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 신협 개척자 지정환 신부 선종

김사선 / 기사승인 : 2019-04-18 15: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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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신협 설립... 신협교육 및 경영지도 앞장
당시 농촌 고리채 문제 해결, 지역경제발전에 기여
‘포크레인 철학’으로 봉사와 희생의 삶 실천...
故 지정환 신부의 1971년 3월 25일 전북신협 임원교육 모습. [사진제공=신협중앙회]
故 지정환 신부의 1971년 3월 25일 전북신협 임원교육 모습. [사진제공=신협중앙회]

[토요경제=김사선 기자] 1970년대 한국신협 발전의 주역이자, 임실치즈를 탄생시킨 지정환 신부가 13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8세이다.


지정환 신부는 벨기에 귀족출신으로 본명은‘디디에 세스테벤스(Didier Tserstevens)이다. 벨기에 루뱅대학교(Kat-olieke Universiteit Leuven)철학과와 성 알벨도 신학교를 졸업해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한국에 오기 전 런던대학 한국어과를 수료했다.


이후 1959년 12월 샘(SAM)교단 선교사로 한국에 첫 부임 후 1960년 전주 전동성당 보좌신부, 1961년 부안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신자들과 함께 가난한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간척사업에 주력했다.


지 신부는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당시 궁핍했던 농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를 위해 최초로 산양 사육을 보급하고, 벨기에서 배운 치즈생산과 기술전수를 거쳐 1967년 본격적으로 한국 최초의 임실치즈공장을 설립하며, 임실치즈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임실치즈’로 유명한 그는 한국신협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개척자이기도 하다.


이웃사랑의 구체적 실천을 중시한 지 신부는 신협운동이 최적의 해법이라 판단하고, 1969년‘임실치즈신협’을 조직하고, 신협운영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1970년 천주교 전주교구의 신협지도 신부를 자원하고, 전라남북도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신협교육, 경영지도, 감사활동 등에 나서며, 주민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낙후된 지역경제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지 신부의 노력으로 1972년 당시 전북 지역에만 41개의 신협이 활발히 운영되었다.


생전에 지 신부는 초창기 신협에 참여하게 된 동기에 대해“푼돈을 저축하고 자금이 필요할 때 저리(低利)로 편리하게 이용하는 신협이야말로, 당시 농촌의 고리채 문제 해결과 지역발전을 위한 최선의 해법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또한 지 신부는 특유의‘포크레인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그는“포크레인은 자기 높이에서 일을 시작해 아래로 파 내려간다. 자기능력으로 안되면 더 긴 포크레인을 가져와야 한다”면서“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찾고, 더 아래에 있는 어려운 일을 찾아 파고드는 투철한 봉사자의 입장을 항상 견지해야 한다.”며 일에 대한 자세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김윤식 신협중앙회장은 추모사를 통해“오늘날 한국신협이 뿌리내리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신 초창기 신협운동의 선구자”라고 말하며, “고인이 생전에 펼치신 신협운동의 숭고한 뜻을 이어 이 땅에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4월 15일 신협중앙회 박영범 관리이사를 비롯, 30여 명의 신협 임직원이 지 신부의 빈소를 찾아 생전 고인의 신협에 대한 업적과 희생을 기렸다.


한편, 지 신부의 노력에 힘입어 한국신협은 현재 전국 886조합, 618만 조합원, 자산 94조 원의 외형과 함께,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대표적인 금융협동조합으로 성장했으며 2020년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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