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백이숙제는 과연 성인(聖人)일까

정해용 / 기사승인 : 2013-05-10 20: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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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충절(忠節)에 대하여

舉世混濁,清士乃見 거세혼탁 청사내견
세상이 혼탁해진 뒤에야 청렴한 사람이 드러난다 (<論語> 子罕편)
공자(公子)가 지조 있고 충직한 선비들의 정신을 기리면서 한 말



은(殷)나라는 주지육림(酒池肉林) 주(紂)왕의 몰락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다. 중국은 주(周)나라의 것이 되었다. 건국군주는 무왕 희발이며, 그의 아버지 서백(희창)은 문왕(文王)에 추존되었다.

세상이 뒤바뀌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새 체제에 적응하여 살게 마련이다. 발 빠르게 새 질서에 순응하여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태반이지만, 더러는 구체제에 대한 정리(情理)를 버리지 못해 은둔하거나 달아나기도 한다. 운명적으로 떠나야 하는 사람도 있고 죽어야 하는 사람도 생긴다.

은나라는 본래 상(商)이라고도 하였으므로 상나라 사람을 가리켜 상인(商人)이라 했다. 은이 멸망한 뒤 그 제국에 복속해있던 모든 나라들이 주(周) 제국을 섬기게 되었는데, 본래부터 상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통치세력으로서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것이므로 생업(生業)이 곤란하게 되었다. 농사나 공업 같은 기술은 없었고 남은 것은 모아놓은 세간뿐이었다. 이들은 그것을 내다 팔아 생계를 잇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상나라 사람들은 흩어져 재화와 기물을 사다 되팔아 이익을 남기는 일을 생업으로 삼게 되었다. 상나라 사람을 의미하는 상인이라는 말이 굳어져 오늘까지 장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는 정리를 중시하여 절개를 지킨 사람들이었다. 본래 고죽(孤竹)이라 하는 작은 나라의 공자(公子)들이었는데, 성정이 어질고 깨끗한 사람들이라 세상이 성인이라 부르며 존중하였다. 그들의 아버지는 본래 동생인 숙제를 더 신임하여 공의 지위를 물려주고자 했다. 형제간의 서열 명칭은 보통 ‘백중숙계’(伯-仲-叔-季)의 순서로 매겨지는 것이므로 백이는 맏아들, 숙제는 셋째아들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마땅히 맏아들이 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양하였다. 하지만 형 백이도 정치에는 취미가 없었던지, 아버지의 유언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궁을 나가버렸다. 숙제도 지지 않고 궁을 나가버렸으므로 위는 자연히 둘째에게로 돌아갔다.

시대가 어느 때인가. 은나라 왕실은 황음무도한 주왕(紂王)이 정권을 쥐고 주지육림 속에서 사치향락을 구가할 때다. 그들의 향락을 위하여 백성들은 고혈을 빨리고 있었다. 중신과 제후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무시할 뿐 아니라 살인을 밥 먹듯 하는 정치 아래서 세상은 또 얼마나 흉흉했겠는가. 조만간 왕이 망하든지 백성들이 죽든지 양단간 결판이 날 것 같은 불안하고 불온한 세상이었다.

이러한 때에 자기 백성들을 버려둔 두 사람 백이숙제는 주왕에게로 갔다가 실망하고 ‘듣자 하니 西伯이 노인들을 공경하고 잘 모신다는 말이 있는지라’ 서백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때는 이미 서백이 죽고 아들 희발(姬發)이 즉위한 뒤였다.

희발이 주왕을 치기 위해 출병할 때 곁에 있던 모든 사람이 참전해야 했으나 두 사람은 거절하여 말하였다. “아버지 서백이 돌아가셨는데 위패를 모시고 전쟁을 일으킴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며, 신하된 자로서 천자를 시해하려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仁)도 의(義)도 아닙니다.” 군사들이 두 사람을 죽이려 하자 곁에 있던 사상보(師尙父) 강태공이 만류하였다. 두 사람은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가 곧 은이 멸망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不事二君)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


- 이야기 Plus
조선 초기 수양대군이 형 문종의 아들 단종을 폐위하고 스스로 왕위를 찬탈하려 할 때, 선왕과의 의리를 지켜 죽음으로 반대했던 사육신 성삼문(成三問)의 시조는 널리 잘 알려져 있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 한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시조속의 ‘이제’가 바로 백이숙제다.

백이숙제는 후대에 충절의 상징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대체로 의인이며 성인으로 평했다. 사마천은 ‘추운 계절이 된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논어> 子罕편)’는 공자의 말을 곁들여 ‘청렴한 사람은 세월이 혼탁해진 뒤에 드러난다(舉世混濁 清士乃見)’고 평했다.

그러나 달리 볼 수도 있다. 첫째로 백이숙제는 백성을 돌봐야 할 후자(候者)로서 자기 백성들을 난세에 방치해 두고 왕권을 서로 사양하였으니 이는 겸양 같으나 방임(放任)이다. 둘째로 부패한 임금을 목숨 걸고 바로잡지도 못하고 피했으며, 셋째로 그러면서 부패한 임금을 심판하자는 시대의 대의(大義) 또한 거절하였다. 충성심과 인의(仁義)를 명분으로 하였으나 실은 옹졸함이다. 맹자는 백이와 노나라 유하혜를 비교하여 말하기를 ‘백이는 마음이 좁고 유하혜는 공경스럽지 못하다. 군자는 이를 따르지 않는다(伯夷隘 柳下惠不恭. 隘與不恭 君子不由也)’고 하였다.

백이숙제가 수양산에 머물고 있을 때 주(周)의 관리가 된 왕지창이란 사람이 고죽군을 지나다가 ‘주나라의 녹을 먹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지금 주의 땅에서 난 고사리로 연명한다는 것은 옳은가’라고 비웃었다. 백이숙제는 그 말을 전해 듣고 고사리조차 먹기를 거부하니 그대로 굶어죽었다고 한다. 그도 고지식한 일이다. 새로운 권력이 탄생했다 해서 산이나 강이나 백성이 그 권력의 것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본래 하늘의 것인데, 단지 관리권한을 위임받는 정치권력이 종종 그것이 온전히 제 것이라도 되는 양 오만을 부린다.

대저 절개라 하는 것은 아녀자나 소인배라 할지라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이나 군자의 덕이 소인의 덕과 같다면 무엇으로 그들이 성인임을 알 수 있겠는가.


난세에 자기 백성을 버려두고 왕권을 사양한 것은 겸양 아닌 방임이며, 부패한 임금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심판의 대의를 따르지도 않은 것은 충성이나 인의가 아닌 회피일 뿐이다. 성인군자의 덕이 소인의 덕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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