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름이’들을 위하여

유상석 / 기사승인 : 2012-08-17 12:49:38
  • -
  • +
  • 인쇄

또 한 송이의 꽃이 피어보기도 전에 꺾이고 말았다. 경남 통영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故 한아름 양 이야기다. 한 양을 살해한 범인은 다름 아닌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아저씨’였던 것으로 드러나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기자는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아저씨’라는 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짧은 어구를 통해 왜 아름이가 목숨을 잃게 됐는지를 분석하고, 또 다른 ‘아름이’들이 비극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아저씨’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어른’을 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학교 또는 가정교육을 통해 “어른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도와드려야 한다”고 배워왔다. 예컨대, 어른이 무거운 짐을 든 채 쩔쩔매고 있으면 고사리 손으로나마 짐을 들어드리고, 어른이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으면, 길을 알려드리라는 식이었다.


아름다운 덕목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린이의 착한 마음이 자칫 납치ㆍ성범죄 등을 노린 어른에게 나쁘게 이용되진 않을까 저어되는 내용이다. 직접 도와드리기 보다는 다른 어른이나 가까운 상점을 통해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있도록 가르치는 건 어떨까?


그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이웃집’이다. 서울 등 대도시와는 달리, 아름이가 살던 경남 통영 지역에서, ‘이웃집 아저씨’는 ‘아는 사람’이었다. 아동성범죄 가해자의 상당수가 면식범이라는 사실은 여러 연구 결과, 많은 언론 매체의 보도에 의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동들에게 행해지는 예방 교육은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는 정도가 전부다. 이제는 ‘낯선 사람’ 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낯선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지적한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이라는 말과 ‘나쁜 사람’,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라는 말을 같은 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동화, 만화영화, 인형극 등을 통해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곧 악역(나쁜 사람)’이라고 학습된 탓으로 추정된다.


선생님ㆍ부모님 등이 “낯선 사람 조심하라”고 교육하면, 막연히 ‘낯선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보다’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혼동을 막기 위해 교육기관과 가정에서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단어는 ‘친하게 지내던’이다. 아름 양의 사후, 각종 언론매체는 그의 외로웠던 생활을 앞다투어 소개했다. 가족들이 있었지만, 그를 돌봐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웃집 아저씨는 외로움에 시달리던 아름이에게 학교 밖에서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아름이는 나쁜 마음으로 접근한 이웃집 아저씨와 너무 친하게 지낸 탓에 희생되었으리라. “아름이를 돌봐줄 사람만 있었어도, 이처럼 잔혹하고 슬픈 사건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새삼 안타깝게 들린다.


온 국민을 슬픔과 분노에 빠트린 ‘한아름양 사건’은 올림픽과 ‘티아라 왕따 사건’으로 잊혀져가는 모양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피기도 전에 꺾이는 꽃이 더는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결코 쉽게 잊혀져서는 안 된다. 하늘나라에서 잠들어 있을,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이웃집 아저씨’들에 의해 언제 꺾일지 모르는 ‘아름이’들을 위하여!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