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 칼럼] 아내를 죽여 출세한 장군 오기

정해용 / 기사승인 : 2015-08-24 08: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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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시인
토요경제 상임논설위원

吮疽之仁 연저지인


장군이 부하를 지극히 아끼는 마음 (출전: 孫子吳起列傳)


위(魏)나라 장군 오기가 병졸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해준 데서 유래한 말



진(晉)나라의 영토는 태반이 조-한-위(趙韓魏) 삼경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진 유공이 민간의 부녀자와 통간하여 밤마실을 다니다가 강도를 만나 죽고 유공의 아들 열공이 즉위했는데, 열공 19년째에 주 천자 위열왕이 삼진의 독립을 승인했다. 이후 50년이 안되어 진나라는 제사가 끊어지고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삼진이 정식 국가가 된 BC 403년부터를 춘추시대와 구분하여 전국시대(戰國時代)라 부른다. 주나라는 이 무렵 동주와 서주로 갈라졌다. 제후국들은 더 이상 천자를 무시하고 제각기 스스로를 왕으로 칭했다. 춘추시대에 살아남은 제후국 진(秦)·초·연 세 나라와 신흥세력인 한·위·조·제 네 나라가 각축을 벌여 이를 전국 7웅이라 한다. 제나라는 본래의 제후 강씨가 몰락하고 전(田)씨가 다스리기 시작한 전제(田齊)를 말한다.


아내를 죽여 충성을 맹세하다
노나라에 오기(吳起)라는 장수가 있었다. 본래 위(衛)나라 사람이지만 나라가 사실상 와해되었으므로 공손앙을 비롯한 위나라 인재들은 각기 흩어져 다른 나라로 들어갔던 것이다.


노나라가 제나라와 싸우게 되었다. 오기는 용병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으므로 노나라에서 그를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었으므로 과연 제대로 싸울 것인가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오기는 자신의 충성심과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자기 처를 죽이고 장군이 되었다(殺妻求將).


오기는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 제나라를 크게 물리쳤다.


그러나 그의 잔혹함을 두려워한 노나라 사람들은 오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헐뜯었다.


“오기는 시기심이 강하고 잔인하다. 어려서는 집이 부유했으나 벼슬을 구하러 다니느라 가산만 탕진했다. 마을 사람들이 비웃자 비웃는 사람 30명을 죽이고 위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라더라. 또 자기 어머니에게는 ‘큰 벼슬을 얻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고 나왔는데, 뒤에 증자(曾子)를 섬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상을 치르러 돌아가지 않자 증자가 ‘박정한 사람’이라 하여 내쳤다. 이후 오기는 노나라로 들어와 병법을 배우고 장수가 된 사람이다. 그가 제나라를 물리쳐 공을 세웠지만, 본래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의 나라 아닌가. 군주가 오기를 중용하면 위나라와 사이도 나빠질 것이다.”


노나라 군주가 이 말을 듣고 그를 가까이 하지 않자 오기는 노나라를 떠났다.


오기는 신흥세력인 위(魏)나라로 가고 싶어 했다. 위나라 문후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먼저 현신 이극(李克)에게 오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이극이 말했다. “오기는 탐욕스럽고 여색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용병술이 뛰어나 사마양저라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침 진(秦)나라가 위나라를 침공하여 위태로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위 문후는 오기를 장군으로 등용했다. 오기는 진이 중원에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공격하여 성 다섯 개를 빼앗았다. 이로써 위나라는 강한 군사력을 과시했다.


부하의 몸에 난 종기를 빨다
과거에 대한 소문이야 어떻든, 위나라에서 오기는 청렴하고 강직한 명장이었다.


출전을 앞두고 병사들을 소집했을 때, 오기는 일반 사졸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었다. 잠을 잘 때에도 말단 사졸들과 같이 별도의 자리를 깔지 않고 맨바닥에 누웠으며, 행군할 때는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사졸들과 같이 걸었다. 사졸들처럼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지고 함께 걸었다.


한번은 사졸 중에 한 사람이 독창이 생겨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 그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고름을 짜주었다. 병사들은 장군을 믿고 존경하게 되었으므로 군의 사기는 더욱 높았다.


그런데 그 사졸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전해 듣고는 그 자리에서 통곡했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그대의 아들은 일개 사졸인데, 장군이 친히 그의 종기를 빨아 치료해 주었단 말이오. 이런 영광스런 일을 전해 듣고 통곡을 하다니 어찌된 일이오?” 그러자 그 어머니가 울면서 말했다. “모르는 소리 마시오. 오 장군이 예전에도 그 애 아버지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준 적이 있소. 그러자 그이도 감격한 나머지 전쟁터에서 물러설 줄 모르고 끝까지 달려나가 싸우다가 죽었소. 장군이 또 내 자식의 독창을 빨아주었으니 그 아이도 똑같이 하지 않겠소? 그래서 통곡하는 것이오.”


오기의 군대는 사기가 높았고 단결이 잘 되어 천하무적이었다. 게다가 오기는 강직하고 청렴하며 공정한 지휘관이었으므로 위 문후도 점차 그를 신임하게 되었다. 문후는 오기를 서하의 태수로 삼아 진(秦)과 한(韓)나라의 공격을 방비하게 하였다.


문후가 죽은 후 아들 무후가 즉위했다. 무후가 서하를 순시하러 와서 오기와 함께 배를 타고 내려가면서 험준한 지형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정말 훌륭하구나. 이 험고한 산하야말로 나라의 보배가 아니겠는가.” 오기가 대답했다.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행에 있는 것이지 지형의 험고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대의 많은 왕들이 훌륭한 지세를 갖고 있으면서도 인자함과 덕의 정치를 베풀지 못했으므로 인심을 잃어 망했습니다.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면 백성이 곧 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강직한 대꾸였다.



“장군이 예전에 남편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준 적이 있소. 그러자 그이는 전쟁터에서 물러설 줄 모르고 싸우다가 죽었소. 이제 또 내 자식의 독창을 빨아주었으니 내가 통곡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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