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나스닥 데뷔, AI 메모리 공급전쟁의 신호탄

임종호 기자 / 기사승인 : 2026-07-12 18: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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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메모리 공급 늘려야” 발언에 해외 매체도 주목
미국은‘AI 투자 열기’, 대만은 ‘HBM 패권’으로 해석
▲ 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가 나스닥 상장 첫날 국내 본주보다 약 16% 높은 가격에 거래를 마쳤다.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미국주식예탁증서(ADR) 거래를 시작하며 글로벌 자본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공모가는 ADR 1주당 149달러로 정해졌고, 조달 규모는 265억달러에 달했다. 로이터는 이번 거래가 “AI 공급망의 핵심 기업에 대한 강한 투자 수요를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K하이닉스 ADR이 첫 거래일 13% 상승했다며 “AI 거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식욕이 또 한 번 시험을 통과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상장의 의미는 단순한 해외 증시 입성이 아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상장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메모리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밝힌 배경에는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구조 변화가 있다. 최 회장은 미국 팹 투자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력, 용수, 대규모 부지 등 조건이 맞는다면 미국이든 다른 지역이든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미국 투자 확정은 아니라며 고객 수요와 입지 조건을 보겠다고 했다. 

최 회장의 발언은 SK하이닉스가 이번 상장을 왜 추진했는지를 설명한다. 회사는 나스닥에서 40조원 안팎의 자금을 조달했고, 이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청주 첨단 패키징 공장, 극자외선(EUV) 장비 도입 등 생산능력 확대에 투입될 예정이다. 로이터도 이번 공모 자금이 AI 칩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공장과 장비 투자에 쓰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해외 주요 매체들의 반응은 대체로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AI 투자 열기의 지속 여부다. WSJ은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 첫날 주가 상승을 두고, 최근 반도체주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AI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해석했다. 다만 WSJ은 같은 기사에서 최근 반도체주가 급등락을 보인 만큼 투자자들이 AI 거래가 과도하게 오른 것은 아닌지도 함께 따지고 있다고 전했다. 

둘째는 밸류에이션 재평가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이 미국 경쟁사 마이크론과의 평가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는 마이크론이 핵심 메모리 제품에서 점유율이 낮더라도 세계 최대 투자자 풀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이점을 누려왔다고 설명했다. 퓨처럼그룹의 대니얼 뉴먼 최고경영자는 로이터에 “SK하이닉스는 점유율과 엔비디아와의 근접성에서 앞서고, 마이크론은 전력 효율과 미국 내 입지, 3위 업체로서의 추격 모멘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셋째는 메모리 공급 부족의 장기화다. 로이터는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메모리 업계가 2027년에 사상 최악의 공급 부족을 맞을 수 있으며, 2030년 이후에도 수요가 공급능력을 웃돌 수 있다는 전망을 전했다. 곽 대표는 “고객 수요는 계속 올라가지만 생산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일본, 동남아가 향후 웨이퍼 팹 후보지에 포함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반응도 엇갈렸다. 로이터가 정리한 시장 반응에서 주피터자산운용의 샘 콘래드는 ADR 상장이 미국 마이크론 대비 할인돼 거래되는 SK하이닉스의 한국 상장 주식 재평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야누스헨더슨의 리처드 클로드는 이번 상장이 미국과 글로벌 투자자에게 “세계 HBM 리더에 접근할 통로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뉴욕라이프투자운용의 줄리아 허먼은 신규 주식 공급이 시장에서 가장 붐비는 테마인 반도체에 더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상장을 월가의 대형 수수료 이벤트로도 봤다. FT는 주요 투자은행들이 SK하이닉스 나스닥 상장을 통해 1억4000만달러 이상 수수료를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동시에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핵심 기업이라는 점과 미국 상장이 기업가치 재평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짚었다.

경쟁국 매체의 시선도 주목된다. 대만 경제 매체들은 이번 상장을 단순 한국 기업 뉴스가 아니라 AI 반도체 공급망 재편으로 받아들였다. 대만 경제 매체 거형망(Cnyes)은 SK하이닉스를 “AI 시대의 HBM 패자(霸主)”로 표현하며, 2026년 1분기 HBM 시장 매출 점유율이 56.4%로 세계 1위라고 전했다. 또 DRAM과 NAND에서도 각각 세계 2위권 지위를 갖고 있다고 정리했다. 대만 매체가 SK하이닉스의 HBM 기술 장벽과 TSV·MR-MUF 공정을 자세히 다룬 것은 TSMC 중심의 대만 반도체 생태계에서도 메모리 공급망을 전략 변수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대만 상업주간은 SK하이닉스를 “가장 순수한 AI 메모리주”로 소개했다. 이 매체는 SK하이닉스 ADR 상장 이후 대만 투자자들도 한국 주식 거래 통로를 거치지 않고 미국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HBM 수요가 일반 D램과 DDR5 공급까지 압박하면서 대만의 난야테크, 윈본드 같은 메모리 관련주도 간접 수혜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 증권사 계열 투자매체인 풍운학당도 이번 상장을 “TSMC ADR 경로를 복제하는 자본시장 전략”으로 봤다. 이 매체는 SK하이닉스가 미국 기관자금에 더 직접적으로 접근하고, 한국 기업이 오랫동안 받아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 쪽 시각에서 보면 이번 상장은 한국 메모리 기업이 미국 자본시장을 통해 TSMC식 글로벌 투자자 기반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스페인 경제지 신코디아스(Cinco Días)도 AI가 세계 증시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SK하이닉스가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데뷔로는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500개 이상 금융기관이 청약에 참여했으며, 상위 10개 투자자가 발행 물량의 절반을 가져갔다고 전했다. 또 최 회장이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추가 ADR 발행 가능성과 ‘메모리 서비스’ 모델을 언급했다고 소개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대목은 액면분할이다. SK하이닉스 ADR은 한국 보통주 10분의 1에 해당하는 구조다. 국내 보통주는 주가 수준이 높아 개인투자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 회장은 액면분할에 대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요청하면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아직 관련 안건을 보고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상장은 SK하이닉스의 위상을 바꿨지만 동시에 부담도 키웠다. 미국 시장은 AI 프리미엄을 줄 수 있지만, 그만큼 공급 확대와 실적 지속성을 빠르게 요구한다. 최 회장이 “고객들이 더 많은 메모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외 매체들이 일제히 SK하이닉스를 AI 메모리 공급망의 핵심으로 다룬 것은 긍정적 신호이지만, 향후 평가는 조달한 자금을 실제 생산능력으로 얼마나 빨리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SK하이닉스 나스닥 데뷔의 본질은 상장 흥행이 아니라 공급능력 경쟁이다. 미국 매체는 이를 AI 투자 열기의 지속 여부로 봤고, 로이터는 마이크론과의 밸류에이션 격차를 짚었다. 대만 매체는 HBM 패권과 TSMC식 ADR 전략의 재현으로 해석했다. 최태원 회장의 “메모리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발언은 이 모든 반응을 관통한다. AI 시대의 승부는 기술뿐 아니라 자본, 공장, 장비, 고객 공급 약속을 얼마나 빠르게 맞추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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