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23)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2-07-19 0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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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스포츠 산실,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야구부’
생활체육 야구팀 38개, 공무원리그 12팀 등 남자인구 15%가 야구인
조계현·문태현 등이 지역 야구 발전에 힘보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불굴의 투혼 ‘군산의 스포츠’
군산은 스포츠 스타의 산실(産室)이다. 수많은 선수가 군산에서 꿈을 키웠다. 국가대표선수도 많이 나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군산의 명예를 높였다. 강한 승부욕으로 역전의 신화를 만들었다. 불굴의 투혼으로 명승부를 연출했다.


군산시민은 열광했다. 경기가 열릴 때면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우승하면 도시가 시끄러웠다. 모두가 얼싸안고 춤을 췄다. 생활의 고달픔을 모두 날려 보냈다. 군산의 선수들은 시민의 아들이고 딸이었다. 군산의 스포츠는 한국체육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아쉬움이 있다. 과거의 영광이 퇴색했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야구부’
1972년 7월 19일.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 결승이 열렸다. 성동원두(城東原頭·서울동대문운동장)가 함성으로 뒤덮였다. 야구장이 무너질 듯했다. 무명의 지방고교 야구팀이 사고를 쳤다. 기적의 9회 말 대역전승. 한국 야구사에 최고의 명승부로 기록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군산상고’ 야구팀.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명문부산고를 꺾었다. 1-4로 뒤진 채 9회 말 마지막 공격에 들어갔다. 관중은 이미자리를 떴다. 부산고의 우승은 불 보듯 뻔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9회 말 공격에서 4점을 빼냈다. 군산상고의 역전 우승. 그날의 소름 돋친 승부는 오늘도 회자된다. 

▲군산상고 야구부 상장 <사진=김병윤 대기자>

 

그날 우승 이후 군산상고 야구팀은 영원한 명칭을 얻었다. 역전의 명수. 당시 우승의 감격은 어땠을까. 군산 시내에서 우승 카퍼레이드를 했다. 7만 시민이 나왔다. 당시 군산 인구가 12만명 이었다. 군산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군산상고 우승은 전라북도 도민의 자랑거리가 됐다. 군산은 야구 변방의 도시에서 중심으로 우뚝 올라섰다.


군산상고는 이 대회 우승을 계기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우승과 준우승을 밥 먹듯이 했다.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달렸다. 80년대는 화려한 세월을 보냈다. 중심에는 조계현(현 KIA 타이거즈 단장)이 있었다. 조계현 뒤를 이어 이광우·조규제 등이 뒤를 떠받쳤다. 군산상고 출신 선수들은 훗날 무적군단 ‘해태 타이거즈’ 주축멤버로 활약했다. 해태의 우승은 군산상고 출신의 활약이 컸다.


군산상고 야구부는 스타의 산실이다. 한국야구의 거목을 많이 배출했다. ‘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의 주역 김봉연·김준환·김일권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후에도 스타 출현은 계속됐다. 김성한·김용남·조계현·이광우·조규제·이진영·정대현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외에도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현역으로 활약하는 선수도 군산상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차우찬·원종현·김호령 등이 모교의 전통을 살리며 활약하고 있다.

은퇴한 선수들은 대부분 야구계를 떠났다. 각자의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현재 야구계에서 활발히 활약하는 인물은 ‘조계현’이다. 조계현은 군산상고의 우승을 위해 자신의 팔을 망가뜨리며 역투를 했다. 1981년 고교 1학년 때 주전투수로 활약하며 ‘대통령배’ 우승을 일궈냈다. 당시 구속이 151km까지 나왔다.


2학년 때는 ‘청룡기와 봉황대기’ 우승을 차지하며 2관왕에 올랐다. 이때 활약으로 일본에서 열린 ‘한·일고교야구 친선대회’에 출전했다. 일본에서 역동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일본프로야구 관계자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신 타이거즈·긴데쓰 버펄로스(현 소프트뱅크) 3팀 관계자들이 한국에 왔다.

▲조계현 KIA타이거즈 단 <사진=김병윤 대기자>

 

조계현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일본팀들의 스카우트 제의에도 조계현은 갈 수 가 없었다. 당시의 사정이 그랬다. 병역문제 등 여러 가지 상황이 불허했다.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조계현의 팔이 계속된 연투로 고장이 나 있었다. 조계현은 더 이상 강속구 투수가 아니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영리한 조계현은 변화구 투수로 변모했다. 다양한 변화구를 던졌다. ‘팔색조’ 라는 별명을 얻으며 프로에 적응했다. 조계현은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는 코치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계현은 김기태 감독과 함께 친정 팀 KIA타이거즈에 돌아와 2017년 우승을 이룩했다. 수석코치로 팀 우승의 산파역을 했다. 우승한 뒤 KIA타이거즈는 조계현을 신임 단장으로 발령 냈다. 코치에서 단장으로 영전(榮轉·더 높은 직위로 옮김)시킨파격 인사였다.


조계현은 지금도 한 해에 몇 차례 군산을 방문한다. 지인들과 군산야구의 활성 방안을 논의하고 간다. 자신이 현장에 있을 때 힘닿는 대로 모교인 군산상고를 돕고 싶어 한다. 군산에 대한 애향심이 대단하다. 

 

재기를 꿈꾸는 ‘군산야구의 현주소’

군산 야구는 침체기에 있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다. 우수 선수들이 외지로 빠져나간다. 중학교 선수의 유출이 심하다. 수도권과 전주 등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간다. 잡을 방법이 없다. 한동안은 선수를 잡으려 무진 애를 썼다. 6~7년 전에는 선수 구성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제는 굳이 잡으려 하지 않는다. 갈 사람은 보내주고 있다. 

 

그래도 예전보다 사정이 좋아졌다. 시도 적극적 지원을 하고 있다. ‘문태환’ 군산시 야구협회장은 유소년 야구 활성화로 눈을 돌렸다. 인재발굴에 힘쓰고 있다. 유망주들이 나오고 있다. 군산의 야구발전이 기대된다고 밝힌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태환 회장의 바람이 있다. 시민이 적극적인 관심을 쏟아주길 바라고 있다. 군산야구의 영광 재현에 꼭 필요한 요소다.


군산의 야구 열기는 아직도 뜨겁다.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어 있다. 생활체육 야구팀이 38개나 된다. ‘공무원리그’ 에도 12개 팀이 있다. 소속 선수가 1700명이다.

자체 리그 운영팀도 10개에 300명이나 된다. 생활체육으로 야구를 즐기는 동호인이 58개 팀에 2000명에 이른다. 군산 인구는 27만여 명이다. 남자 인구는 13만여 명이다. 남자의 15% 이상이 야구를 즐기는 셈이다. 군산이 야구 도시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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