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얼리는 작가가 있다.
작가 성서(Sung Suh)다. 그는 사진을 찍고 끝내지 않는다. 세계를 흔든 장면들을 레진, 아크릴, 에폭시 같은 투명한 물질 속으로 들여보낸다. 그러면 사진은 더 이상 납작한 이미지가 아니다. 얼음 속에 갇힌 듯하고, 물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듯하다. 지나간 사건은 그의 손을 거쳐 시간과 기억이 굳은 조각이 된다.
성서 작가가 구축해온 개념예술 프레임워크 ‘Frozenism’은 여기서 출발한다. 전통적인 사진이 지나간 순간을 붙잡는 일이었다면, 그의 작업은 붙잡힌 순간이 이후에도 어떻게 변하고 다시 살아나는지를 보여준다. 사진은 과거를 증명하는 자료에 머물지 않는다. 관객의 경험과 감정, 사회의 기억을 지나며 매번 다른 의미를 얻는다.
그가 ‘얼림’이라는 방식을 택한 이유도 분명하다. 얼음은 무엇인가를 보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얼음은 영원하지 않다. 깨지고, 녹고, 흐려지고, 다시 물이 된다. 기억도 그렇다. 어떤 기억은 남지만 온전하지 않고, 어떤 기억은 잊힌 듯하다가 어느 날 다시 떠오른다. 어떤 기억은 다른 사건을 만나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뀐다.
특히 전쟁과 재난, 팬데믹과 테러처럼 인간의 삶을 바꾼 사건은 역사책 속 과거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외상 후 스트레스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 만든 방어기제가 된다. 작가 성서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기억의 상태를 조형으로 끌어낸다.

칼리파갤러리(대표 손경란)에서 열리는 개인전 《Frozenism: Frozen Legacy – 얼어붙은 시간의 유산》은 그런 기억을 다룬다. 제1차 세계대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코로나19 팬데믹, 세계 금융위기, 9·11 테러가 작품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전시는 비극을 다시 보여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작가는 사건을 설명하거나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 사건들은 지금 어디에 남아 있는가.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회의 불안 속에, 개인의 몸 안에, 도시의 구조 속에, 다음 세대의 감각 속에 여전히 다른 얼굴로 남아 있지는 않은가.
성서 작가의 작업은 과거를 회상하지 않는다. 과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개념적 사진 조각(Conceptual Photo Sculpture)’, 또는 ‘얼어붙은 시간의 조각(Frozen Time Sculpture)’이라고 부른다. 그의 작품은 사진이면서 조각이다. 이미지는 투명한 물질 안에 놓이고, 빛은 그 사이를 지나간다. 관람자의 시선은 표면과 내부를 오간다. 사진은 더 이상 벽 위에 걸린 사각의 이미지가 아니다. 시간의 층을 가진 구조물이 된다.
작품 앞에 서면 암실이 떠오른다. 검은 물 위에 인화지가 떠 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종이에 서서히 이미지가 올라오던 순간 말이다. 성서 작가의 이미지도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는 듯하다가 흐려지고, 사라지는 듯하다가 다시 떠오른다. 그래서 작품 속 사건은 끝난 장면이라기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일처럼 보인다.
이때 관객은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떠오르고 가라앉는 과정을 경험한다. 같은 작품 앞에서도 관객이 떠올리는 시간은 다르다. 누군가는 전쟁을 생각하고, 누군가는 재난을 떠올리며, 누군가는 팬데믹 동안의 고립을 기억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은 그 각자의 기억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둔다.
Frozenism의 핵심은 보존(Protection), 정지(Stillness), 소멸(Death), 변형(Transformation)이라는 네 가지 시간 상태다. 보존은 사라질 것을 붙잡는다. 정지는 그것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소멸은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을 드러낸다. 변형은 그 기억이 다른 의미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네 가지는 차례로 지나가는 단계가 아니다. 기억 안에서 계속 반복되고 순환하는 상태다.
어떤 비극은 보존되지만 동시에 잊힌다. 어떤 사건은 멈춘 듯하지만 계속 영향을 미친다. 어떤 기억은 사라진 듯하다가 다른 세대의 삶에 녹아든다. 성서 작가의 작업이 독특한 이유는 이 순환을 말이 아니라 물성으로 느끼게 한다는 데 있다. 투명한 물질은 이미지를 보호하면서 왜곡하고, 드러내면서 가린다. 완전히 보이지도 않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기억의 방식과 닮았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역사화나 다큐멘터리 사진과 다르다. 다큐멘터리가 사건의 현장을 증언한다면, 성서 작가의 작업은 사건 이후의 시간을 묻는다. 사건이 지나간 뒤 무엇이 남는가. 기억은 어떤 상태로 보존되는가. 비극은 언제 과거가 되고, 언제 다시 현재가 되는가.

작가 성서는 사진을 다시 정의한다. 사진은 더 이상 과거를 향한 창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보존하고, 상처를 성찰하게 하며, 시간이 어떻게 물질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조형 언어다. 그를 ‘얼어붙은 시간의 조각가’라 부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작가의 관심은 기후위기와 환경 변화, 도시의 취약성, 생태계의 소멸로도 확장되고 있다. 이미 발생한 역사적 비극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 목격하면서도 충분히 기억하지 못하는 현재의 비극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인 역사다. 그는 그것 역시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기억으로 바라본다.
작가 성서가 사건을 얼리는 이유는 시간을 과거에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다. 살아내느라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장면 앞에 우리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다. 얼어붙은 이미지는 정지된 회상이 아니다. 반복을 막기 위한 성찰의 장치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과거를 구경하지 않는다. 그 과거가 지금도 어떤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는지를 마주한다.
결국 작가가 묻는 것은 “기억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기억은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트라우마이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며, 누군가에게는 방어기제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을 어떻게 현재의 인식으로 바꾸는가이다. 기억이 성찰로 이어지지 않을 때, 역사는 다시 같은 장면을 만든다.
그래서 작가노트는 관객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처럼 들린다.
“역사는 우리에게 기억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우리가 같은 순간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성서(Sung Suh)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개념예술가이자 사회참여 예술가다. 시카고예술대학원과 홍익대학교에서 사진, 조각, 영상, 퍼포먼스, 사운드, 시각커뮤니케이션 등을 공부하며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왔다. Frozenism은 2010년 시카고예술대학원 졸업 프로젝트 《Frozen》에서 시작돼 “Time Frozen, Art Alive”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발전한 작가의 독자적 개념예술 프레임워크다.
성서 개인전 《Frozenism: Frozen Legacy – 얼어붙은 시간의 유산》은 이달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칼리파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Frozenism과 ‘Frozen Time Sculpture’ 연작을 중심으로 역사와 기억, 기록과 보존, 소멸과 변형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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