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성이 왕을 세우는 것은 자신들이 이롭기 위한 것이다 (史記 周本紀)
무왕의 선조 고공단보가 왕권을 지키기 위해 백성을 전쟁에 내몰 수는 없다면서
하나라 걸왕(桀王)이 백성을 배반할 때 세상 민심은 덕망 높은 성탕(成湯)에게로 향했듯, 은나라 주왕(紂王)의 학정(虐政)에 지친 민심은 주(周)의 제후 서백(西伯)에게로 향했다.
충신을 잃은 폭군 곁에는 아첨배들만 남게 마련이다. 그 중 한 사람이 서백을 경계하며 밀고하자 주왕은 그를 잡아 가두었다.
그러자 서백의 신하 굉요 등이 구명에 나섰다. 먼저 주왕을 설득할 수 있는 엄청난 선물을 준비한 뒤 주왕의 간신 비중에게 뇌물을 써서 중재가 이루어졌다. 아름다운 처녀들과 명마, 그리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 9승에다 각종 특산물까지 진상품으로 얹어서 바치니 선물은 즉시 효과를 나타냈다. 주왕은 “한가지만으로도 충성심을 알 수가 있는데 뭘 이렇게 많은 선물까지 가져왔느냐”면서 즉시 서백을 풀어주고, 왕의 표식인 활과 도끼를 하사하여 주변 제후국들을 정벌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공을 내게 고자질한 자는 바로 승후 호였소”라고 귀띔할 만큼 주왕은 서백에게 신뢰를 나타냈다. 서백은 내친걸음에 자기 영지의 일부까지 떼어 바치면서 포격형을 없애달라고 청원했다. 주왕은 그것도 들어주었다.
천자의 오해를 푸는 것과 동시에 삼공(三公)의 권한까지 한손에 쥐게 된 서백은 더욱 자신을 낮추고 조심하면서 제후와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었다. 제후들은 그에게로 모여들어 혼란한 나라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나누었고, 백성들은 서백이 언제쯤이나 주를 심판할 것인가 기대가 무르익어갔다. 혁명의 명분과 기반이 쌓여간 것이다.
서백 창(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제후국 주(周)의 공자였는데, 일찍이 요 임금을 받들어 농사를 관장하던 후직(后稷) 기(棄)의 후손이다. 기는 그 공으로 요임금으로부터 희(姬)라는 성(姓)을 하사받았다. 이때부터 서백의 선조들은 희씨가 되었다.
주나라가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거나 서백 부자(父子)의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었다. 서백에게는 우선 조상 대대로 쌓아온 선덕(先德)의 힘이 있었다.
요의 시대를 지나 하대(夏代)를 거치는 사이에 후직의 후손들은 서북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곳은 융적(戎狄)의 땅과 인접한 곳이었다. 기의 12대손 고공단보(古公亶父)는 빈(豳)이라는 곳을 도읍삼아 농사를 지었는데, 신중하고 온화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인접한 융적의 침범이 늘 골칫거리였다. 융적들은 때때로 공격하여 재물을 요구했다. 단보는 그 때마다 순순히 재물을 내주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중에는 땅과 백성까지 빼앗으려고 하였다. 빈의 백성들은 분개하여 더 이상 참거나 내주지 말고 융적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공단보는 만류하였다.
“백성이 군주를 옹립하는 것은 스스로 이롭기 위해서이고, 융적이 공격해 오는 것은 이 땅과 백성을 차지하기 위해서다(有民立君 將以利之 今戎狄所為攻戰 以吾地與民). 그런데 백성들이야 나에게 속하든 융적에게 속하든 무엇이 다르겠는가. 백성이 나를 위해 싸우겠다는 것은 내게 그들의 아버지나 아들을 죽여서 왕위를 지키라는 말과 같으니 나는 차마 그럴 수 없다(民欲以我故戰, 殺人父子而君之, 予不忍為).”
고공단보는 땅과 백성을 남겨두고 스스로 빈을 떠나 기산(岐山)이라는 곳에 정착했다. 그러자 빈의 백성들은 늙은이와 어린이까지 데리고 기산으로 옮겨왔다. 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나라 사람들까지 어진 임금을 찾아 모여드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공단보는 성곽과 가옥을 새로 짓고 풍습을 개량하며 邑을 나누고 관직을 정하니 점차 나라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고공단보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아들 계력이 아들 창을 낳았을 때 붉은 새가 단서(丹書)를 물고 방안에 날아들었다. 할아버지 고공단보는 “나의 시대에 큰 사업을 일으킬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 했는데, 바로 창이겠구나”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첫째와 둘째 아들은 스스로 나라를 떠나 남쪽으로 가서 머리를 깎고 오월(吳越)의 추장이 되었다. 고공단보의 왕위는 자연스럽게 계력에게 계승되고 다시 계력의 아들 창에게로 이어졌다. 그가 바로 서백(西伯)이다.
- 이야기 Plus
지금이야 세계 어느 땅이나 어느 나라의 국경선 안에 포함되어 이 나라가 아니면 저 나라일 수밖에 없지만, 이 시절은 아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땅이 많았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처럼 왕의 권력이 미치는 범위까지가 나라였고 그 범위 밖의 땅은 아직 신의 것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선정을 베푸는 왕이 있으면 찾아가서 그의 백성이 되었고, 만일 왕이 포학하면 그 곳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거나 나라 밖의 야인(野人)이 되기도 했다.
어떤 왕들은 조금만 힘이 남아돌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곧 정복전쟁에 나서거나 사치향락을 즐기기에 바쁜데, 고공단보는 오직 어버이 같은 마음으로 백성을 아끼고 돌보았다. 그러자 백성이 편안하고 살림이 풍족해져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와 백성이 되었고, 그로 인하여 주(周)는 점차 강력한 제후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융적들이 나라를 빼앗으려 하자 백성들은 맞서 싸우자고 했다. 고공단보는 ‘백성의 목숨으로 왕권을 지킬 순 없다’며 땅과 백성을 양보하고 기산으로 옮겨갔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두 기산으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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