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주노총’이 선정한 최악의 건설사, ‘안전’은 없고 ‘갑질’만 했나

양지욱 기자 / 기사승인 : 2026-04-21 17: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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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욱 토요경제 경제부장
오는 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수십 년 째 산업 현장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기념일이 아니다.


“매일 7명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한다”는 가슴 아픈 문구처럼 지난해에도 산업재해 사고로 약 600명, 업무상 질병으로 1300여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006년부터 매년 4월에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재사고를 ‘불가피한 사고’가 아닌 ‘기업의 관리 부재’로 보고 사업주의 책임을 엄중히 묻자는 취지다.


올해 ‘불명예’ 명단에는 HJ중공업과 현대엔지니어링이 나란히1, 2위를 차지했다. 단순히 사망자 수가 많았다는 사실보다 더 뼈아픈 것은 이들 기업이 보여준 ‘노동에 대한 값싼 인식’ 이다.


작년 한 해 HJ중공업 현장에서는 2건의 사고로 8명의 노동자가, 현대엔지니어링에서는 3건의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사망자 모두 안타깝게도 하청 노동자였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위험은 하청에 넘기고 책임은 구조 뒤편으로 숨어버리는 전형적인 건설업의 민낯이다.

 

사고 이후의 법적 단죄마저 원청은 피해갔다.

 

현대엔지니어링 안성 교량 붕괴 사고로 사법 처리를 받은 사람은 현장소장과 하청 관계자 뿐이었다.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최근 4년 간 8건의 사고로 11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지만, 회사 경영자나 임원 이름은 수사 결과에 없다.


HJ중공업 역시 올해 1월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참사로 7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대표이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결국 기각됐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두 기업 모두 올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하도급 대금 체불로 제재를 받은 점이다.

두 기업은 설 명절을 앞두고 하청업체 대금 지급을 미루다 조사가 시작되서야 부랴부랴 지급이 이뤄졌다. 현대엔지니어링이 103억8000만원, HJ중공업 60억6000만원 규모다. 지급액 규모로 봐서 자금 부족보다는 이자 수익을 챙기기 위해 지급 시점을 늦춘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 같은 행태로 보면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도, 대금을 기다리는 이들도 모두 하청이다. 비용 절감과 공기 단축의 압박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강해지고, 그 끝에서 안전과 임금은 늘 후순위로 밀려난다. 

 

반복되는 사고와 대금 갈등은 이 구조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8년에도 ‘살인기업’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HJ중공업 역시 사명 변경 이후 쇄신을 강조했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는 올해 초 신년사에서 “2026년은 실질적인 성과로 만들어가는 새출발의 원년”이라며 “원칙 준수와 미래 기술 확보, 품질에 대한 신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호기로운 선언 뒤편에선 하청 대금을 미루는 꼼수가 나왔다.


‘원칙 준수’를 말한 지 한 달 만에 기본을 져버리는 기업에게 ‘ESG 경영’, ‘동반 성장’과 같은 수식어는 공허한 미사어구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노동의 대가를 제때 지급하는 것. 이것이 기업이 지켜야 할 가장 낮은 수준의 원칙이자 사회적 합의다.


이 기본을 외면하는 한 현대엔지니어링과 HJ중공업의 이름 앞에 붙은 ‘최악의 살인기업’이라는 멍에는 결코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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