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통과 대화단절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됐던 우려사항이었다. 특히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공략했고 새누리당은 일축하며 맞섰다. 대선에서 승리한 후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박 대통령을 향한 불통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또한 이와 관련한 부분은 몇 가지 사안에서는 첨예한 대립과 사회문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이에 대해 대통령의 ‘원칙과 소신’이라고 반격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이러한 일관된 박 대통령의 행보에 거대한 암초가 등장했다. 국민적 불신과 대대적인 반대 여론의 반격이 수면위로 치고 나온 것이다.
취임 1년, 원칙과 소신으로 극복
취임 후 정치싸움에서는 일진일퇴의 격랑이 있었다. ‘인사참사’로 평가된 박근혜 정부의 초기 인선 실패 문제에 대해서는 꾸준히 문제가 제기됐지만,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서도 결코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대북문제와 대일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우려의 목소리는 높았다. 북한의 너무 궁지로 몰아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비난이 일었고,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한‧일간의 경색된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반면 말로만 일본과 치열한 공방을 벌일 뿐 실질적인 조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꿋꿋하게 ‘마이 웨이’를 주창한 박 대통령의 주관적인 행보는 나름의 결실을 이루어냈다. 북한은 꾸준한 핵 위협 속에서도 결국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를 수용했고, 일본과의 문제 역시 미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 많은 나라들의 여론을 우리나라 쪽으로 돌려놓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의전의 여왕’이라는 별명답게 해외 순방 때마다 외교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도 나타났다.
내부적으로도 공기업 민영화 문제와 맞물려 철도노조의 대대적인 파업이 발생하며 큰 위기를 맞았다. 유럽을 비롯한 철도 민영화 실패 사례가 공개되는 가운데 ‘민영화 저지 투쟁’이라는 대의명분을 들고 나온 철도노조의 파업은 사상 최장 기간 이어졌으며 지하철 노조의 파업 예고와 맞물리며 대대적인 혼란을 예고했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파업 직전 지하철 노조의 노사갈등을 봉합시키며 박 대통령의 원칙론은 처음으로 국민적 시험대에 서는 듯 했다. 하지만 결국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한 박 대통령의 뜻은 관철됐고, 철도노조가 무릎을 꿇으며, ‘박 대통령의 소신이 사회질서를 지켰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이르러 박 대통령의 ‘원칙과 소신’은 ‘리더십의 한계’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반드시 지켜야 했던 과제 ‘안전’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하겠다고 선언했다. 단순히 이름의 순서만 바꾸는 것이고 쓸데없는 세금의 낭비라는 지적이 일었지만 박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지”임을 강력히 표명했으며,정부조직도 개편을 하며 이 부분을 관철시킴과 동시에 국민안전종합대책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1년여 만에 대형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며 박 대통령의 이러한 의지는 물론 국정운영능력 전반에 관해 무능하다는 결론까지 도출되고 있다.

적정인원보다 너무 많은 인원들이 체육관에 몰려있었던 점과 사고 당시 대피 등의 동선 문제 등이 제기됐지만, 설계도와 다르게 건물이 지어졌다는 점과 제대로 된 감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건축 자체의 부실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하는 방향으로 사태의 추이가 흘렀다.
그러나 처음 문제로 제기되었던 체육관 지붕의 눈을 치우지 않아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리조트의 관리 소홀로만 지적하고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마우나오션리조트가 위치한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일대에는 1주일 동안 50~60cm의 눈이 내렸다. 원래 눈이 많이 오지 않던 지역이었을 뿐 아니라 당시에 내린 눈은 "동해안에서 형성된 눈구름에 의한 습설로 습기 함량이 높아 같은 적설량에도 무게가 무거워 구조물 붕괴의 위험이 높다"는 예보가 이미 방송을 통해서도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관련 기관에서의 대처가 얼마나 철저했고 사전 예방 조치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문제를 삼지 않았다.
리조트 참사 두 달 만에 ‘세월호 침몰’
그리고 사고 두 달 만인 지난 달 16일에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는 선박 침몰 자체만으로도 박근혜 정부에게 커다란 타격이고 손실이다. 하지만 침몰 이후 드러난 이른바 ‘해피아 관행’은 물론, 국내 선박 운영 실태의 허술함 앞에 정부의 관리 소홀이 도마 위에 더해져 올라왔다. 여기에 정부의 무능력한 사고 수습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왔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안전 우선’을 강조하며 취임과 동시에 개명작업까지 했던 안전행정부는 사고 인원수 파악에만 며칠이 걸린 채 우왕좌왕했고, 해당부서 장관은 실종자 구조에 나서려던 잠수부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갖기 위해 출항을 지연시켰다는 사실까지 밝혀져 비난의 중심에 섰다. 심지어 사고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려다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덜미를 잡혀 옷을 벗은 송영철 전 국장이 박근혜 정부의 첫 훈장 수여자였음이 알려지며 비난 여론은 더욱 높아졌다.
해양수산부, 교육부 장관 등 각 정부 부처의 책임자들은 무책임했고, 현장을 방문하는 정부 인사들은 무능한 모습만 보였다. 진도 현장을 방문하고도 수습 방안에 대해 아무런 갈피를 못 잡던 정홍원 국무총리는 사퇴하겠다는 선언으로 다시 한 번 논란을 야기했고, 책임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인물들과 부처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심지어 박 대통령마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 여부에서 선 긋기를 하고 있다는 외신의 지적이 나왔고, 국가 재난 앞에 유일하게 국민에게 사과를 하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박 대통령의 합동분향소 방문과 관련해서는 연출 영상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박 대통령의 사과 표명과 관련해서도 유가족과 피해자가 아닌 국무위원 앞에서 표현하는 방식의 발언을 사과로 인정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이어진다.
여기에 사태 수습은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가 언론과 SNS등 여론 통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의혹과 문제제기가 이어지며 국민적 반감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 박 대통령이 처음 나타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취임 전부터 박 대통령이 꾸준히 보여 왔던 모습의 연장선이며, 결과가 좋았을 때에는 ‘원칙과 소신’, 그리고 일관성 있는 행동으로 평가받았던 부분이다.
그러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참사에 아무것도 못한 정부의 무력함과 심지어 살릴 수 있었던 인명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지적에 대해 국가가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자 국민이 등을 돌렸고, ‘세월호 참사’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 자체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사건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와의 비교 등장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비교되고 언급되고 있는 것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다. 2002년 6월 말에 발생했던 서해교전 당시 대통령에게 사고 발생 3시간이 지나서야 군대에서 쓰는 상황판으로 보고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비상대응체제에 대한 심각성이 제기됐고, 참여정부는 국가위기관리시스템 매뉴얼을 만들고 대응체제를 일원화 하여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를 직접 관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2005년 4월, 식목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산불이 비무장지대까지 번졌던 사건과 2007년 12월 태안반도 해상에서 발생했던 ‘허베이 스피릿호 기름유출사건’을 빠르게 확산 저지하고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전 정권의 색깔지우기에 나서며 정권 초기 NSC를 비상임기구로 전환함과 동시에 안보 분야는 청와대가, 재난 분야는 안전행정부(당시 행정안전부)가 맡는 등 책임을 분할시켰고, 이러한 조치로 인해 오히려 위기 대응과 관련한 집중 관리 체계가 무너졌다는 분석과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10년 3월에도 천안함 침몰 당시 조속한 대응에 나서지 못했고,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NSC는 위기상황 발생 시 대처요령, 초동단계 지침, 위기발령 체계 전파, 대국민 홍보방안 등 종합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을 작성했으며, 북한의 핵 도발을 포함한 우발사태, 산불재난 등 위기 상황 등에서 정부 각 부처나 기관이 대응해야 할 행동절차와 조치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을 수립했다. 당시 NSC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270여개의 실무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 역시 이에 대응하는 재난 대응 대책을 수립하였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특히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에 가까웠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지난달부터 ‘경제살리기’를 위한 직접적인 방안으로 본격적인 규제 철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연이은 참사가 적절한 규제를 너무 풀어버리면서 발생했다는 지적과 근거가 이어지며 대통령의 국정 운영 계획이 국가 미래를 내다보는 발전적 비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따가운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허베이 스피릿호 기름유출사건’ 당시 현장을 방문해 “비용에 구애받지 말고 우선 기름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당부했던 노 전 대통령의 동영상을 퍼 나르며, 현장 공무원과 관료들에게 책임을 갖고 일을 하게 할 줄 아는 능력에 대해 박 대통령과 신랄한 비교까지 이어가고 있다. 결국은 박근혜 리더십의 한계다.
여전히 박 대통령은 일관된 입장과 꼿꼿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원칙적인 사태해결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하고 있지만, 현장의 온도는 전혀 다르다. 선거 정국에 터진 커다란 참사 앞에 여당은 물론 야당도 제대로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 사고 초반 성급하게 운신을 했던 인사들이 맞은 역풍에 정치인들의 행보는 얼어버렸다.
위정자들의 소신 있는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본연의 길을 놓지 않고 있는 박 대통령의 마이웨이가 취임 후 가장 큰 암초로 닥친 이번 사태도 뚫고 갈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들불처럼 끓고 있는 민심에 여론은 또다시 분노와 분열로 치닫고 있고, ‘세월호 참사’는 자칫 박근혜 대통령 본인에게도 커다란 ‘참사’가 될 위기로 비화되고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는 침몰하는 대한민국이었다”는 자조적인 비판이 등장하고 있다. 곧 박 대통령의 위기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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