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전쟁, ‘일본 침몰’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03-09 11: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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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업체 日엘피다, 결국 ‘법정관리’

일본 최대 D램 반도체 업체 ‘엘피다메모리’가 자금난에 밀려 결국 법정관리를 선택했다. 엘피다는 부채 총액이 6조원을 넘어서 일본 내 제조업체 규모 사상 최대 파산을 기록하는 불명예도 떠않았다. 엘피다 소식에 업계는 “삼성전자에 밀리면서부터 예견된 것”이라는 반응이다.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가 주도한 ‘D램 반도체값 치킨게임’에서 결국 엘피다가 탈락한 것이다.


이제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인수할 것인가”여부다. 세계 3위인 엘피다는 일본 내 유일의 D램 업체기 때문에 청산보다는 매각 또는 제휴를 통한 구조조정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업계와 언론들은 “일본 도시바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유력한 인수 후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 자금난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세계 3위 D램 반도체 업체 엘피다메모리의 사카모토 유키오 사장(왼쪽) 등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장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세계 3위의 D램 생산 업체 엘피다메모리는 지난달 27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회사갱생법(법정관리) 적용을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해 3월 현재 부채 총액은 4480억엔(약 6조2500억원)”이라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일본 내 제조업체 파탄 규모로 사상 최대”라고 전했다.


자회사인 아키타(秋田) 엘피다메모리도 이날 회사갱생법 적용을 신청했다. 자회사의 부채 총액은 약 79억엔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이달 28일 엘피다를 1부 상장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엘피다는 D램의 시황 악화로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만 1000억엔(약 1조4000억 원) 이상의 순손익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 일본 D램 연합군의 패배


현재 D램 세계시장 점유율은 삼성이 45.1%로 압도적 1위이며, 하이닉스반도체(21.6%), 엘피다(12.2%), 마이크론테크놀로지(12.1%)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엘피다의 파산신청 소식에 업계는 놀라면서도 “삼성전자에 밀리면서부터 예견된 것”이라는 반응이다.


엘피다가 법정관리란 극약 처방을 선택한 것은 당장 파산을 면하는 대신 부활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법정관리로 넘어간 엘피다가 어떠한 방식으로 재기에 나설지 앞으로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엘피다는 1999년 일본 전자업체인 NEC와 히타치제작소의 D램 사업을 통합해 ‘NEC히타치메모리’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D램 반도체 가격이 수요가 감소하면서 하락하자 삼성전자가 공급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공급을 늘려서 경쟁업체를 밀어내는 ‘치킨게임’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자 지난 2002년 위기감을 느낀 일본의 D램 반도체 업체들은 삼성전자와 대적하기 위해 모두 하나로 똘똘 뭉쳐 일종의 ‘일본 D램 연합군’을 형성했다. 그러나 반도체 업체들은 기술 방식 등 차이가 많아 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려웠다.


엘피다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인 2009년, 이미 ‘산업활력재생법’의 적용을 받아 일본 정부 산하 일본정책투자은행으로부터 300억엔을 출자 받았고,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4개 은행으로부터 1000억 엔의 협조융자를 받는 등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이후에도 엘피다는 지속적인 자금난의 압박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에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대만의 난야 등에 자본 참여를 요청했지만 교섭에 난항이 계속됐고 결국 그리스어로 ‘희망’을 뜻하는 엘피다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파산을 면치 못했다.


엘피다는 총 3581억엔 차입금을 갚아야 하며 당장 오는 4월까지 920억엔을 상환해야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보유 현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정부 및 채권단과 채무상환 협상에도 실패해 ‘자력에 의한 경영정상화’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엘피다는 채무가 동결되는 법정관리를 받으면서 당장 파산은 면할 수 있게 돼 자산 매각과 경비 절감, 공적자금 지원 등을 통해 부활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밑빠진 독 물붓기’가 파국 불러와


일각에서는 “엘피다의 몰락은 일본항공과 같은 ‘좀비 기업’을 양산하는 일본식 정경유착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기업은 망하려고 할 때 시장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정치권에 손을 벌렸고, 정치권은 “일본의 상징”이라는 등의 명분으로 기업들을 계속 지원해온 것이 이런 상황을 불러 왔다“는 설명이다.


<프레시안>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80년대 일본 은행들은 넘쳐나는 자금을 관치금융에 의해 기업들에게 마구 흘려 넣었고, 내부적으로는 이런 현실에 안주하면서 경쟁력을 서서히 잃어갔다”고 지적했다. 엘피다도 이미 2008년 수 조 원의 적자에 파산 위기였으나 당시 일본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 막대한 액수를 지원받았다. 그러나 당시 업계는 “엘피다가 다시 파산 위기를 맞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관측했다.


이번 파산 신청을 놓고도 업계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한 최후의 꼼수”라는 비난하고 있다. 파산신청을 하면 법원은 정밀 심사를 통해 파산시킬지 아니면 회생시킬지를 판단하고,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는 채무가 동결된다. “그 기간 동안 엘피다는 직원 6000여 명을 볼모 삼아 일본 정부에 ‘파산하게 내버려둘 것이냐’ 하는 압박을 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는 “이후 회생 절차를 밟더라도 채무가 동결되는 대신 신규 자금 지원도 제한되어 적기에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회생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빚더미에 올라 있는 것도 엘피다의 회생 가능성을 더욱 낮게 하고 있다.


◇ 마이크론·도시바 ‘구세주’ 될까


그러나 엘피다 경영진은 아직 사업 의지를 꺾지 않았다. 엘피다 사카모토 유키오 사장은 법정관리 신청 이후 기자회견에서 “신속한 사업 재건을 위해 현 경영진을 중심으로 경영을 계속하고, 경영진이 하나로 뭉쳐 회사를 재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사갱생법 신청시 ‘기존 경영진 퇴임’이라는 일반적경우와 달리 엘피다는 주요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 사카모토 사장 등이 연임키로 했다. 이후 외부 기업으로부터 자금 지원 등의 방법으로 재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에다노 유키오 日경제산업상도 “매우 유감스러운 사태”라며 “하루빨리 사업을 재건해 국내 생산을 유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엘피다와 수개월 동안 자본 제휴협상을 해온 마이크론이 엘피다를 부활시킬 유력한 업체”라고 보고 있다. 日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엘피다가 법정관리로 넘어가면서 마이크론 입장에선 거액의 부채를 떠안아야 할 필요가 없어진 만큼 제휴하기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4위인 마이크론은 이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대항하기 위해 엘피다와의 통합을 추진한 바 있다. 엘피다를 인수할 경우 점유율을 높여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도 유력한 제휴 업체로 떠오르고 있다. 도시바는 엘피다에 대한 자금 지원 제공 조건으로 법정관리 신청을 언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D램 업계 환경은 앞으로도 어려울 전망”이라며 “엘피다 부활 가능성 낮아 도시바가 주요 제휴 업체가 되기는 어렵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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