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대 손실을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법원이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 실형과 법정구속이라는 강력한 법의 잣대가 적용됐다. 법원은 김 회장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범행사실에 대해서 김 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 이러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룹 최고경영자의 실형이 확정되자 한화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데 대해 “재판부의 1심 판결을 존중하나, 법적 쟁점이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항소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자세히 소명해 2심 재판부의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며 항소 방침을 밝혔다.
한화그룹은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그룹 내부 사정으로 인해 2년 이상 검찰수사와 재판을 받은 결과 그룹 회장의 법정 구속 상황이 발생한 데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 본연의 사업에 더욱 정진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도록 가일층 노력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선 CEO중심 경영을 추구해온 한화그룹이 김 회장의 공석을 잘 이어나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최근 이라크 신도시 프로젝트와 태양광 사업 등 김 회장이 주도해온 굵직한 사업도 타격이 클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 한화그룹 ‘비상경영체제’ 돌입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법정구속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한화는 비상경영 체제 돌입이 불가피해 졌다. 한화는 이날 법정구속이 내려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경영공백을 최소화 하는데 부심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계열사들이 최고경영자(CEO) 중심의 자율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경영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최근 이라크 신도시 프로젝트 등 김 회장이 주도해오던 사업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그룹 경영기획실과 부회장단 중심의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할 전망이다. 업계는 최금암 그룹 경영기획실장과 최상순 한화 부회장, 성하현 아산테크노밸리 대표, 신은철 대한생명 대표, 이순종 한화 부회장 등 부회장단의 공동경영 체제가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금암 경영기획실장 등 부회장단은 이미 지난 주말 긴급회의를 갖고 시나리오 경영 등 사전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요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김 회장의 옥중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앞서 1993년 외화도피로 구속됐을 때도 옥중에서 주요 사안에 대해 직접 결정하기도 했다.
한화 관계자는 “부회장단을 중심으로 직원들이 동요하지 말고 평소대로 업무에 충실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며 “당분간 오너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굵직한 현안 사업들 차질 우려
그러나 그룹 내 사업을 총괄하던 김 회장의 구속으로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이라크 건설, 태양광 사업 등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너의 부재로 한화가 최근 야심차게 추진해온 굵직한 사업들이 당분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우선 김승연 회장이 가장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인 이라크 신도시 프로젝트가 가장 큰 문제다. 김승연 회장이 직접 이라크를 오가며 사업을 진두지휘했고 한화는 최근 국내 단일 사업수주로는 가장 큰 규모인 80억 달러(9조4000억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이번 수주에 따라 한화는 향후 전개될 이라크 100만호 주택건설 사업과 철도∙항만∙도로 등 기간사업과 발전소∙정유공장∙석유화학공장 등 생산설비, 신도시에 건설되는 학교에 태양광을 활용한 발전설비 공사에 도 참여키로 했다. 이르면 이달 중 8000억원 규모의 선수금을 받을 예정이다.
김 회장은 지난달 28일에도 이라크를 다시 방문해 누리카밀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추가 수주에 대한 논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때문에 2차, 3차 사업의 추가 수주도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이에 대해 한화 관계자는 “이라크 사업의 2차, 3차 사업 추가 수주 문제는 이미 실무진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사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은 미칠 수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화가 꾸준히 신성장 동력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태양광 사업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독일의 태양광업체 큐셀의 인수가 성사될지도 불투명해졌다. 큐셀은 지난 2008년까지 태양광 모듈 생산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했던 회사로, 이번 인수가 성사될 경우 한화의 태양광 모듈 생산 능력은 세계 2위로 올라설 것이란 기대가 모아지고 있었다.
한화케미칼은 지난 14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인수금액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확정, 이르면 16~17일 최종 큐셀 인수 발표를 할 계획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인수가 거의 확정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 회장의 구속으로 이 일 또한 당분간 미뤄질 전망이다.
보험업계 M&A를 진행중인 대한생명 역시 이번 일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생명은 지난달 ING생명 동남아 법인 매각 본 입찰에 뛰어들어 AIA생명 등과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대한생명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구속으로 ING생명과 동양생명 등의 인수합병이 중단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 “인수포기나 계속 추진 여부 등 어떠한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면서 “기존에 진행 중이던 일정 중 중단된 것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상황이 아니다”면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하지만 대한생명의 한화생명으로의 사명변경은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인 만큼 예정대로 10월9일 시행될 계획이다. 대생 관계자는 “사명변경과 관련해서는 변수로 작용할 이유가 없다”면서 “10월9일 등기가 바뀌게 되면 새로운 사명이 적용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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