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편익 vs 중소상인 생존권..대립 첨예

토요경제 / 기사승인 : 2009-08-24 16: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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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슈퍼마켓(SSM) 논란

유통 대기업 "소비자도 좋고 지역상권도 살아난다"
동네슈퍼 "처음엔 우리가 죽고 나중엔 소비자도 손해"


▲ SSM 규제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울산 남구의 한 SSM 입점 예정 공사현장에서 울산슈퍼마켓연합회 차선열 회장과 유통연합회,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회원 등이 울산시와 중소기업청에 보다 강한 대처방안을 주문하고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Super Supermarket)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중소 상인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을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원천적 규제론에서부터 소비자 편익을 먼저 생각해 더 이상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상반된 견해들이 충돌하고 있다.
대형 업체와 중소 상인들이 상생의 길을 찾고 있지만, 이견 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특히 정부가 서민업종인 안경점, 이ㆍ미용점의 진입규제를 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이번 논란의 해결 방향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

SSM 16배 늘었다..중소상인 위기의식
대기업들이 슈퍼마켓에 처음 진출한 것은 1960년대-1970년대였고 초기에는 동네 상점들과 크게 충돌히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형마트 시장이 한계에 봉착하자 대형 유통업체들이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마켓 사이의 틈새 시장인 기업형 슈퍼마켓 사업에 뛰어들면서 기업형 슈퍼마켓과 중소 상인들의 갈등이 시작됐다.
2000년 26개였던 기업형 슈퍼마켓은 9년이 흐른 올해 7월 현재 428개로 16배 정도 늘어났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GS수퍼마켓에 이어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신세계까지 올해부터 가세해 점포 확충은 가속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기업형 슈퍼마켓이 본격적으로 여론의 관심거리가 된 데는 불경기와 대형 유통업체의 신규 진출 및 점포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 편익 vs 중소상인 생존권
기업형 슈퍼마켓을 둘러싼 대표적 논란은 소비자 편익이냐, 동네 상인의 생존권 보호냐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기업형 슈퍼마켓이 소비자의 편익을 향상 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금촌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주부 김 모씨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다. 밤 늦게까지 영업하고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신이 아는 주부 대부분이 동네 가게나 재래시장보다 대기업 슈퍼마켓을 자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중소 상인들은 동네 상인들의 생존권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인천 부개시장의 상인 김용배 씨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오고서 매출이 30-40% 줄었고 시장 상점 중 올해만 5곳 넘게 폐업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54개 기업형 슈퍼마켓 주변의 소상공인 226명을 조사한 결과, 41.2%가 "6개월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들은 자체 조사 결과를 인용, 기업형 슈퍼마켓이 생겨도 주변의 중소 슈퍼마켓 수가 늘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소 상인들은 기업형 슈퍼마켓 때문에 동네 슈퍼마켓과 정육점, 채소가게가 모두 문을 닫으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고 서로 반박하고 있다.
고용 효과, 지역 상권 등 기업형 슈퍼마켓의 경제 효과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은 상반된다.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에 관해서도 중소 상인들은 유럽 선진국들이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단체인 체인스토어협회 이승한 회장은 "정부가 직접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반박한다.

갈등 장기화·증폭 우려
중소 상인들은 중소기업 시장에 진입하려는 대기업의 사업 진출을 늦출 수 있는 사업조정 제도를 활용해 기업형 슈퍼마켓의 신규 개점을 막고 있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은 극비리에 공사를 하며 신설 점포 개점을 강행하고 있어 양측의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지난 15일 현재 접수된 기업형 슈퍼마켓 관련 사업조정 신청은 총 49건이고 23건에 대해 사업개시 일시정지 권고가 내려졌지만, 개점을 해도 좋다는 결정은 단 1건도 없다.
기업형 슈퍼마켓의 사업조정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긴 정부는 기업형 슈퍼마켓 개설 등록제를 확대하고 등록을 신청할 때 지역협력 사업계획을 제출토록 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시해 제도적 해법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형 슈퍼마켓의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 영업시간ㆍ입지.품목 제한, 지역경제 기여 의무 부과 등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관련 법안이 10여개나 제출돼 있다. 이들 법안은 정부안과 함께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지만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양측의 첨예한 갈등을 고려할 때 쉽게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업계의 자율적인 상생 방안 마련도 쉽지 않다. 중소 상인들은 기업형 슈퍼마켓의 허가제, 영업시간·판매품목 제한, 중소 상인을 위한 유통산업발전 기금 조성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형 유통업체는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적 상생협력 우선..중소상인도 경쟁력 높여라
전문가들은 우선 업계의 자율적인 상생 방안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중소 상인들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승제 한국유통과학연구소장은 "영세 상인들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우선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중소형 업체가 클 수 있도록 정부나 전문가 집단이 도와야 하고 소상인들도 공동 상표, 공동 마케팅 등으로 내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 한국유통경제연구소장은 "국가의 개입보다는 업계가 자율적으로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희 한국유통학회장은 "대형업체들이 시장 논리 뿐만 아니라 사회현실을 고려해 과도한 마케팅을 자제하고 영업시간 제한 등 자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중소상인들도 공동점포 등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이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는 영세상인과 기업형 슈퍼마켓의 게임 규칙이 공평한지를 살피고 대형 유통업체들도 사회적 책임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비자에게 이익인가
대형 유통업체들은 골목상권까지 SSM을 퍼트리는 명분으로 가격과 서비스면에서 소비자의 권익이 높아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SSM을 규제한다면 이는 소비자들이 위생적이고 안전한 상품을 쾌적한 환경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반 소비자들은 대체로 SSM이 입점하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인천 부개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김봉자(47)씨는 "재래시장은 덥고 카드도 안되는데 SSM은 한번에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자정까지 운영하니 찾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MBC 라디오프로그램 `손에 잡히는 경제'가 지난달 22일부터 이틀간 전국 20세 이상 남녀 2천9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SSM 입주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1.3%가 SSM 입주를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SSM이 재래시장이나 중소슈퍼보다 쇼핑하기 편리하다는 점은 중소상인들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SSM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결국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SSM의 물량공세 등으로 주변 중소슈퍼들이 고사하면 SSM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은근히 가격을 높이는 등 횡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의 우혜경 대외협력팀장도 "대기업 자본의 힘을 등에 업은 SSM이 상권을 장악하면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에 있어서도 별 차별성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는 동네마트가 SSM보다 저렴하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최근 전주시내에 있는 외지업체 대형마트 5곳과 지역법인 마트 2곳에서 참치통조림과 라면, 맥주 등 공산품 63종류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지역법인 마트의 물건 값이 품목당 평균 53원 더 싼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경제 활성화할까
중소상인들이 SSM 입점을 막기위해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유는 생존권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와 중랑구 등에서 SSM 입점을 막기위해 사업조정신청을 한 중동부슈퍼마켓조합의 김근우 부장은 "단순히 매출이 좀 감소한다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SSM이 입점하면 주위의 중소 슈퍼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개점한 롯데수퍼 묵동점 인근에서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나모 씨는 "과거에는 1ℓ짜리 우유가 매일 10팩 정도 나갔는데 요즘은 하루 한 두 팩밖에 못판다"면서 "평균 60만-70만원이던 하루 매상이 20만원 정도로 줄어 이대로 가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 같은 애로점이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SSM 출점이 오히려 지역 상권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2004-2009년에 유통 대기업 3곳의 SSM이 출점한 198개 지역의 상권(SSM 인근 500m이내) 변화를 분석한 결과, 새로 오픈한 중소슈퍼마켓이 53곳으로 폐점한 슈퍼(22곳)보다 훨씬 많았다고 밝혔다.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폐점한 슈퍼마켓도 대부분 식당과 꽃집, 안경점 등으로 전업하고 있다"면서 "집객력이 있는 SSM이 들어서면 주변 상권이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의 김유오 상권개발연구실장은 이처럼 중소상인들과 대형 유통업체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과 관련, "SSM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장.단기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지역상인들의 매출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형 유통업체들의 주장대로 지역 전체의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SSM 출점이 이처럼 상권을 활성화시킬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지역상권에 적잖은 충격을 주는만큼 기업 스스로가 출점을 `가려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정희 한국유통학회 회장(중앙대 교수)은 "상권이 침체돼 있거나 새로 상권이 형성되는 곳은 SSM 출점으로 활기를 띨 수 있겠지만 이미 성숙한 상권은 SSM이 들어오면 손님을 뺏긴 누군가는 문을 닫아야 한다"면서 이미 중소슈퍼들이 영업하고 있는 골목상권까지 SSM이 출점하는 것은 기업 스스로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형 유통업체들은 SSM만 동네상권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되는 점도 못마땅해 하고 있다. SSM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인터넷쇼핑몰도 중소슈퍼 등 동네상권을 잠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이에 대해 "인터넷쇼핑몰이 동네 슈퍼에서 파는 생활필수품을 다루는 비율은 극히 적다"고 반박했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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