시장에는 그런 시간을 만들 만한 전시들이 여럿 문을 열었다.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전시부터 연인과 산책하듯 볼 만한 전시, 조용히 혼자 마주하기 좋은 전시까지 폭이 넓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6월 4일 문을 연 이 전시는 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피카소, 브라크, 레제, 들로네 등 큐비즘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과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시선을 함께 배치했다. 연인과 보기 좋은 전시다. 큐비즘은 사물을 한 방향에서 보지 않는다. 앞과 옆, 안과 밖을 한 화면에 겹친다. 사랑도 때로 그렇다. 같은 사람을 보아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다. 이 전시는 그림을 보는 법보다 관계를 보는 법을 조용히 생각하게 한다.
아이와 함께라면 국립중앙박물관이 편하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가 8월 2일까지 열린다. 김홍도는 교과서 속 이름이지만, 그의 그림은 아직도 살아 움직인다. 사람들의 표정, 몸짓, 옷자락, 장터의 공기까지 담겨 있다. 아이에게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묻기 좋은 전시다. 같은 곳에서 《보존과학, 새로운 시작 함께하는 미래》도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유물을 고치고 살리는 일이 어떤 손길과 과학으로 이뤄지는지 보여준다. 가족 나들이에 맞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시는 공부가 아니라, 오래된 물건이 다시 말을 배우는 과정을 보는 일이다.
리움미술관의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조금 더 깊게 보고 싶은 관객에게 맞다. 5월 5일 개막해 11월 29일까지 계속된다. 전시는 전후 현대미술 속에서 공간과 몸, 감각을 새롭게 다룬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조명한다. 벽에 걸린 그림만 보는 전시가 아니다. 관람객은 공간 안으로 들어가 빛, 구조, 움직임, 감각을 함께 만난다. 연인과 함께 가도 좋고, 혼자 가도 좋다. 전시장 안에서 사람은 잠시 자기 몸의 크기와 감각을 다시 의식하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6월 28일까지 열린다. 전시 막바지다. 죽음, 의학, 욕망, 아름다움 같은 주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작가인 만큼 어린아이와 가벼운 가족 나들이로 보기에는 다소 무겁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큰 이름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관객에게는 이번 주말이 좋은 기회다. 삶과 죽음을 노골적으로 마주 세우는 작품 앞에서 관람자는 불편해지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허스트 전시의 문턱이다.
서울 강남 송은에서는 전혜주 개인전 《엔도스코페이아》가 6월 19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린다. 제22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의 개인전이다. 사진, 영상, 설치, 사운드가 공기와 먼지, 습기, 보이지 않는 입자들을 따라간다. 이 전시는 화려한 주말 데이트보다는 조용한 토요일 오후에 어울린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 곁을 떠다니는 것들, 몸 안으로 들어오고 환경을 바꾸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다만 송은은 일요일과 공휴일에 쉬므로 이번 주말에는 토요일 관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전시장을 도시 밖으로 넓히면 선택지는 더 많아진다. 2026 공예주간은 6월 19일부터 28일까지 전국 53개 도시에서 열린다. 올해 거점도시는 충남 부여다. 부여 123사비공예마을 일대에서는 전시, 마켓, 투어,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공예는 아이와 함께 보기 좋다. 유리장 안의 어려운 작품이 아니라, 손으로 만들고 쓰고 만지는 생활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컵 하나, 그릇 하나에도 사람의 시간과 지역의 흙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주말이 될 수 있다.
지역 아트페어도 주말 나들이의 이유가 된다. 울산국제아트페어는 6월 21일까지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고, 춘천아트페어 아르로드는 6월 24일까지 춘천예술마당 일대에서 이어진다. 울산은 산업도시의 단단한 얼굴 위에 미술시장의 색을 얹고, 춘천은 호수의 도시답게 전시와 산책, 공연과 만남을 느슨하게 엮는다. 가족에게는 부담이 적고, 연인에게는 하루 코스로 충분하다.
이번 주말 전시의 매력은 거창한 대표작 하나에만 있지 않다. 큐비즘은 사물을 새로 보게 하고, 김홍도는 옛사람의 하루를 되살린다. 여성 작가들의 환경미술은 몸의 감각을 깨우고, 공예는 손의 시간을 불러온다. 좋은 전시는 멀리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생활을 다시 보게 한다.
주말은 길지 않다. 그래서 전시는 더 알맞다. 두세 시간만 내도 사람은 다른 빛 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전시장을 나선 뒤, 아이의 손이나 곁에 선 사람의 얼굴, 오래 쓰던 컵 하나가 조금 달라 보인다면 그 주말은 이미 충분하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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