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문화산책] 미래의 미술사는 오늘을 뭐라고 기록할까

마리아김 / 기사승인 : 2026-08-04 15: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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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 2026'이 던진 질문, 그리고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시대

자신이 르네상스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도 처음부터 그런 이름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시대의 이름은 대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붙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이 사고를 돕고, 알고리즘이 취향을 추천하며, 데이터가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지금은 훗날 어떤 시대로 기록될까. 이런 질문을 품은 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2026'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 '올해의 작가상 2026' 전현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홍철기.

 

전시는 하나의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 홍진훤 네 작가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시대를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것을 왜 사실이라고 믿는가.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하나의 장르나 메시지로 묶이지 않는다. 이미지는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의심이 담겨 있고, 기술은 도구처럼 보이다가도 현실을 구성하는 힘으로 드러난다. 작품 앞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결국 하나다.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지금의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질문하고 있는가.

모더니즘이 새로운 형식으로 시대를 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형식과 권위를 의심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예술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아직 미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를 하나의 이름으로 합의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동시대 미술’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없을 뿐, 변화는 이미 작품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 '올해의 작가상 2026' 홍진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홍철기.

 

이해민선의 화면에는 겨울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못한 눈이 남아 있다. 응달에 남은 잔설은 깨끗한 흰색이 아니다. 먼지와 얼룩을 품고, 녹다 멈춘 자국으로 제 존재를 드러낸다. 그 잔설은 사라진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형태를 잃었지만 빈자리와 얼룩, 남은 흔적으로 존재는 계속된다.

 

이정우는 인공지능(AI)을 통해 미래를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묻는다. 사라진 장면을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다시 불러오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완전한 복원이 아니다. 인간이 남긴 기록과 데이터, 그 안의 오류와 편견이 함께 떠오른다.

 

전현선은 회화를 벽에 걸린 한 장의 그림으로 두지 않는다. 평면에서 시작한 이미지는 조각과 설치처럼 공간 안으로 나오고, 관객은 그 사이를 걸으며 이미지를 다시 연결한다. 그의 작업은 현실과 기억을 가르는 데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지를 눈이 아니라 몸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 이해민선 작 [연합뉴스]

 

홍진훤은 집회와 투쟁, 사회적 사건이 이미지가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거리의 구호와 몸짓은 현실의 한 장면이지만, 카메라와 화면을 통과하는 순간 또 다른 무대가 된다. 그의 작업은 사건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미지가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을 조직하는지, 그리고 그 이미지가 다시 현실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드러낸다.

네 작가의 형식은 다르지만, 결국 한 질문 앞에서 만난다. 보이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왜 그것을 믿는가.

전시장을 걷다 문득 걸음을 멈추게 된다. 나는 작품을 자유롭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작품이 내 시선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이미지와 기록, 기술과 공간은 관객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작품은 감상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내가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되묻는 장치가 된다.

전시장 밖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화면을 열면 이미 무언가가 먼저 떠 있다. 검색창에는 연관어가 따라붙고, 영상은 다음 영상을 밀어 올리며, 쇼핑몰은 내가 볼 만한 물건을 앞줄에 세운다. 우리는 스스로 고른다고 믿지만, 선택지는 이미 좁혀져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예술은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일보다 질문을 설계하는 일에 가까워지고 있다.

▲ 이정우 작 [연합뉴스]

 

이때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이름도 다시 보인다. 이 상은 단순히 네 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제도가 아니다. 한 시대가 어떤 감각과 질문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드러내는 장치다. 어떤 작품을 주목하고, 어떤 태도를 동시대적이라고 판단하는가. 그 기준을 들여다보는 일 역시 전시를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올해의 작가상 2026'은 네 명의 작가만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 한국 현대미술이 어디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함께 드러낸다. 기술과 인간, 자유와 구조, 현실과 이미지, 데이터와 감각. 서로 다른 질문들이 하나의 전시장 안에서 교차한다.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방향을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아직 이 시대의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미래의 미술사는 오늘을 하나의 흐름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때 '올해의 작가상 2026'은 이름 붙지 않은 시대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던졌던 질문의 기록으로 남을지 모른다.

'올해의 작가상 2026'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다.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 홍진훤 네 작가가 참여하며, 전시는 지난달 24일부터 12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2전시실에서 이어진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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