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유상석 기자]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대표적인 학원가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대표적인 입시학원가인 대치동과 중계동ㆍ목동의 학원들은 쉽게 출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에, 고시촌으로 유명한 신림동 일대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이로 인한 사법시험 폐지가 예정되면서, 학생들이 줄어 울상을 짓고 있다.
반면 불황의 영향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들이 늘어나면서 노량진 학원가는 등록하려는 학생들로 붐비고 있다.
◇ 쉬운 수능ㆍ경기침체… 대치ㆍ목동 ‘썰렁’
서울의 대표적인 입시학원가인 대치동과 목동 등은 겨울방학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한 분위기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이 일대 학원 10곳 중 3~4곳이 최근 폐업신고를 하거나 개점휴업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대치동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학원형 상가의 권리금이 반토막이 났다. 학생 수가 줄어든 탓”이라고 말했다. 목동의 다른 공인중개사는 “학원 임대 문의가 예전에 한 달에 20건이었다면 지난 2011년에는 15건, 지난해에는 10건 정도로 줄었다”며 “100㎡ 규모 학원형 상가 권리금은 2011년 5,000만원에서 지난해 3,500만원으로 떨어졌다”는 말로 침체된 분위기를 전했다.
인근의 원룸촌 역시 썰렁한 모습이다. 앞서의 대치동 공인중개사는 “목동 학원가엔 원룸 3,500여가구가 있는데, 이 중 40% 정도가 비어 있는 상태”라며 “요즘처럼 학생이 줄어든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학원에서 비싼 비용을 부담해가며 공부하기보다는 인터넷 강의나 EBS를 찾는 이들이 많아 학원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쉬운 수능과 좋지 않은 경기가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서울 지역 폐업신고 학원 수가 신규 설립신고 학원 수를 추월하고 있다.
2010년 신설 등록 학원 1,410곳에 폐업 학원 수는 1,416곳이었고 2011년 1,091곳이 설립되고 1,243곳이 폐업해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지난해는 10월 기준으로 신규 설립 학원은 871곳으로 1,000개 미만으로 떨어졌고 폐업 학원 수는 1,051곳이었다.
교과부와 시교육청은 △사교육 규제책 △학생수 감소 △경기 불황 △쉬운 수능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수능시험의 70%를 EBS와 연계해 출제하면서 인터넷 강의와 EBS에 의존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데다 경기침체로 학부모들이 학원비 지출에 인색해지면서 입시학원가를 찾는 학생 감소로 연결되고 있는 셈이다. 주5일제 시행으로 방학기간이 단축된 점도 겨울방학 특수 실종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 사법시험 폐지… 신림동의 몰락
한 때 고시촌으로 유명하던 신림동 일대도 마찬가지의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2017년을 마지막으로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고시생 인구는 눈에 띄게 줄고 있는 것이다.
신림동 최대의 사법ㆍ행정ㆍ외무고시 학원으로 알려진 ㅂ 고시학원은 최근 제2관에서 철수했다. 유명 강사를 대거 섭외해 2000년대 중반, 최대 규모로 성장했던 이 학원은 한 때 3개의 건물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체제가 도입되고, 이에 따라 사법시험의 폐지가 예정되면서, 신림동 고시생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사법시험 준비생 인구가 대거 줄어들었고, 이 탓에 현재는 단 한 개의 건물로만 운영되고 있다.
ㅂ 학원의 한 강사는 “사법시험 수험생이 줄어든 만큼 학원 측에서 감정평가사ㆍ노무사ㆍ법무사반을 개설하는 등,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곤 있지만, 예전과 같은 경영상태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신림동 최대의 고시서점이던 ‘광장서적’도 문을 닫았다.
출판업계 등에 따르면 고시 관련 서적과 사회과학서적 등을 판매하는 지역 최대 규모의 서점인 광장서적이 1억6000여 만 원 상당의 어음을 막지 못해 지난해 12월 31일자로 부도처리됐다.
지난 1월 초부터 광장서적 입구에는 ‘내부사정으로 인하여 당분간 휴업합니다. 빠른 시일 내 정상영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는 내용의 A4 용지가 붙었다. 아직 부도 사실을 모르는 몇몇 고시생들은 서점을 찾았다가 다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광장서적에서 운영하는 인근 광장문구 또한 ‘공사 중’이라는 안내표지가 붙은 채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해찬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1978년 문을 연 광장서적은 이 전 대표가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1990년부터는 동생 해만(56) 씨에 의해 운영돼 왔다.
광장서적은 1980년대 이른바 ‘빨간 책’으로 불렸던 진보성향의 사회과학서적을 판매하는 책방으로 유명세를 떨쳤으나 1990년대 들어 고시 등 각종 수험 서적을 파는 서점으로 변신해 고시생들 사이에 고시 관련 정보의 중심지로 인기를 끌었다.
광장서적의 부도 소식에 고시생들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마지막 남은 대형 고시서점이 사라진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또 일부에서는 광장서적이 그동안 구입한 책값의 10∼15% 수준의 쿠폰을 구매자들에게 지급해 왔는데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이를 쓰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앞서 지난 2011년엔 신림동 유명 고시서점인 ‘상원서점’도 문을 닫았다. 상원서점은 신림동 고시서점 중 중간 크기의 규모였지만, 학원가가 밀집한 곳에 위치해 고시생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다.
이처럼 장사가 잘되는 것으로 보이던 고시서점들이 연달아 문을 닫으면서, 부동산 업계에서는 신림동 학원가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신림동 고시촌 일대 부동산 상권의 미래는 어둡다”며 “특히 은행 빚을 내 자기 집을 허물고 상가나 원룸을 올린 건물주들이 ‘상가 푸어’로 전락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 안정적 직업 찾아 노량진만 ‘후끈’
반면 공무원과 자격증 관련 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일대는 수강생들로 붐비고 있다.
일부 학원들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홍보전을 펼치고 있었다. 7급 공무원을 3년째 준비 중인 20대 후반의 한 수험생은 “최근 친구들 몇 명이 대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며 “올해도 강의실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 상담실 앞엔 등록 상담을 기다리려는 수험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 관계자는 “불황 탓에 공무원 수험생이 많아진데다, 최근엔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까지 일찍부터 수험 생활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 등록 상담을 위해 길게는 1시간 넘게 기다리는 수험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무원이나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해 노량진 학원가를 찾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이 지역 부동산 시장은 타 학원가들에 비해 비교적 활기를 띠고 있다.
노량진의 한 공인중개사는 “상가든 원룸이든, 타 지역에 비해서는 비교적 매매 및 임대차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라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수험생활에 매달리는 사람이 늘어난 탓 아니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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