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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희 작 [작가제공] |
미국 뉴저지 포트리 뮤지엄의 여름 기획전 《Art, Unfixed》가 폐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5일 문을 연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의 화두는 ‘고정되지 않음’이다. 그 가운데 추상화가 김만희의 작품은 가장 오래 걸어온 시간과 가장 늦게 피어난 예술혼을 함께 보여준다.
김만희 작가는 늦게 출발했다. 그러나 늦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는 도쿄 히토츠바시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을지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과학자의 길을 걸었으며 안정된 교수의 삶도 살았다. 하지만 그가 숨긴 뒷 편의 손엔 언제나 붓을 움켜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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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희 작 [작가제공] |
KPI뉴스는 2023년 6월13일 '인터뷰'에서 이런 그를 두고 “붓을 든 과학자”라고 소개했다. 성공한 과학자의 삶과 교수직을 뒤로한채 늦깍이 예술혼을 불태우는 그의 서사는 그의 숱한 작품 곳곳에 베어 있었다.
김 작가는 오십을 훌쩍 넘긴 2001년 첫 전시회를 열었다. 2005년엔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으로 향했다. 이후 Walter Wickiser Gallery를 비롯해 Art Basel Miami, KIAF, Art Busan, 루브르 카루젤 등 국내외 유수의 무대에서 탁월한 작품을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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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희 작 [작가제공] |
김 작가의 추상은 격렬하지만 산만하지 않다. 선은 조용히 흔들리고, 면은 오래 쌓인다. 색은 때로 검고, 때로 붉고, 때로 보라와 회색 사이에서 깊게 가라앉는다. 과학자의 눈을 지는 그는 예리하게 화면을 분석하고 그런 분석 아래 손은 계산 없이 미끄러져 다닌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어느 땐 계산된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엔 한턱 막혔던 맥을 풀게하는 묘함이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그의 작품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촉발된 작업들이다. 김 작가에게 산티아고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자신과 세계의 경계를 지우는 길이었다. 사람은 풍경을 지났지만 어느새 사람은 풍경 안에 들어갔다. 그의 화면엔 길이 사라지고, 대신 길을 걸은 시간의 층만 남았다. 보라·회색·베이지의 섬세한 겹은 침묵을 만들었고 붉은색과 주황색의 강한 구성은 그 침묵 속에서 주사를 맞은 듯 따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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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희 작 [작가제공] |
사실 그의 작품 힘은 ‘늦음’에 있다. 늦게 시작했기에 서두르지 않는 듯하다. 이미 살아낸 시간이 있고, 오래 눌러둔 꿈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트디렉터 샤론정은 26일 토요경제와의 통화에서 그의 추상을 두고 "젊은 감각의 폭발보다 오래 쌓인 장년의 응축이 나오는 듯하다"며 "오래 닫힌 문을 처음 열때는 삐걱이지만 결국 문이 열리면 막힌 공기가 한번에 흐르는 것 같잖아요. 김 작가의 작품이 그런 것 같아요"라고 전한다.
이번 전시에는 김만희 작가 외에도 이원철·양인숙·David Park 작가들이 함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이원철 작가는 장노출 사진으로 시계바늘을 지워 시간의 고정을 해체하고 있으며 양인숙 작가는 풍선을 통해 기억과 현재 사이를 떠도는 자아의 거리를 드러내고 있다. 한의사이자 추상화가인 David Park 작가는 무위자연과 공의 철학을 바탕으로 기의 흐름을 화면에 맡기며 관객들과 호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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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철 작 [작가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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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인숙 작 [작가제공] |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포트리 뮤지엄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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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vid-Park [작가제공] |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입장은 무료다. 폐막을 앞둔 지금, 김만희 작가의 산티아고는 여전히 전시장 안에서 걷고 있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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