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떠난 고시촌 '고사 위기'

유상석 / 기사승인 : 2013-05-06 10: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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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신림동 고시촌의 앞날은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한 때 각지의 법학도들이 모여 청운의 꿈을 품고 학업에 매진하던 서울 관악구 대학동ㆍ서림동 일대의 ‘신림동 고시촌’. 불과 2~3여 년 전까지만 해도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로 북적이던 이곳의 현재 모습은 썰렁하기만 하다. 오는 2014년엔 외무고시, 2017년엔 사법시험 제도의 폐지가 예정되면서 고시생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고시생이 떠난 ‘고시촌’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에 지역 임대업자들과 부동산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저렴한 주거공간을 찾는 대학생과 직장인이 빈자리를 채울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교통은 불편하고 방값이 특별히 저렴하지도 않은 이곳의 빈자리가 쉽게 채워지진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심지어 이 지역의 ‘슬럼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새어나오고 있다.


◇ 사법시험ㆍ외무고시 폐지… 고시생 급감
지난 2012년 12월 31일, 신림동 고시촌 일대 최대 규모 서점 ‘광장서적’이 폐업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1978년 문을 연 이 서점은 80년대 이른바 ‘빨간책’, ‘운동권서적’ 등으로 불리던 책들을 취급하는 사회과학서점으로 유명세를 떨친 후, 90년대부터는 고시수험서를 판매하면서 주변 고시촌정보가 한데 모이는 공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전총리가 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동생이 대신 맡아 운영한 이 서점은 한 때 두 건물에 걸쳐 서점, 문구점, 음반점, 화방 등을 운영하는 대형 매장의 모습을 갖추기도 했으나, 결국 1억6000만원 상당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이에 앞서 지난 2011년엔 신림동 유명 고시서점인 ‘상원서점’의 오프라인 매장도 문을 닫았다. 상원서점은 신림동 고시서점 중 중간 크기의 규모였지만, 학원가가 밀집한 곳에 위치했고, 책 표지를 포장해주는 서비스를 일찍부터 시작한 덕에 고시생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다. 한 때 “상원서점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고시생이 빈번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자랑했지만, 고시생 수가 줄어들면서 경영난이 겹쳐 결국 오프라인 매장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서점은 현재 인터넷 매장만 운영하고 있다.
두 유명 고시서점의 폐점은 고시생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신림동 고시촌의 현재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주자와 유동인구 감소로 이 지역 부동산경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시생 신원진(31) 씨는 “광장서적은 그간 책값의 10%를 쿠폰으로 제공했는데, 이 쿠폰으로 책은 물론 문구류까지 구입이 가능해 유용하게 썼던 기억이 있다”며 “고시생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고시촌의 분위기는 급격히 썰렁해졌다”고 말했다.


◇ 급격히 위축되는 상권, ‘슬럼화’ 우려도
‘신림동’ 지역 중 ‘고시촌’으로 분류되는 곳은 대학동(옛 신림9동)과 서림동(옛 신림2동) 일대다. 이 두 곳은 서울대와 인접한 곳으로 대규모 하숙집, 원룸, 고시원, 고시전문서점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녹두거리’가 유명한데 80년대 동동주를 팔아 가난한 학생들에게 인기를 누린 ‘녹두집’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고시촌의 범위를 논할 때, 좁게는 옛 상원서적(현재 신지약국이 입점함) 건물을 중심으로 시작해 3~4블록을 일컫지만 넓게는 대학동과 서림동 구간을 아울러 칭하기도 한다.

신림동 고시촌은 2009년 로스쿨제도가 시행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5만명에 달했던 이 지역 고시생 인구는 지난해 3만5000명으로 줄더니 올해는 2만5000명까지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500개 넘는 고시원 건물의 공실률은 평균 30∼40%고 심한 고시원은 방 2개 중 1개가 비어있는 상태다. 일부 고시원에는 외국인 노동자와 저소득층이 유입됐다. 게다가 지역 내 퇴폐유흥업소가 늘면서 취객 등 치안이 악화되는 문제까지 겹쳐 ‘슬럼화’를 걱정하고 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신림동 고시촌이 자리한 대학동의 인구는 △2009년 2만3420명 △2010년 2만3455명 △2011년 2만3354명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인구가 빠져나가는 만큼 주변 상권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대학동에서 고시식당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박리다매로 장사했기에, 싼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고도 영업 유지가 가능했는데, 고시생들이 많이 빠져나간 탓에 수지가 맞지 않아 어렵다”며 “심지어 한 달 치 식비를 미리 받고 야반도주하는 고시식당도 최근 들어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대학동에서 고시독서실과 고시원을 함께 운영하는 업주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입실하려면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했던 인기 독서실이었는데 현재 정원의 절반 정도만 겨우 채워진 상태”라며 “각종 세금과 전기료 등을 감당하려면 정원의 80% 정도는 차야 유지가 되는데 경영상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토로했다.

고시촌의 명물인 고시원과 원룸도 마찬가지였다. 서림동에서 원룸을 운영하는 정을숙(65ㆍ女) 씨는 “2~3년 전만 해도 서울대학교 재학생들과 고시생들이 많이 입주해 빈 방이 없었는데, 지금은 반 이상이 비어있는 상태”라며 “인기 없는 1층 방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PC방을 차렸지만, 청년 인구가 줄어든 탓에 이마저 시원찮다”고 하소연했다.

서림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매매든 전ㆍ월세든 거래 자체가 사라진 탓에, 아예 문을 닫는 중개업소가 속출하고 있다”며 “보증금과 월세를 대폭 낮춰도 찾는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 고시생 떠난 자리 직장인이 채울까?
신림동 고시촌의 원룸ㆍ고시원 임대업주들과 공인중개사들은 “고시생이 떠난 빈자리에 직장인을 유인해야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강남 등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수요를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대학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2~3년 전부터 값싼 원룸을 구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며 “이들을 잡고자 고시원을 원룸으로 개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지어 고시원으로 인허가를 받아놓고 주방시설과 화장실을 갖춰 불법 개조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관악구 내 고시원 수는 2009년 652개에서 2011년말 942개로 급증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바람에 공실률이 20~30%에 달하다보니 원룸주인끼리 경쟁이 과열돼 집값은 더 내려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노력이 실제로 ‘빈자리 채우기’라는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하철역에서 멀다는 점, 이를 감안할 때 가격적인 이점이 없다는 점, 외국인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유입으로 슬럼화가 우려된다는 점 등이 이유다.

강남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양태혁(33ㆍ가명) 씨는 “신림동 원룸이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저렴한 집은 그 만큼 시설이 낙후됐거나, 위치가 나쁘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갈아타고도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야할 정도”라며 “위치가 좋은 집은 지하철역 인근의 집과 크게 가격 차이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돈을 조금 더 주고 지하철과 인접한 집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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