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업계 생산능력 검증 끝났는데…남은 건 행정과 정치의 결단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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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부 이강민 기자 |
[토요경제 = 이강민 기자]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은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 해상작전을 책임질 핵심 전력으로, 6000~7000t급 국산 ‘미니 이지스함’ 6척을 2030년대 초까지 전력화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7조8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임에도, KDDX는 여러 해 동안 사업 방식과 업체 선정 논란으로 수차례 연기돼 왔다.
방위사업청은 업계, 정치권, 민간위원들과 여러 차례 조율을 시도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논의가 또다시 미뤄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 수의계약과 경쟁입찰, 그리고 업계의 대립
KDDX 사업은 2012년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수주하면서 시작됐다. 2020년에는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됐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으나, 실제 함정 건조를 위한 ‘상세설계’ 및 ‘선도함(1번함) 건조’ 사업자 선정 단계에서 사업이 멈췄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 대형 사업을 맡길 것인가를 두고 업계와 정부, 정치권, 군 내부까지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사업자 선정 논란의 중심에는 ‘수의계약’과 ‘경쟁입찰’ 방식이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 사업자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까지 맡는 것이 함정사업의 관행이고, 방위사업법상에도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방위사업청이 제공한 2020년 기본설계 제안요청서에도 “탐색개발(기본설계)을 수행한 업체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명시돼 있다.
반면 한화오션은 “방위사업법은 경쟁입찰이 원칙이고, 수의계약은 예외”라고 반박했다. 또한 HD현대중공업이 과거 한화오션(대우조선해양)의 KDDX 개념설계 자료를 불법 취득해 활용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들어,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국민적 신뢰를 위해 반드시 경쟁입찰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거듭되는 연기, 30년 전 기술로 최신 함정 만들 판
방위사업청은 사업방식, 업체 선정 등 수차례 논의를 거쳤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방위사업청은 HD현대중공업과의 수의계약을 다수결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과위원회에 전달했다. 하지만 분과위에 참여한 민간위원 6명 전원이 수의계약에 반대했고,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에서도 정권 말기 특정 업체 밀어주기, 밀실행정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결국 방위사업청은 국회 설명 등 추가 절차를 거친 뒤 사업 안건을 다시 상정하겠다고 밝혔고, 사업자 선정은 또다시 미뤄졌다.
해군은 사업 지연에 대해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올해 3월 해군참모총장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양사에 서신을 보내 “엄중한 안보 환경 속에서 함정 전력화 시기 지연에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미루기로 인해 최신 전투함이 아니라 이미 뒤처진 기술로 신형 구축함을 만드는 어이없는 결과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조선업계 내부에서는 “지금처럼 계속 결정을 미룬다면 KDDX 사업이 사실상 30년 전 설계를 바탕으로 한 구축함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최근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까지 파행을 겪으면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인 국방부 장관이 공석이 되고, KDDX 사업자 선정 등 방산 현안 역시 동결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장관 임명 등 행정·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사업은 또다시 미궁으로 빠질 위기에 처했다.
◆ 생산능력 확인, 법적 분쟁 모두 마무리…이제는 행정적·정치적 결단만 남아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모두를 KDDX 구축함 방산업체로 공식 지정했다. 산업부와 방위사업청 등 관계기관이 참여한 합동 현장실사단이 두 업체 모두 구축함 완제품 생산능력과 방산 보안요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편 사업 표류 과정에서 제기된 입찰과 설계, 자료 유출 등 법적 쟁점도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황이다.
HD현대중공업은 과거 한화오션의 KDDX 개념설계 자료를 불법 취득해 활용한 혐의로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사업 진행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상태다.
한화오션의 개념설계 제안서 무단 인용 의혹은 방위사업청과 국군 방첩사령부 조사 결과, 공소시효 만료 및 위법 요건 불충족으로 행정처분 없이 종결됐다.
따라서 생산능력, 법적 분쟁 문제는 KDDX 사업의 추가 지연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이제는 행정적·정치적 결단만 남았다.
KDDX 사업의 장기 표류와 반복된 지연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이라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해군은 전력화 지연에 따른 국가안보 공백을 우려하고, 업계는 산업경쟁력·일자리·수출 기회 상실을 걱정한다.
이제는 책임 있는 정치권과 정부가 신속하게 결론을 내릴 때다. 계속된 표류 끝에 대한민국 해군이 21세기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함정을 갖는 일이 없도록, 단호한 결단이 시급하다.
토요경제 / 이강민 기자 lgm@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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