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법상 개인 매입한 CP 손실 떠안는 것 위법
금융권, 재경부에 위법성 여부 유권해석 요구
워크아웃을 통한 회생을 길을 찾고 있는 팬택계열이 채권단이 제시한 채무조정안에 대해 채권자들로 부터 99% 이상의 동의를 얻었지만 막판 일부 금융회사들이 제기한 법리적 문제로 인해 사경(死境)을 헤메고 있다.
팬택의 사정은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이지만 주요 채권 금융회사들은 연이어 워크아웃 결정을 미루고 있다.초 워크아웃 개시 결정 일자는 지난 5일 이었지만 11일로 연기한데 이어 다시 19일로 연기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개인 채권에 대해 '우리은행과 농협이 알아서 책임지고 해결한다'는 확약서를 쓰고 워크아웃에 착수하자는 방안을 제시했고 농협은 지난 6일 열린 채권단회의에서 동의했다.
그러나 우리은행이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책임을 은행이 떠맡으면 추후 배임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산업은행도 워크아웃 실시를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우리은행이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나서자 "워크아웃을 신청한 팬택계열 입장과 채권단 입장을 각각 들어본 뒤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한발짝 물러난 상황이다.
현재 팬택계열 채무조정안에 대해 동의하지 않은 회사는 우리은행, 농협, 한국투자증권 등 3개 회사가 보유한 신탁계정의 CP 뿐이다.이처럼 사상 유례없는 99%의 워크아웃 동의서를 받는데는 팬택계열 임직원들의 눈물과 열정이 있었다.
팬택계열 한 임원은 "1000여 비협약채권자(제2금융권과 개인 채권자)들에게 채무조정 동의서를 받기 위해 500여 관리직 직원이 밤낮, 주말을 안 가리고 전국을 누볐다"며 "경남 거제도에 사는 채권자를 만나기 위해 10시간을 달려간 직원이 있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샘 설득을 한 경우는 수도 없다"며 눈물겨운 현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일부 채권은행들의 이기주의로 팬택계열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지 못하고 법정관리로 넘어갈 상황에 처해 있다.팬택계열의 회생 불능은 단순히 팬택계열 임직원들의 눈물로 끝나지 않는다.
납품업체 등 IT산업 전반의 타격이 클 뿐만 아니라 특히 2000억원과 1000억원대 채권을 보유한 새마을금고 및 신용협동조합 등 서민 금융기관들의 동반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마을금고와 신용협동조합은 상황이 악화되자 지난 11일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앞에서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장외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신협 관계자는 "전국 87개 단위 신협 및 288개 새마을금고가 공멸을 막자는 취지에서 손실을 감수하고 채무조정안에 대해 동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등 1금융권이 규정을 들먹이며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워크아웃 좌초 위기까지 처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편 채권은행들의 엇갈린 이해 관계로 팬택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여부가 법리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다.
채권은행들은 팬택의 워크아웃 발효를 위해 은행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팬택 기업어음(CP)을 사들인 개인들의 손실을 떠안는 것이 현행법과 감독 규정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며 금융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탄원서가 제출되면 재경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할 방침이어서 공은 결국 재경부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산업은행 관계자는“금감원과 추후 협의를 거쳐 상황에 진전이 없을 경우 채권은행 공동으로 사태 해결을 위한 건의문을 감독당국 등 관련 기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은행과 농협 등은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책임을 은행이 떠맡는 것은 잘못된 선례를 남길 소지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두 은행 특정금전신탁 가입자들의 팬택 CP 보유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행 신탁법 31조 및 신탁업법 12조는 은행 등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고유재산으로 하거나 이에 관한 권리를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몇 가지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팬택건이 이 예외 조항에 해당하느냐 여부다.
금감원 신용감독국 관계자는“예외조항인 12조 2항을 보면 팬택 특정금전신탁의 경우 '금전 신탁'이고 '운용에 의해 취득한 재산'인 것은 맞지만, 팬택 CP의 적정 시세가 있는지 또 '수익자에 대해 부담하는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인지' 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그러나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른 만큼 채권은행단의 요구를 받아들일 명분이 약하다며 최대한 채권은행들의 자율 합의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유재수 재경부 은행제도과장은“유권해석 요청이 들어오면 팬택이 시급한 사안인 만큼 법률 자문 등을 거쳐 가능한 한 빨리 결론을 낼 계획이지만 아직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 관계자는 “워크아웃을 추진하는 다른 기업들 역시 특정금전신탁 손실 배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아 재경부의 유권해석 결과는 향후 기업 구조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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