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이어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지난 11일(현지시간) 밀라노 증시는 급락했고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다시 올랐다. 이탈리아 통계청(ISTAT)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8%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거의 3년만에 최악인 이러한 성장률은 스페인의 마이너스 0.4%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이탈리아의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스페인에 이어 이탈리아도 결국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伊, 구제금융 신청 불가피
스페인 부실 은행들의 재자본화를 위한 1000억 유로(1250억 달러) 구제금융 계획은 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며 20%가 넘는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스페인의 경제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유럽의 정책 입안자들이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을 위협하는 경제가 취약한 국가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탈리아의 기업 경영자인 에니오 드 벨리스는 다른 이탈리아 경영자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가 경기침체로 빠지면서 경제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드 벨리스는 “세계화가 이탈리아 경제를 망쳤다”며 “지난 5년 간 나는 오로지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했고 지금의 정치인들은 가장 무능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1분기 경제성장이 교통 분야의 파업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2분기 경제성장 전망도 전혀 낫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2분기 경제성장률이 -0.6∼-0.7%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0년 만기 이탈리아 국채 발행 금리는 이날 장 초기 5.5%에서 오후에는 5.83%로 급등했다. 이에 따라 이번주 이탈리아가 계획하고 있는 두 차례의 국채 발행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채무 규모는 현재 1조9000억 유로(2조4000억 달러)를 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재정적자 비율은 이탈리아가 3.9%로 스페인의 8.5%에 비하면 훨씬 양호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탈리아의 채무 규모 자체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총 채무는 지난해 GDP의 120%에서 올해에는 123%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드 벨리스는 “나는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를 보지 않는다”며 “내가 살피는 것은 시장으로 현재 시장도 침체돼 있고 경제도 침체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인들의 열정이 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위기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탈리아 통계청은 또 이탈리아의 지난 4월 산업 주문이 전년동기 대비 9.2% 줄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경영자 협회는 정부가 성장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지우세페 디 타란토 루이스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개혁적 경제관료 출신의 몬티 총리가 경제에 활로를 불어넣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만약 이런 정책들이 지속된다면 이탈리아는 경제 위기에서 탈출하기 힘들 것”이라며 “성장이나 투자를 위한 정책이 빠져 있기 때문에 몬티 총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마와 피렌츠 등 대도시의 소매업자들은 소비자 지출 하락을 체감하고 있다. 로마의 한 의류 소매업자는 “올해는 예년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며 “관광객들도 구경만 하고 갈 정도로 아무도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피렌체 도심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은 다른 주역 주민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 그 중에서도 미국인들이 물건을 구매하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 거리에 있는 상점 3곳이 문을 닫았다”며 “우리는 경제 위기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스페인 구제금융 효과 제한적
한편 스페인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인한 기대는 지난 11일 미국 증시에서 몇 시간 안에 증발하고 투자자들은 앞으로의 사태를 더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이날 주가는 개장 초 크게 올랐다가 하루 종일 떨어졌다. 다우존스 지수는 초장에 100포인트 정도 올랐으나 142포인트나 떨어진 채 마감했다.
베어드 앤 코의 한 주식거래 디렉터는 “투자자들은 스페인의 재정 위기에서 숨을 돌리기 위해 이번에 실시한 미봉책으로는 유럽의 보다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으며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은 너무 장기적이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스페인의 경우 이번의 구제금융이 스페인의 은행들을 구제하기에 충분한 것인지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스페인 경제가 또 타격을 입을 것인지 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다우존스 지수는 올 들어 가장 큰 1일 하락폭의 하나인 147.97포인트의 하락으로 1만2411.23으로 마감했다. S&P 500 지수는 16.73포인트가 떨어져 1308.93으로, 나스닥 지수는 48.69포인트가 떨어져 2809.73으로 마쳤다. 윌리엄스 캐피탈그룹의 주식투자 담당 최고 책임자인 스티븐 칼은 “투자자들은 명확한 것을 알고 싶어한다”며 현재와 같이 미정인 상황을 좋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스페인은 9일(현지시간) 유로존 국가들의 재무장관들에 부동산 침체 등으로 위기를 맞은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최고 1000억 유로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인이 은행들의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구제금융을 요청하기로 한 것은 자국이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릴 만큼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국가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스페인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의 A에서 BBB로 세 단계나 강등해 스페인 당국을 충격을 빠뜨렸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지난 몇 주 간 스페인 부실 은행들에 대한 재자본화를 위한 구제금융은 필요하지 않다고 안이하게 대처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말을 바꿔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라호이는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 정책으로 공공부채가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스페인 부실 은행에 대한 지원이 스페인 정부에 대한 구제금융의 전주곡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스페인이 엄청난 규모의 공공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니크레딧의 수석 경제 전문가인 에릭 닐슨은 "스페인은 유럽 국가들이 제공한 구제금융으로 부실 은행들의 재자본화에 성공할 수 있다"며 "그러나 스페인은 은행, 지방정부 부채, 구조적인 취약성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경기부양은 시기상조”…추경 반대
유럽발 재정위기가 깊어지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론이 재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 전문가들은 추경에 대해 지난 11일 일제히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스페인 구제금융 신청과 관련해서는 “변동성이 줄어들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신호는 아니다”라는 관측을 내놨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동향전망팀장은 이날 “스페인 구제금융으로 불확실성이 하나 해소됐다”며 “추경을 하는 것은 시기상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역시 “스페인을 잘 막아내면 이탈리아는 괜찮을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라며 “현 상황으로는 경기 부양이 크게 필요하지 않고, 할 필요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유럽, 미국, 일본 등 주변국의 국가경제가 다 나빠서 우리나라가 추경을 해도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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