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경쟁·퍼블리셔 영향력 속 재흥행 과제
텐센트·XD 손잡고 서비스 본격화…초기 순위보다 장기 매출·현지 운영력이 관건

국내 게임사들이 중국 시장의 문을 다시 두드리고 있다. 한한령과 판호 공백기로 제한됐던 한국 게임의 중국 서비스가 올해 들어 잇따라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다시 중국 시장이 열렸다는 사실만으로 과거처럼 한국 게임이 중국 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게임사의 개발력은 높아졌고, 현지 퍼블리셔와 플랫폼의 영향력도 커졌다. K-게임의 중국 진출은 이제 ‘판호 확보’ 단계를 넘어 ‘흥행 지속성’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오는 24일 ‘리니지2M’의 중국 서비스를 시작한다. 현지 서비스명은 ‘천당2: 맹약’이다. 중국 퍼블리싱은 텐센트게임즈가 맡는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달 28일 다크 판타지 로그라이크 역할수행게임(RPG)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를 중국에 출시했다. 이 게임 역시 텐센트가 현지 서비스를 담당한다. 넥슨은 지난 2월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를 중국 시장에 선보였다. 현지 서비스는 XD네트워크가 맡았다.
판호는 중국에서 게임을 정식으로 서비스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허가권이다. 외국 게임은 ‘외자 판호’를 받아야 중국 내 유료 서비스나 앱마켓 출시가 가능하다. 그동안 판호는 한국 게임사의 중국 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꼽혀왔다.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국 게임들이 다시 중국 판호를 확보하고 실제 서비스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판호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중국 시장에 들어가는 것과 중국 이용자에게 선택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과거 한국 게임은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던전앤파이터’, ‘크로스파이어’, ‘미르의 전설’, ‘리니지’ 등 주요 지식재산권(IP)은 현지에서 장기간 서비스되며 한국 게임 수출의 대표 사례로 꼽혔다. 당시에는 검증된 한국 온라인게임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중국 퍼블리셔의 경쟁력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한령과 판호 공백기를 거치는 사이 중국 게임사들은 모바일, 서브컬처, 슈팅, 오픈월드, 수집형 RPG 등 여러 장르에서 자체 흥행작을 내고 있다. 중국 이용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과거처럼 한국 IP의 인지도만으로 장기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엔씨의 ‘리니지2M’은 이런 변화를 확인할 대표 사례다. ‘리니지’ IP는 중국 시장에서 인지도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중국 모바일 MMORPG 시장은 이미 현지 게임사 간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엔씨와 텐센트게임즈는 정식 서비스에 앞서 약 5만명이 참여한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후 사용자환경·사용자경험(UI·UX), 파티 던전, 캐릭터 프로필 등 현지 이용자 피드백을 반영해 게임 완성도를 높였다. 사전예약자는 약 500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UI·UX는 이용자가 게임을 조작하고 정보를 확인하는 화면 구성과 사용 경험을 뜻한다. 중국 이용자가 익숙한 화면 흐름, 결제 구조, 커뮤니티 기능에 맞추지 못하면 원작 IP가 강해도 장기 흥행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스마일게이트의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는 출시 초반 관심을 끌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사전등록자는 550만명을 넘겼고, 출시 직후 중국 애플 앱스토어 무료 다운로드 순위 1위에 올랐다. 중국 서비스에 맞춰 신규 전투원 ‘페이’를 먼저 공개한 점도 현지 이용자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무료 다운로드 순위는 초기 관심도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실제 흥행 여부는 매출 순위, 이용자 잔존율, 업데이트 이후 반응으로 확인해야 한다. 초반 순위가 높아도 콘텐츠 업데이트가 늦거나 과금 구조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 이용자는 빠르게 이탈할 수 있다.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는 다른 방식의 실험이다. 대규모 과금 경쟁이 핵심인 MMORPG가 아니라, 바다 탐험과 초밥집 운영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해양 어드벤처 게임이다. 중국 서비스는 XD네트워크가 맡았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출시 직후 중국 탭탭 플랫폼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탭탭은 중국의 대표적인 게임 플랫폼 중 하나로, 이용자 평점과 리뷰, 다운로드 반응을 확인할 수 있어 현지 게이머의 초기 반응을 살피는 지표로 활용된다.
하지만 플랫폼 인기 순위가 곧바로 한국 본사의 실적 기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료 판매인지, 부분유료화인지, 매출 배분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실적 반영 효과는 달라진다.
중국 시장에서 현지 퍼블리셔의 역할도 과거보다 중요해졌다. 퍼블리셔는 게임의 현지 유통, 마케팅, 이용자 대응, 서버 운영, 업데이트 일정 조율 등을 맡는 사업자다. 외국 게임사가 중국에서 직접 모든 서비스를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텐센트, XD네트워크 같은 현지 파트너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이는 기회이자 한계다. 텐센트 같은 대형 퍼블리셔와 손잡으면 마케팅과 유통망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 게임사의 운영 주도권은 제한될 수 있다. 업데이트 방향, 과금 정책, 이용자 데이터 접근, 마케팅 비용 부담, 수익 배분 구조가 모두 협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IP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지화와 현지 마케팅이 중요해졌고, 현지 퍼블리셔의 운영 역량에 대한 의존도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IP의 힘만으로 중국에서 성과를 내던 시기와는 시장 환경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결국 K-게임의 중국 재진입은 반가운 흐름이지만, 과거의 성공 공식이 그대로 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판호 확보는 입장권일 뿐이고, 실제 성패는 서비스 이후에 갈린다. 장기 매출 순위, 이용자 잔존율, 현지화 완성도, 퍼블리셔와의 수익 배분, 운영 주도권이 새로운 평가 기준이다.
과거와 달라졌다면 준비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 게임사들은 중국 시장을 단순한 수출처가 아니라 별도의 경쟁 시장으로 봐야 한다. IP 인지도에 기대기보다 현지 이용자 취향에 맞춘 콘텐츠, 빠른 업데이트 체계, 합리적인 과금 구조, 퍼블리셔와의 명확한 권한 배분을 준비해야 한다.
판호가 다시 열리면서 중국 시장 진입 기회는 넓어졌다. 그러나 K-게임이 중국 시장을 다시 호령할 수 있을지는 이제부터 증명해야 한다.
토요경제 / 황세림 기자 hsr@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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