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관련된 의혹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수사가 진행돼 온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과 별개로 황보건설에 금품과 향응을 받고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그동안 ‘MB최측근’으로 분류돼 온 원 전 국장이기에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황보건설 로비 의혹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전 정권인 MB시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측근이었던 원 전 원장에게 로비를 했다는 점에서 이 전 대통령과도 어느정도 연결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 97년 설립...MB시절 ‘스폰서’역할로 급성장
지난 6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여환섭)는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사기) 등으로 황보건설 대표 황보연(62세)씨를 구속했다.
황보건설은 1977년 설립된 회사로 이명박 정부 시절 급성장한 중견건설업체다. 2008년 말 자본금 19억원, 매출액 63억원으로 도급순위 490위권이었지만 2009년 296억원, 2010년 408억원, 2011년 473억원을 기록했다. 시공능력평가순위는 2009년 970위에서 2012년 380위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 알짜 공사 수주 과정에서 특혜 의혹
황보건설은 급성장을 이룩한 MB정권 시절 각종 거대 관급 공사를 수주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에는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이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사업에 참여한 일이다. 당시 총 400억원 규모로 진행되는 사업의 공동시공사인 두산중공업과 대림산업의 컨소시엄에 참가하지 못했음에도 하도급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따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황보건설이 비협력사임에도 공사를 수주한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한국남부발전 기술본부장이었던 이상호 한국남부발전 사장은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받고 두산중공업과 대림산업 측에게 “청와대의 뜻”이라며 황보건설을 하도급 업체로 선정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하도급업체 선정기준도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의 선정기준은 협력업체 중 최저가 입찰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이었으나, 비협력사인 황보건설이 낙찰되도록 도와주기 위해 적격심사방식으로 바꿨다는 것. 이 과정에서도 원 전 원장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일부 드러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5~26일 이 사장 등 한국남부발전 임원들을 소환해 입찰 경위 등을 조사했다. 한국남부발전 측은 “이 사장 등은 입찰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황보건설은 이 외에도 여러 공사 과정에서 의혹을 받고 있다. 현대건설의 협력사였던 황보건설은 현대 측이 수주를 받아 진행 중이던 행정도시-정안IC 도로건설공사 중 일부와 여수공단에너지 건설공사 중 일부를 각각 252억3천여만 원과 110억7천여만 원에 넘겨받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건설은 또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삼척생산기지 호안축조 및 부지조성공사와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이 발주한 영흥화력발전소 석고작업 중 일부 역시 각각 189억2천여만 원과 103억2천여만 원에 황보건설에 하청을 줬다.
황보건설은 또 지난 2011년에는 금호건설과 함께 컴소시엄을 구성해 277억원 상당의 캄보디아 프놈펜 56번 도로공사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했다.
당시 금호건설은 70%의 지분을, 황보건설은 나머지 30%의 지분을 가져갔다. 대형건설사인 금호건설이 협력업체인 황보건설에 적지 않은 비율로 지분을 나눠주고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 건설업계의 평이다.
◇ 정·관계 인사에 뇌물로비, 기획부도 의혹까지
검찰은 황보건설의 황 대표가 정·관·재계 및 언론계 인사 300여명에게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낸 내역이 기록된 ‘선물 리스트’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선물 리스트’에는 주요 공기업·건설업체 대표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는 로비와 더불어 거액의 비자금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자금 조성 수법은 하청업체를 통해 이뤄졌다. 황보건설은 하청업체에 통장을 만들어서 달라고 한 뒤, 이 통장으로 하청업체에 줄 공사대금을 송금한 것처럼 꾸며 돈을 빼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같은 수법으로 황 대표가 100억원대에 달하는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황보건설과 거래 하청업체 간 자금흐름을 추적 중이다. 검찰은 이 돈의 일부가 정·관계 로비에 사용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기획부도 의혹도 받고 있다. 황보건설은 MB정권 말기인 지난해 5월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부도를 냈다. 그러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던 건설사의 갑작스런 부도 선언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황보건설은 2008년 말 자본금 19억원, 매출액 63억원, 도급순위 490위대 중소 건설사였지만 이듬해 2월 원세훈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매출액이 207억원, 395억원, 388억원으로 급증했다.
업계에서도 상승세를 보이던 건설회사의 부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명목상 ‘부실에 의한 부도’라고 하는데, 실적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 뒤, “최근 불거지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빼낸 뒤 도망가는 ‘먹튀’가 아니었나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 ‘스폰서’ 역할 하며 사업 늘렸나
검찰은 황보건설이 MB정권 시절 급성장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황보건설의 이와 같은 급속 성장의 바탕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관 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황보건설의 황 대표는 이 전 대통령과 1995년 고려대 노동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 1기를 함께 수료했다. 원 전 원장은 서울시 재직 시절 황 대표가 소위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비 대상이 어디까지였는지도 눈여겨 볼 대상이다. 검찰은 지난 5일 황 대표와 함께 김중겸 전 한국전력·현대건설 사장도 함께 소환했다. 김 전 사장은 4대강 담합뿐만 아니라 황 대표와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황 대표의 로비와 관련해 김 전 대표가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기자에게 “파악된 바로는 황 대표가 원 전 원장과 김 전 사장 사이에서의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부임한 시점이 2010년인데, 황보건설은 이 때부터 사업실적이 늘어났다. 현대건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황보건설은 2010년 현대건설의 매출비중이 38%에 달했다. 이 시기는 김 전 사장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직하던 때다.
결과적으로 원세훈-황보연-김중겸으로 이어지는 ‘3각 커넥션’이라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현재 검찰에서도 비슷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런 커넥션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분담돼 있는데, 이에 대해 파악되면 밑그림이 다 그려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원세훈 옭아매기 위한 방편?
황보건설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원 전 원장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의혹’을 통해 원 전 원장의 사법처리하려 했던 검찰의 행보가 주춤하자, ‘확실한 건’으로 원 전 원장을 처리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개입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은 지난 7일까지도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지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인터넷 댓글작업을 통한 정치 개입 활동을 지시한 것과 관련해 그동안 미진했던 증거들을 보강하면서 최종 법리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당초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팀이 지난 5일쯤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7일까지도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부적 의견 통일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혐의를 명백히 입증할 만한 증거가 얼마나 확보됐는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교안 법무장관의 ‘수사개입’ 논란도 상황을 교착시키는 데 한 몫 했다. 당초 특별수사팀은 대검찰청에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필요하다는 중간보고를 했으나 채동욱 검찰총장으로부터 보고받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선거법 위반 혐의 법리 검토를 다시 해볼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원 전 원장에 대한 처리가 애매한 상황으로 치닫자, 검찰은 수사의 방향을 틀어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의혹을 계기로 어느 선까지 이름이 나올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원 전 원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과연 이번 사건이 원 전 원장 선에서 끝날지, 아니면 더 큰 ‘줄기’가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관측했다.
◇ 野, “물타기하려 한다” 비난
야권에서는 원 전 원장에 대한 의혹의 중심이 ‘정치개입’에서 ‘개인비리’로 옮겨지는 듯 하자 반발하는 분위기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친 ‘정치개입’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꼬리자르기’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황보건설이)대기업 건설사도 아닌 상황에서, 검찰이 자꾸 이 쪽으로 수사를 집중하는 것처럼 언론에 흘리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국정원의 정치개입만큼 큰 사건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답답해했다.
민주당은 황 법무장관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민주당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진상조특위는 지난 4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황 장관은 국정원의 불법선거·정치개입 수사가 깔끔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밝히고 법무부에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