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장우진 기자]세무사들의 원망의 불똥이 SK그룹에 튀었다.
지난 7월 이희완(63) 전 국세청 조사2국장이 퇴직 후 SK그룹으로부터 고문료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검찰에 기소됐다.
국세청 출신 직원들은 일반적으로 퇴직 후 대부분 세무사 개업 등을 하며 제2의 인생을 펼친다. 이 같은 경우에 사무실 개업 후 고문료 수입이 상당한데 이 전 국장이 고문료 문제로 검찰 기소되자 세무사들은 대기업들로부터 고문을 맡는 일이 상당히 어려워졌다.
이 같은 상황에 세무대리계 등 국세청 퇴직자들 사이에서는 SK그룹과 이 전 국장을 원망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희완 전 국세청 국장 ‘SK로부터 30억’
일명 ‘SK사건’으로 불려지는 이희완 전 국세청 조사2국장의 고문료 사건이 새삼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7월 이 전 국장은 SK그룹으로부터 고문료 명목으로 30억원, 청호나이스·김영편입학원로부터 각 3억원 등을 받은 혐의로 검찰 기소됐다.
이 전 국장은 2006년부터 국세청 퇴직 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SK그룹으로부터 5년간 매월 5000만원씩 총 30억원을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고문료 액수가 통상적인 개념을 넘어서 ‘뇌물’ 의혹이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SK그룹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벌였으나 형사고발없이 세금 1000억원을 추징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전 국장은 김영편입학원으로부터 받은 3억원과 관련해서는 죄질이 명확히 드러나 검찰 기소가 됐다.
김영편입학원의 김영택(60) 대표는 검찰조사에서 “나는 적당히 도와주는 것을 원하는게 아니라 이번 세무조사를 무마시켜주는 것을 원한다”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추징세액이 적게 나오도록 하고, 국세청의 보도자료에 김영학원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정황에 비춰봤을때 SK그룹으로부터 받은 30억원 역시 순수한 고문료는 아니지 않겠냐는 분위기다.
지난 4월에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거액의 고문료를 받은 것이 적발됐다. 한 전 청장은 주정업체 3곳으로부터 받은 6900만원에 대해서는 기소처분을 받았으나 SK그룹 계열사 등 7개 업체에서 받은 6억6000만원은 대가성 규명해 실패해 기소처분을 받지 않아다.
◇기업, 국세청 출신자 고문? ‘꺼릴수밖에…’
SK그룹과 국세청 간부의 연이은 고문료 논란에 국세청 퇴직자들이 원망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단순히 ‘국세청의 이름에 먹칠’을 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국세청 직원들은 퇴직 후 일반적으로 세무사 개업이나 회계법인 등에 취업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현장에서 부딪힌 경험을 토대로 대기업 등 고문을 맡으며 고문료를 받는다.
직급이나 회사규모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간부급 출신인 경우에는 월 200~300만원, 특별한 경우는 퇴직 후 1~2년간 500만원 받는 사람도 있다. 물론 20~30만원 정도선에서 고문료를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고문료를 받지 못하거나 고문을 맡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전 국장의 경우는 5년간 월 5000만원, 총 30억원을 받은 것으로 상식을 벗어난 특수한 경우이며, 이에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세무사들은 통상 3~4개 정도의 기업 고문을 맡아 고문료는 회사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한 전 청장과 이 전 국장이 연이어 ‘뇌물성 고문료’ 논란이 터지자 국세청 출신 퇴직자들은 기업고문을 맡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가 돼 울상을 짓고 있다.
기업들은 자칫 ‘사후뇌물’ 등 뒷말을 우려해 국세청 출신자에게 고문 맡기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세청 퇴직자는 “말 그대로 고문을 맡고 그 만큼의 수익을 가져가는 문제될 것이 없다”며 “그런데 (이 전 국장 등) 안좋은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기업체에서는 국세청 출신자들을 상당히 꺼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 동안 열심히 일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데 사실 굉장히 억울하다”며 “가끔 (국세청을 퇴직한) 동료들을 만나면 이런 불만이 팽배하다”고 토로했다.
◇국세청 ‘전관예우 단절할 것’…퇴직자 ‘한숨’
이 같은 상황에 국세청은 전관예우 관행을 단절하기 위해 지난 5월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공정사회 구현 실천결의문’를 선포했다.
우선 퇴직 공무원을 위한 현직 공무원의 고문계약 알선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국세청 공무원 행동강령(훈령)’에 신설하고, 위반 시 엄중 처벌키로 했다.
이는 국세청 직원에 대한 전관예우 논란에 적극 대응하고 공정한 국세업무를 수행하려면 철저한 자성을 통해 부적절한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이현동 청장은 “국세공무원의 엄격한 자기 절제가 공정사회 구현의 출발점”이라며 “내·외부의 알선과 청탁 개입 금지, 직무관계자와의 골프 모임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종신지우(終身之憂) 즉 내 몸 다할 때까지 종신토록 잊지 말아야 할 숙명같은 지도자의 근심이라는 말이 있다”며 “결국 관리자는 ‘종신지우’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청장의 이 같은 발언은 그 동안 알게 모르게 행해졌던 관행을 뿌리뽑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기적으로 한 전 청장의 사건 이후 나온 발표인 것도 이 같은 의미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후 이 전 국장이 또다시 고문료 논란에 휩싸여 이 청장의 발언이 머쓱하게 되기도 했다.
한편, 한 전 청장과 이 전 국장의 고액 고문료 논란이 모두 SK와 관계된 점, 국세청 스스로 전관예우 단절의 모습을 보이는 점 등 결과적으로 국세청 출신 퇴직자들은 순수한 목적의 고문조차 맡기 어려워져 이래저래 원망의 목소리만 높아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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