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는 지난달 30일 서울 학동 소재 W저축은행에 ‘경영개선명령’이라는 적기시정조치를 내렸다. W저축은행이 제출한 경영개선계획이 경영평가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1월 중순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이 저축은행 고객들은 의외로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모습이다. W저축은행 관계자는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날 긴장했는데 워낙 학습효과가 컸던 터라 고객들이 5000만원이하로 예금을 일찌감치 분산 예치했다”며 “인출해달라며 고성이 오가는 등의 불미스러운 일은 11월 접어들어서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 경영진은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말 100억원 증자에 성공했지만 추가 증자, 매각 등 자본 확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경기저축은행도 경영정상화(BIS비율 5% 달성)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 부은 혈세만 15조… 7조 더 부어?
한동안 잠잠했던 부실 저축은행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처럼 고객 불만이 극에 달했던 때에 비해서 많이 차분해지긴 했지만, 다수 저축은행의 부실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발표된 19개 저축은행의 2012년 회계연도 1분기(7~9월) 공시에 따르면 이들 저축은행 중 15곳이 적자를 기록했다. 웅진그룹 계열이 된 서울저축은행이 614억원, 신라저축은행이 553억원을 기록하는 등 전체 15곳의 당기순손실 규모는 3000억원에 달했다.
BIS비율이 떨어진 곳도 16개, 그중 금융당국의 경영개선 대상인 BIS비율 5% 미만인 곳만 8곳에 달한다. 특히 1%에 미달한 곳은 진흥(-12%)을 비롯해 경기(-6.8%), 신라(-6.1%), 서울(-5.5%), W(-4.1%), 골든브릿지(0.6%) 등 6곳이다.
금융당국은 W, 경기 외에도 최근 실적이 급격히 악화된 서울저축은행과 신라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자본 확충 계획을 종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11월 기준 영업 중인 저축은행은 93곳인데 조만간 경영개선명령 대상 은행이 5곳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저축은행 손실분을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막아야 할 판이라는 사실이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4월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만들어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에게 5000만원까지 예금을 지급해주고 있다. 특별계정은 15년간 은행, 보험, 저축은행 등 금융업권별로 납입하는 연간 보험료에서 가져온 돈으로 규모만 15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저축은행 부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추가로 예금보험기금 채권 발행 등을 통해 7조원의 자금이 더 투입된 상황이다. 이 돈은 저축은행이 경영정상화를 하면서 갚아나가야 할 돈이다.
하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들이 부실해져 저축은행들이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예금보험공사 입장에서는 급한 불 끄자고 서둘러 조성한 특별계정이 오히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 된 셈이다.
금융권의 한 실무자는 “그간 예보가 부실 저축은행 회생을 위해 22조원을 투입했지만 이중 7조원이 회수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부실 저축은행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예보의 저축은행 특별계정 차입금 15조원은 이미 바닥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공적자금 등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회를 설득해 특별계정 기한을 연장해 상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자는 제안이 나오긴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부실저축은행, 또 금융지주 떠넘기기?
국회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예보는 부실 저축은행을 정상화하기 위한 중간 단계의 가교 저축은행을 만들어 자구 노력, 매각 추진 등을 통해 특별계정 자금을 회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저축은행 구조조정으로 10여개 저축은행이 매물로 쏟아질 예정이지만 경기침체로 인수할 주체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예보 입장에선 이미 바닥을 드러낸 저축은행 특별계정 여파로 예보기금이 10조원 이상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부실 저축은행 매각으로 이를 타개해 보겠다는 의지로 보이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예보는 최근 5월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솔로몬, 한국저축은행 계열 5개 저축은행과 예쓰, 예솔, 예나래 가교은행 등 예보가 소유ㆍ관리 중인 부실 저축은행들에 대한 매각진단 작업을 마무리됐다. 이에 연내에 이들 10여개 저축은행들을 매각해야 하지만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부실만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인 가운데 선뜻 인수 주체가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 문제다.
예보 관계자는 “현재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성급하게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매각 작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다시 대형 금융지주사에 부실 저축은행을 넘기는 방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금융지주사 한 관계자는 “당국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지금은 실적 챙기기에도 허덕이고 있다”며 “부실 저축은행을 추가로 인수할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올 초 KB금융이 제일저축은행을, 신한금융이 토마토저축은행, 우리금융이 삼화저축은행, 하나금융이 제일2ㆍ에이스저축은행을 각각 인수했으나 적자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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