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장은 재화를 분배하고 부를 창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시장은 언제나 옳다”는 신념은 확신을 넘어 종교와도 같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금융위기로 신용을 잃은 것은 정부다. 공적 담론은 기업과 금융계의 탐욕, 시장의 자율기능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정부를 어떻게 바로잡고 합리적인 규제안을 도출해 낼 것인가에 집중되어 왔다.
일각에서는 “시장지상주의는 통렬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논의의 초점은 현재의 자본주의와 경제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모아질 뿐, 시장을 향한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시장가치가 교육, 환경, 가족, 건강, 정치 등 예전에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모든 영역 속으로 확대되어 돈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이 때,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왔던 마이클 샌델이 또 한번 윤리적 물음을 던진다. “과연 시장은 언제나 옳은가.”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시장지상주의의 맹점을 파헤친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로 돌아온 마이클 샌델은 “제도적인 개선 이전에 시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의 자율규제와 정부의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시장 거래가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하고 변질시킨다면 효율성이란 이름 아래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샌델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사회가 ‘시장경제’에서 ‘시장사회’로 옮겨갔다”고 진단한다. “시장이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효과적인 ‘도구’에서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어 ‘생활방식’이 됐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불평등하거나 강압에 의한 거래만 아니라면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샌델은 “성, 입학자격, 환경, 교육 등 전통적으로 비 시장 규범의 지배를 받았던 영역까지 돈으로 사고팔면 그 가치가 훼손되거나 변질된다”고 말한다.
샌델은 수많은 사례와 치밀한 논증으로 “돈으로 사고팔 때 원래의 가치와 목적이 훼손되는 재화의 경우에는 시장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 환경, 교육, 국가안보, 출산, 인권 등의 재화나 사회적 관행이 지닌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우리 대신 시장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장지상주의가 지난 수십 년간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도덕적 믿음을 공공의 장에 드러내 보이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시장에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지상주의의 참혹한 결과가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임시방편의 제도개선과 보여주기 식의 ‘상생과 공생’의 외침이 아니라, 시장과 시장의 역할에 대한 냉철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할 시기다.
샌델은 도덕적, 시민적 갱생에 대한 희망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재화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결정할 철학적 프레임을 제공한다. 결국 샌델의 표현처럼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마이클 샌델 저, 안기순 역, 1만6000원,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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