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노원병이 최대 격전지로 급부상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직접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80일 가까이 미국에 체류한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구상을 매듭짓고 10일께 귀국한다. 4월 재보궐 선거 준비를 위해서다.
대선에서 정치적 고배를 마신 안 전 후보가 짧은 기간 동안의 ‘와신상담’끝에 내린 첫 결정이 바로 노원병 보궐선거다.
이 때문에 다소 밋밋할 수 있었던 이번 재보궐선거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서울 노원병이 이번 재보궐 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 安 직접 출마… 정계 파장 ‘일파만파’
안철수 전 후보가 이번 4월 재보궐선거 직접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여야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재보선은 새누리당에게는 박근혜 정부의 첫 평가로, 민주통합당은 새 지도부가 리더십 확보를 위해, 안 전 후보측에게는 정치 세력화에 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진검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새누리당은 다소 여유로운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던 의석에서 재보궐선거가 실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는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특히 야권 단일화가 무산되면 승산도 꽤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안 전 후보의 등장으로 다소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분위기다. 김현 대변인이 “안 전 후보가 야권단일화와 대선을 함께 치른 분으로 대선 후 정치를 계속한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본다”며 말을 아꼈지만 내부적으로는 대선평가나 당혁신 방안 마련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치판 전체를 흔들 변수인 안 전 후보의 재등장이 민주당에 가져올 파급에 상당히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7일 서울 노원병 4ㆍ24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도 야권후보 간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이 후보 공천 방침을 공언함으로써 노원병에 직접 출마하겠다고 밝힌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 단일화 여부를 놓고 정치권 안팎의 관심이 고조될 전망이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지금 재보궐선거 모든 지역의 후보를 내고자 하며 관련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당 상황을 전했다.
이어 “원내 제1야당으로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후보를 통해 국민들에게 당의 목소리를 내고 혁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민주당의 당연한 의무이고 권리”라고 공천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노원병 선거구에 후보를 낼 것인지와 관련, 당내에서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한편에선 안 전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대선후보를 양보한 점에서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 반면, 다른 한편에선 안 전 후보에게 모든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후보도 내지 않고 야권연대의 가능성마저 포기하는 것은 추후 야권분열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후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 것.
민주당은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에 관한 입장도 밝혔다.
박 대변인은 “민주당은 선거승리를 목표로 하는 허겁지겁 야권연대가 아닌 미래비전 야권연대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발언으로 후보단일화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야권 전체 질서 재편에 대한 공동의 논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정치적 결정도 국민들에게는 야합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안철수 대항마, 누가 나오나
안철수 전 후보가 본격 출마 선언에 나섬에 따라, 정계에서는 ‘안철수 대항마’로 누가 나설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새누리당 인사들 중에서는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새누리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안 전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힌 직후인 지난 3일, 이 전 비대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노원병 재보선에 나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이 전 비대위원의 ‘대(對)안철수 경쟁력’ 여론조사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안철수의 새 정치’에 ‘이준석의 젊은 정치’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준석 출마설’과 관련, 당사자인 이 전 비대위원은 “노원구에서 어린 시절을 대부분 보냈기 때문에 당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여기저기서 연락은 많이 오지만 아직 큰 고민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비대위원은 2011년 말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격 발탁한 인물로, ‘박근혜 키즈(kids)’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초 비대위 활동이 끝난 후에도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전 비대위원이 출마할 경우, 지난해 4ㆍ11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문재인ㆍ손수조 후보가 맞붙었을 때와 비슷한 대결 구도가 된다. ‘대선 후보급’과 ‘20대 신인 정치인’의 대결이란 것이 공통점이다. 이 전 비대위원과 동갑인 손 전 후보도 당시 ‘문재인 대항마’로 나서, 44%의 득표율을 얻은 바 있다.
경찰청장 출신의 허준영 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도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허 전 사장은 지난해 4ㆍ11 총선에서 노원병에 출마한 바 있다. 그는 39.6%의 득표율을 얻어 야권 단일후보였던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57.2%)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허 전 청장은 총선 후에도 노원병 당협위원장을 맡아 표심을 다져왔다. 때문에 당 내부에선 허 전 청장의 경쟁력이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정욱 전 의원도 후보로 거론된다. 홍 전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43.1%의 지지를 얻어, 40.0%의 노 대표를 누르고 당선된 바 있다. 야권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당내에선 홍 전 의원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 외에 안대희 전 대법관, 함승희 변호사 등도 새누리당 노원병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에선 이동섭 노원병 지역위원장이 출마의 뜻을 강하게 밝히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4ㆍ11 총선에서 노 대표에게 야권 단일후보를 양보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에는 10년 넘게 지역위원장을 맡아 주민과 애환을 함께 한 내가 있다. 노원 주민들은 철새 정치인 대신 주민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나를 원한다”는 말로 강력한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이동섭 위원장 외에 자천타천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로는 △정동영 상임고문 △임종석 전 의원 △박용진 대변인 △김성환 노원구청장 등이 있다.
이번 재보선과 관련, 진보정당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로 갈라섰던 양당이 노원병에서 재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진보정의당은 “노회찬 공동대표의 경제민주화와 사법개혁의 노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워 노원병 수복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 고 김근태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김 고문의 지역구인 도봉갑에서 당선된 점에 착안해 노 공동대표의 부인인 김지선 씨를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씨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노 대표보다 먼저 노동운동에 몸을 담았으며 당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정의당의 한 당직자는 “당내에선 김씨를 후보로 결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빠른 시간 내에 이를 공식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 안팎에서 지역구 세습 논란이 있어 최종 결정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당은 야권 단일화 가능성도 열어놓은 상태다.
통합진보당은 분당으로 수세에 몰린 당을 정비할 기회를 노원병 선거에서 찾는다는 전략아래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노원병에서 후보를 당선시켜 서울에 교두보를 마련함으로써 다가오는 10월 재보궐선거까지 기세를 이어가 추가 의석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가 출마를 고사한 가운데 유선희 최고위원, 정태흥 서울시당 위원장, 조현실 보좌관(김재연 의원실) 등이 노원병 보궐선거 후보로 추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 예상 깬 직접 출마… 이유는?
예상을 뒤엎고, 안 전 후보가 직접 출마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정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금태섭 변호사 등 측근들을 내보내 신당 창당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뒤 10월 재보궐선거나 내년 6월 지방선거를 통해 전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안 전 후보는 이 예상을 깨버렸다.
이번 결정은 “정치인으로 살겠다”, “국회의원을 한번 하고 이 길을 걸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등 지난 대선 당시 발언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안 전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 등 거물 정치인들이 환경이 좋지 않음에도 승부를 걸어야할 때는 과감하게 나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안 전 후보 역시 정치 환경이 좋지만은 않은 이 시점에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보궐선거란 투표율도 높지 않고 조직력이 좌우하는 선거라 대선 때 큰 지지를 얻었던 안 전 후보라 할지라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소속인 안 전 후보가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정당들의 조직력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이 때문에 안철수 사단 내부에서도 향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을 살핀 뒤 기회를 노리자는 신중론이 제기된 바 있다. 안 전 후보의 한 측근은 “여야가 잘하고 새로운 정부도 잘 했으면 우리도 조용히 (정계진출을) 준비하면 좋은데 양쪽이 모두 헤매면서 국민들의 요구 수준이 갑작스레 높아져 버렸다”며 노원병 출마 부담감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제반 환경이 안 전 후보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평도 만만찮다.
박근혜 대통령은 잇따른 인선 실패와 정부 지각 출범 등으로 임기 초반임을 감안할 때 이례적으로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민주당 역시 내부 당권 경쟁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잇단 실책과 민주당의 지지부진한 움직임이 안 전 후보에게 침투할 공간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 安 등장… 정치계 판세 어떻게 바뀔까
안 전 후보가 노원병 출마를 공언하면서 정치권은 한동안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안 그래도 정치권 내 관심사였던 노원병 보궐선거는 안 전 후보의 출마 발표로 단숨에 전국적 관심을 모으는 선거가 돼버렸다.
우선 진보정의당 입장에서는 안 전 후보와 단일화 협상 등 과정에서 정치권 내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은 안 전 후보의 등장으로 야권을 분열시킬 기회를 갖게됐다고 자체 분석하고 있다. 안 전 후보를 지지하는 민주당 내 의원들의 탈당을 부추겨 새누리당이 야권 분열을 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5ㆍ4전당대회를 통한 컨벤션 효과를 노리던 민주당은 안 전 후보의 조기 등장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5ㆍ4전당대회에서 등장할 차기 지도부보다 안 전 후보에게 더 시선이 쏠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후보에게는 이번 출마 선언이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가 될 전망이다. 당선에 성공할 경우, 민주당과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궐선거 당선 후 기세를 몰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압도하는 성적을 거둬야 정치인으로서 기반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지금의 민주당으론 내년 지방선거 때 전남ㆍ전북ㆍ광주 등 이외 지역에서는 당선을 못시킨다. 안철수가 민주당과 승부해 경남ㆍ제주ㆍ강원까지 야당세력을 확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이를 염두에 뒀다면 안철수는 민주당을 무너뜨려야한다. 민주당을 안 무너뜨리면 안철수는 존재감 없는 초선의원으로 남을 뿐”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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