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담합 14.2조·추종 효과 26조…소비자 초과 부담 회복은 별도 과제
SK에너지가 최근 검찰에 적발된 정유사 기름값 담합 의혹의 한 축으로 지목되고도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인 '리니언시'로 관련 기소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2024년 7월부터 가격 정보를 교환했고, 미국·이란 전쟁 직후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맞춘 것으로 봤다. 그러나 가격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쪽은 HD현대오일뱅크와 직원 2명뿐이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6일 HD현대오일뱅크와 가격결정부서 직원 2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타사와 유가 인상 시기와 규모를 교환하고, 전쟁 직후 유가를 대폭 인상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가 SK에너지 가격결정부서와 가격 정보를 주고받았고, 전쟁 발발 뒤 가격을 일시에 인상하기로 담합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이 파악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원이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두 회사의 담합 가격을 참고해 가격을 올린 효과까지 포함하면 총 26조원 상당의 경쟁제한 효과가 발생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당시 4대 정유사가 상당한 원유를 이미 비축하고 있어 가격이 급등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일제히 공급가격을 폭등시켰다고 봤다.
논란의 핵심은 SK에너지의 현재 위치다. 검찰 판단대로라면 SK에너지는 단순 추종자가 아니다. HD현대오일뱅크와 함께 직접 담합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가격 정보를 주고받은 상대방이고, 14조2000억원 규모 직접 담합에 포함된 회사다. 그런데도 먼저 신고했다는 이유로 가격담합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민 눈높이에서는 “가격은 함께 올리고, 책임은 혼자 피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리니언시는 필요한 제도다. 담합은 은밀하게 이뤄진다. 내부 자료 없이는 적발이 쉽지 않다. 먼저 신고한 기업에 과징금이나 형사책임을 감면해 담합 구조를 깨는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국민 생활비와 직결된 기름값 담합 의혹이다. 시점도 전쟁 직후였다. 정부가 최고가격제까지 꺼내며 물가를 누르던 때였다. 이 국면에서 담합 의혹의 한 축이 리니언시로 기소를 피했다면 제도 취지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소비자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 검찰이 밝힌 26조원은 부당이득 전체가 아니라 담합 가격과 가격 추종의 영향을 받은 거래 규모에 가깝다. 그러나 전쟁 직후 가격상승률을 적용하면 초과 부담 의심액은 수조원대로 추정된다. 토요경제가 8일 보도한 ‘정유사 가격 담합 의혹…경유차 최대 27만원 부담’ 제하의 기사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휘발유차는 한 대당 약 13만3000원, 경유차는 약 27만1000원, 휘발유·경유차 평균으로는 약 18만9000원의 초과 부담이 발생했다는 산술 추정이 나온다. 확정 피해액은 아니지만, 논란이 확산하는 이유다.
리니언시의 허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기업은 자진신고로 제재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더 낸 돈은 자동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과징금은 국고로 들어간다. 피해 회복은 별도 소송이나 구제 절차로 남는다. SK에너지가 리니언시로 가격담합 기소를 피하더라도 국민이 부담한 초과 기름값 문제는 그대로 남는 셈이다.
SK에너지가 리니언시 요건을 충족했다면 기소 제외는 법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담합 의혹의 한 축으로 지목된 회사가 먼저 신고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크게 줄이고, 소비자 피해 회복은 별도 절차로 밀린다면 리니언시는 책임 회피 통로로 비칠 수 있다. 또 불공정 담합행위를 저지르고 도망가는 탈출로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의 쟁점은 SK에너지가 리니언시 요건을 충족했는지에 그치지 않는다. 자진신고 기업의 책임을 어디까지 줄일 것인지가 핵심이다. 담합 적발을 위해 감면 제도는 필요하지만 애궂은 국민이 더 낸 돈의 회복에 대한 쟁점이 남는다. 자진신고 기업이라도 부당하게 얻은 이익과 소비자 피해 회복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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